3년 전 서울에서 26번째 주거지형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으로 지정된 종로구 창신·숭인동 일원. 흥인지문(동대문)이 뉴타운 남서쪽으로 이어져 있어 도심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큰길 안쪽에는 한두 사람이 겨우 들어가 누울 정도의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흔히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부인의 투기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곳이다.
서울시는 올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창신·숭인동 일원 84만6100㎡(약 25만6000평)에 대한 개발계획(재정비촉진계획)을 발표했다. 동대문 의류·패션 상권과 연계해 역사·관광·패션이 어우러진 ‘복합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14개 구역별로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창신 1~6구역은 1단계(10만7948㎡)로 2016년까지, 창신 7~12구역과 숭인 1, 2구역은 2단계(73만8152㎡)로 2019년까지 사업을 추진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사업이 완료되면 창신·숭인 뉴타운은 낡은 쪽방촌에서 최신 건물과 아파트 등이 솟아오른 빌딩숲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나 개발 후에도 이 지역은 고급 주택가로 인기를 끌기 어려울 수 있다. 주택 공급계획이 소형주택(전용면적 60㎡ 이하)과 임대주택 위주로 짜여 있고 대형주택의 공급은 많지 않아서다. 창신·숭인 뉴타운에 새로 들어설 9971 가구 중 소형주택은 모두 4416가구(44.3%)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 중 1930가구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을 포함한 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 전용면적 60㎡ 이하 주택은 방이 2개 안팎으로 1~2인 세대가 주로 살 것으로 보인다. 도심에 직장을 두고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려는 신혼부부나 미혼 단독세대, 자식을 독립시키고 혼자 또는 부부가 함께 노년을 보내는 은퇴자 세대 등이다.
반면 대형주택(전용 85㎡ 초과)의 공급은 2220가구로 열 집에 두 집꼴(22.3%)을 약간 넘는다. 나머지 3335가구(33.4%)는 전용면적 60~85㎡의 중형가구로 분양할 예정이다.
“대형주택은 5년 전부터 공급 초과”
서울시는 앞으로 주택 공급의 초점을 소형주택에 맞추겠다는 정책 방향을 갖고 있다. 창신·숭인 뉴타운이 단적인 사례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가족 분화 현상도 심화하면서 단독이나 2인 세대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지난해 말 93.1%에 달한다. 하지만 이 통계는 단독 세대 등을 제외했다는 한계가 있다. 만일 단독 세대를 포함한 주택보급률을 따진다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79.1%까지 떨어진다. 관점에 따라선 서울 지역에서 주택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주택 규모별로는 단독이나 2인 세대를 위한 소형주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현재 서울시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사업은 오히려 소형주택 부족 현상을 깊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다세대주택에선 흔히 세입자를 포함해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산다.
하지만 아파트는 한 집에 한 세대가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의 결과 주택 수는 늘어나지만 정작 그 지역에 사는 주민 수는 사업 전에 비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또 재개발·재건축은 철거에서 입주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는 ‘병목 현상’이 자주 생긴다.
올해의 경우 서울시가 추산한 주택 공급량은 모두 5만9200가구다. 동시에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철거·멸실되는 주택도 5만8600가구에 달할 전망이다. 한 해 동안 새로 짓는 집과 없어지는 집이 거의 같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부동산 시장 미스매치 부각되나’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임상수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구 구성상 1~2인 세대가 급증해 중·소형주택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대형주택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며 “대형주택은 2005년부터 이미 초과 공급 상태여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주택시장 침체로 수급 불균형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중·소형보다 대형주택의 가격이 더 크게 하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소형주택 의무비율은 같은 재개발사업이라고 해도 해당 구역이 뉴타운에 속하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일반 재개발구역에선 국토해양부 장관의 고시에 따라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주택을 80% 이상 지어야 한다. 새로 짓는 열 집 중 적어도 여덟 집은 중·소형이어야 하고 나머지 두 집 정도만 대형으로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뉴타운 재개발구역에선 열 집 중 많게는 네 집까지 대형을 지을 수 있다. 뉴타운의 사업성을 좋게 하기 위해 일종의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나머지 여섯 집 중 적어도 두 집은 소형이어야 한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소형·중형·대형주택의 비율은 2대 4대 4인 셈이다. 이는 일반 재건축구역의 주택규모별 건설비율과 같다.
용적률 높여 줘 소형주택 건설 유도
서울시는 내년부터 뉴타운 재개발에서 소형·중형·대형주택의 비율을 3대 4대 3으로 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체 주택 공급에서 대형주택을 10%포인트 줄이고 그만큼 소형주택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중·소형주택 의무비율은 일반 재개발(80%)>뉴타운 재개발(70%)>일반 재건축(60%)의 순이 된다.
서울시는 조만간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거쳐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의회 심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의 조정래 전문위원은 “소형주택 비율을 30%로 높이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형주택 비율을 3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자칫 상위법에 어긋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법 체계상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서울시 조례보다 위에 있고, 시행령에는 중·소형주택의 비율을 ‘60% 이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런데 조례에서 소형과 중형을 합쳐 ‘70% 이상’ 의무적으로 짓게 한다면 시행령보다 강한 규제가 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례 개정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민원도 예상된다.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강화하면 분양수익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대체로 집이 작을수록 3.3㎡당 분양가도 싸다. 따라서 용적률(땅 넓이에 대한 건물 넓이의 비율)이 같다면 소형으로 쪼개 지을수록 전체 분양수익은 작아진다. 이렇게 되면 사업성이 나빠져 주민들의 부담금이 많아질 수 있다. 또 대형주택을 원하는 조합원들이 많은 곳에선 분양권 배분을 둘러싼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김일수 씨티프라이빗뱅크 부동산팀장은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가장 흔한 원인은 대형주택 분양권과 주민 부담금”이라며 “소형주택 의무비율은 이런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8·29 부동산대책’에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한 내용이 거의 없다”며 “주택시장이 활성화되길 원한다면 소형주택 의무비율 같은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완화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뉴타운 재개발구역에 용적률을 높여 주는 방법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시는 뉴타운 구역별로 심의를 거쳐 용적률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대신 용적률이 높아진 부분은 소형이나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미 계획한 대형주택을 줄이지 않더라도 소형주택을 더 많이 지으면 소형주택 공급비율은 높아진다는 계산이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분양수익도 늘어나 주민들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은평구 수색·증산 뉴타운의 증산 5구역이 좋은 예다. 서울시는 최근 증산 5구역의 기준 용적률을 190%에서 210%로 20%포인트 높여 줬다. 소형주택 공급계획은 174가구(임대 41가구 포함) 늘었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174가구 추가 건립으로 조합원들의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둘러싼 정당별 입장 차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소형주택 의무비율 규제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폐지됐다가 2001년 부활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대폭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재건축에 대한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서울시의 판단으로 완화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소형주택 공급이 중요하다고 보고 기존 규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서울시의회는 전체 114석 중 민주당이 79석, 한나라당이 27석, 무소속 교육의원이 8석을 차지하고 있다. 주택정책 관련 조례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도시관리위원회는 신원철(민주당) 시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민주당 우상호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