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4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9장 2절 - 13절 - 땅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하늘의 생명으로 살아가며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를 열어 주시고 주께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베푸시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주어진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사람이 주를 바라보면 세상의 상황은 주를 향한 마음을 이끄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땅의 상황을 바라보면 불안과 두려움으로 무기력한 자가 됩니다.
주께로 시선을 향하게 하시고 주와 함께 함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게 하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주 안에서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본문 해설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건이 있은 지 6일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시게 된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는데 그 옷에 광채가 나고 빨래하는 자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으며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변화산의 사건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확인시켜 주시는 사건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구약의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의 예언 성취의 사역임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을 보았던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 좋으니 초막 3개를 짓되 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한 것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죄악 된 인간이 가지는 경외의 태도였으며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다가 당시가 초막절이 다가 왔기에 절기를 지키고자 말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당시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난과 죽음의 사건이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황홀한 광경에 취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게 되었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울리게 된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그 가운데 들렸던 음성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을 들은 후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시자(마17:7) 그들은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예수님과 자기들만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 올 때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경고하신다.
이에 제자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서로 물으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며 예수님께 왜 서기관들이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했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자신들이 본 엘리야가 왜 지금 나타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은 것이며 당시 제자들은 메시아에 대해 잘 몰랐음을 보여준다.
이에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는 예언은 맞는 것임을 인정하신다.
그러나 메시아에 대해서는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는 예언은(사53장) 왜 알지 못하고 있는지를 반문하면서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야에 대해서도 가르치신다.
그리고 엘리야가 자신보다 앞서 왔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그를 대우했음을 이야기하심으로써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회개의 세례를 전했던 세례요한이 예언의 성취자였음을 알려주신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3명의 제자들을 데리시고 변화산(어느 산인지는 알 수 없음)에 올라가셔서 제자들 앞에서 거룩하신 모습으로 변형되신다.
이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는 증거였으며 특별히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함으로써 율법과 선지서가 증거 한 메시아야 자신임을 드러내신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임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림으로써 예수님의 메시아 됨을 하나님께서도 증거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상황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제자들은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며 다시 살아나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자신들이 본 엘리야는 왜 늦게 나타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제자들은 율법과 선지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편협한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들은 자기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찾고자 했으며 자신들의 육신적 만족을 줄 대상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 열망이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게 했으며 성경의 해석도 땅의 관점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땅의 관점으로 보는 메시아는 사실상 성경 전체의 구조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만든다.
첫째는 다윗의 영원한 보좌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으로 약속의 불이행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불이행이 자신들이 율법을 따라 살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철저한 율법주의로 흐르게 된 원인이 되었다.
또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더욱 땅의 나라를 정복하여 거대제국으로 만들어 줄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둘째는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는 약속도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불이행되었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혈통적 순수성도 나라의 멸망으로 흩어짐으로써 불분명해졌으며 혈통적 순수성을 유지하던 사람들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실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려고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가르치고 말했던 결과는 잘못된 메시아 사상을 만들고 헛된 율법주의에 몰두하면서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땅의 관점으로는 성경의 말씀은 해석이 불가능하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많은 유명하고 똑똑한 학자들의 의견과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며 일관성과 통일성을 추구하지만 그들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으며 오류가 있다.
학자들의 연구는 당시의 상황과 문화적 이해, 그리고 원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성경은 복음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이루어지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하며 그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연관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관계를 따라 말씀을 이해하려고 할 때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땅이 아는 하늘의 보좌에서 이루어지는 약속임을 깨닫게 되고 땅이 아닌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자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가 땅이 아는 하늘의 것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알아갈수록 성도는 약속의 온전한 성취가 이루어지는 종말을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고 땅의 삶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며 주의 회복을 기대하는 자가 된다.
더 나아가서 주께서 가신 십자가와 죽음의 길을 가는 자가 되며 그 길을 통해 부활과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며 사는 자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소망의 통로가 됨을 선포한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1~5)
오늘도 주의 말씀은 땅의 생명으로 살지 말고 하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도록 가르치신다.
그리고 여전히 땅의 생명으로 살고자 하며 그로 인해 죄와 허물로 살아가고 자기 욕심으로 행하는 자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신다.
다시 주의 긍휼을 구하며 땅에서 초막 3개지를 짓고 살고자 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기꺼이 십자가와 죽음의 길로 나아가시는 주의 길에 설 수 있는 자 되길 소망한다.
그 길이 영생의 길임을 확신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는 나의 모습, 그리고 지체들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땅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사는 인생은 욕심과 탐욕으로 사는 자가 되며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갑니다.
땅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아닌 하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그 비결은 주의 은혜를 따라 하늘에서 얻는 온전함을 기대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주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며 주와 교제하는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천상의 교제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힘을 얻고 그 길을 가신 것처럼 저의 삶도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주어진 믿음의 길을 가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어리석은 인생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를 향한 소망을 더욱 견고히 붙잡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지혜를 따라 선한 것을 바라보며 맡겨진 일에 성실한 자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