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담 20주년 기념전 2부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Crossover the Arirang Pass
전시기간 2026년 8월 29일(토) — 2026년 9월 9일(수)
전시장소 갤러리 담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72 (안국동 7-1)
참여작가 김미애 김명진 김재형 박미현 양화선 이운 이은미 임춘희 장현주 하선영 한상진 한생곤
관람시간 월–토 12:00–18:00 일 12:00–17:00 (마지막 날은 17:00까지)
전시문의 02-738-2745 gallerydam@naver.com www.gallerydam.com
2006년 봄, 안국동 골목길 작은 공간에서 문을 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갤러리 담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작가들의 단단한 예술혼과, 이들의 진심을 믿고 지지해 준 관람객 덕분이었다. 20주년을 맞아 그 소중한 인연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아리랑은 수많은 고개를 넘어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우리 모두의 노래다. 누군가는 정든 것을 뒤로하고 넘어야 했고, 누군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넘어야 했다. 고개란 원래 그런 것이어서, 오르는 이의 숨을 가쁘게 하고 종종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지만, 그 너머에는 반드시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년 갤러리 담이 마주했던 수많은 도전과 극복의 순간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로 정한 것은, 그 모든 고개를 함께 넘어온 이들에게 바치는 인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과 예술은 계속 흘러간다'는 담담하고도 단단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갤러리 담과 오랜 시간 동행해 온 김미애, 김명진, 김재형, 박미현, 양화선, 이운, 이은미, 임춘희, 장현주, 하선영, 한상진, 한생곤 작가가 함께한다. 열두 명의 작가가 지나온 열두 개의 고개는 저마다의 결과 속도로 놓여 있다. 김미애는 캔버스 위에 초록빛 언덕과 바람의 궤적을 그려 넣었고, 장현주는 먹과 분채를 겹겹이 올려 안개 낀 새벽의 시간을 붙잡아 두었다. 한상진은 하나의 형상을 오래 들여다보며 그것이 품은 온도를 색으로 환원했고, 박미현은 샤프펜슬의 가장 조용한 선으로 기하학의 리듬을 세웠다. 양화선은 흙을 빚어 물의 깊이를 담아냈고, 뮌헨에서 작업 중인 이운은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풀과 나무들을 보여주며, 이은미는 토성 옛길을 걸으며 마주친 잎과 꽃 사이의 여백을 그려낸다. 김재형은 라다크에서 마주한 강렬한 빛이 남기고 간 침묵을 흐릿한 풍경으로 옮겨 놓았고, 임춘희는 낯선 두 얼굴을 마주 세워 우리 안의 여러 자아에게 말을 건넸다. 서로 다른 재료와 언어로 넘어온 고개들이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결국 같은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갤러리 담에게 지난 20년은 작가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세계를 가장 먼저 목격하는 특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가 관람객의 마음에 가닿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이 작은 공간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때로는 숨차고 때로는 아득했던 지난 시간을 함께 넘어와 준 작가들에게, 그리고 그 걸음마다 곁을 지켜 준 관람객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한다. 또 한 굽이의 고개를 함께 넘어가 주시기를, 그리고 그 너머에서 마주할 풍경을 함께 나누어 주시기를 청한다.
김미애 Kim Miae
2011년 독일 빌레펠트 조형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해 온 김미애는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로 나무, 산, 집 등 자연과 인공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그려 왔다. 이번 신작에서는 초록빛 언덕과 바람의 궤적을 화면에 담아, 뿌리내린 존재들이 지나온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내 그림들에 나타나는 나무들, 집들, 그리고 새들. 땅에 깊이 뿌리 내린 나무들, 잘 자리 잡은 집들 그리고 자유로운 새들은 어디에서든 낯설지 않고, 어디에서든 친숙하다.” — 작가노트 중에서
김명진
세종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에서 동양화를 전공(2001)하고 동 대학교 회화과를 졸업(1997)한 김명진은 장지 위에 아크릴과슈와 한지를 겹겹이 콜라주해 쌓아 올리며 얼굴과 눈의 형상을 화면 속에 어렴풋이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 왔다. 2025년 개인전 «태양을 입고 발아래 달을 두고»를 비롯해 «살갗아래», «기뻐하라»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찢기고 덧붙여진 종이의 결은 태양의 온기를 두른 존재의 안팎을 동시에 보여준다.
김재형 Jayhyung Kim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첼시 예술대학에서 석사를, 독일 뮌헨 예술대학교에서 마이스터슐레(2023)를 마친 김재형은 산과 숲, 강과 들 등 사람 없는 풍경에서 시시각각 사라지는 존재의 숨결을 포착해 왔다. 오랫동안 오가며 작업해 온 라다크의 강렬한 빛은 역설적으로 그의 화면에 빛이 사라진 듯한 고요함을 남겼다. 비현실적으로 밝은 색채와 흐릿한 경계선, 뿌옇게 퍼지는 화면은 누군가 머물렀다가 떠난 자리,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의 빛을 그린다.
“자연에서 보이는 모든 게 사라짐과 닿아있다. 그리고 그만큼 새로움이 생겨난다. […] 꽃은 아주 잠시 빛나다가 사라진다. 그런 빛은 사라지는 것들만이 만든다. 꽃은 미련이 있다.” — 작가노트 중에서
박미현 Park Mihyeon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박미현은 연필과 샤프펜슬, 컴퍼스, 자, 템플릿 등 기본 도구로 기하학적 단위를 구성하고 반복·배열하는 드로잉 작업을 이어 왔다. 2025년 개인전 «조적 組積» 등 갤러리 담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단위가 변주되고 배열되면서 리듬(rhythm)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배열은 의미를 한정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작은 차이의 의미를 생성한다.” — 작가의 글 «조적» 중에서
양화선 Yang Hwasun
전북 전주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양화선은 흙과 유약이라는 도자의 물성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유동을 탐구해 왔다. 관훈미술관을 시작으로 갤러리 담 등에서 16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번 출품작은 산자락의 옹달샘과 바닷속 블루홀에서 길어 올린, 근원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운 Eun Lee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석사를, 독일 뮌헨 조형예술대학에서 회화 디플롬(2022)을 마친 이운은 현재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2025년 갤러리 담에서 아홉 번째 개인전 《흘러가는 빛》을 열었다. 여행과 일상에서 마주한 빛과 형태의 조각들을 모아 화면 위에서 물감과 섞어내는 그의 작업은, 평범한 자연의 순간이 지닌 생경함과 균열의 지점을 찾아 현실과 다른 세계 사이의 경계를 그린다.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나부끼는 풀들을 오랫동안 바라다보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틈을 발견하고는 한다. […] 머리로 떠올린 생각이 아니라, 몸 전체로 느낀 생각이 작품에 깃들기를 바란다.” — 작가노트 중에서
이은미 Lee Eunmi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 회화전공을 졸업한 이은미는 풍납동 토성 주변 작업실 인근을 산책하며 마주친 식물과 꽃, 잎을 화면에 옮겨 왔다. 2024년 갤러리 담에서 스무 번째 개인전 《바깥, 잎》을 열었으며, 빛이 잎을 투과하는 자리에 여백을 남겨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를 캔버스 위에 담아낸다.
“빛에 닿아있는 얇은 잎들, 그때 두고 온 것,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조금씩 진동하며 기억하는 것.” — 작가의 글 <바깥, 잎> 중에서
임춘희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지낸 지 14년째, 매일 산책하며 사계절 나무의 변화를 지켜보아 온 임춘희는 잎을 다 떨어뜨린 벌거숭이 나무의 형상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순간순간을 읽어낸다. 낯선 두 얼굴을 마주 세운 이번 화면 역시 우리 안에 공존하는 여러 자아를 향해 말을 건네며, 구아슈 특유의 불투명한 색층이 겹쳐 하나의 인물 안에 깃든 이질적인 표정들을 드러낸다.
“벌거숭이가 된 나무들은 종류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그 생김새가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곧 인생을 떠올린다. […] 꾸밈없는 솔직한 형태로서 벌거벗을 때 비로소 진짜 그대로의 형상으로 본질에 가까운 나무의 실체를 본다.” — 작업노트(2020) 중에서
장현주 Jang Hyun-ju
장현주는 먹과 분채를 겹겹이 올려 안개 낀 새벽의 시간을 화면에 붙잡아 두었다. 개인전 《초록의 임계 Threshold of Green》(2026년 7월, 갤러리 담)에서 선보인 <Seed> 연작과 〈차오름-응축〉의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에는 여름이 응축되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풍경을 담은 신작을 출품한다.
“여름은 갑자기 오는 계절이 아니다. 땅속 깊은 곳의 진동들이 천천히 밀어 올린 시간이다. […] 화면 속 색들은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서로 밀어내고 스며들며 하나의 덩어리처럼 증식한다. 빛조차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그 압축된 상태 안에서, 여름은 조용히 부풀어 오른다.” — 작가의 글 <초록의 임계> 중에서
하선영
하선영의 화면 위에서 초록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부풀어 오른다. 제목처럼 둥근 형태가 겹겹이 이어지며,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유기체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상진 Sang Jin Han
한상진은 개와 늑대의 시간, 낮과 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미명계(微明界)'와 '무경계(無境界)' 연작을 통해 하나의 형상을 오래 들여다보며 그것이 품은 온도를 색으로 환원해 왔다. 원주의 작업실에서 완성한 이번 신작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풍경, 그 자체가 되어가는 풍경을 보여준다.
“나의 그리기는 고요하게 내려놓는 순간에 발생한다. […] 경계(境界)는 사라지고 삶의 유한함 속에서 손에 잡을 수 없는 무한한 것과 만나게 하는 과정이다.” — 작가 노트 <무경계> 중에서
한생곤
한생곤은 홍합 껍데기와 호분, 유리와 소주병을 빻은 가루 등 이질적인 재료를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아 전통 산수화의 능선을 부조에 가까운 질감으로 재구성한다. 안료 대신 물성 그 자체가 산과 마을의 시간을 켜켜이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