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이하 존칭 생략)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당당하고 여유 있게 방어했다. '이해찬 세대'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에 일으킨 교육 폭풍은 그 폐해가 엄청나지만, 이에 대해 어느 국회의원도 두루 공감이 가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국회의원 299명(출석 289명) 중에서 무려 200명으로부터 찬성표를 얻어 삼청동 '넓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었다.
이해찬은 한번도 자신이 일으켰던 교육 폭풍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기가 좀더 오래 교육부에 남아 있었으면 '교육개혁'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 아닌 후회를 표하는 말을 했다.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더 나은 대안을 내놓는 사람을 못 봤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한정되었다는 증거이다.
이해찬은 교육의 문외한이다. 어쩌다 보니까 김대중 전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이 논공행상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전문가를 자처하는 '교육 정도야' 그라면 능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그에게 교육부장관이란 큰 상을 주었던 것이다. 김대중의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그는 능수능란하게, 패기 있게, 소신 있게 '교육개혁'을 '잘했다'. 정치인으로서 지역구를 다독거리는 데는 상당한 수완이 있는 듯, 그는 대대적인 물갈이 속에서도 5번이나 연속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마침내 17대 총선 후 '당정 집단지도체제'에 돌입하면서 당내 서열과 조율에 따라 총리로 입각했다.
이해찬은 김대중과 전교조 사이에서 오갔다. 전략은 김대중이 담당하고 전술은 전교조가 담당하고 그는 일선 사령관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나름대로 이를 조화시켜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는 조직이 없는 다수의 교사와 그보다 더 많은 학부모, 대학 교수, 교육 관료, 기업 등의 의견을 거의 수렴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 좋은 비전문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졌다. 이런 류의 사람은 자신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대충 죽 들어보면, 어떤 뚜렷한 그림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전문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나름대로 철학도 생긴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김대중의 교육 전쟁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나 쉽게 대학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대학 문을 활짝 넓히는 것이다. 70년대 이래 줄기차게 그는 '들어가기는 쉽게, 나오기는 어렵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전교조의 교육 전쟁 전술은 무엇인가?
입시 과열은 없애는 것이다. 입시 교육을 정상 교육으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의 학원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사설 입시기관에서 출제하여 일선 학교에서 받아보는 모의고사를 폐지하는 것이다. 못 사는 서민의 자녀가 대학 진학에 유리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해찬의 교육 전쟁 명령은 무엇인가?
대학 문을 더 열고 입시 교육을 정상 교육으로 바꾸려면, 첫째 대학 정원을 자율화하고, 둘째 문제를 쉽게 내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대학 갈 수 있고 문제가 쉬운 만큼 학교 교육만으로도 대학 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제적인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는 폐지해도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자기 적성에 맞는 학과에 갈 수 있도록 입시 과목도 줄여야 한다.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신화는 여기서 생겼다. 청문회에서도 밝혔듯이 이해찬이 이렇게 주장하거나 명령한 적은 없다. 방송과 신문에서 이런 무책임한 추측 보도를 했고 마치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떠돌았다. 문제는 교육부 수장인 이해찬이 이런 허무맹랑한 뜬소문을 학생이나 학부모 대다수가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방조한 셈이다. 이렇게 하고서 그는 발뺌을 한다. 지혜는 별 볼일 없지만 지능지수는 대단히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또한 새로운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년을 단축하고 명예 퇴직금을 얹어 주어서 늙은 교사는 대거 퇴출시켜야 한다.
대통령과 전교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이해찬은 신나는 교육 전쟁을 치렀다.
결과는? 개판!
교실은 난장판이다. 교사와 학생은 매 시간 전쟁을 치른다. 학생은 졸고 자고 떠들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교사는 고함 지르고 꾸중하고 욕하고 짜증낸다.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은 반이나 될까. 열에 한둘 특별한 카리스마(실력 또는 완력 또는 고성)가 있는 교사만이 교실을 장악한다. 공부는 학원에서 휴식은 학교에서!
돌팔이와 전문의의 차이는 첫째 그 진단 능력이다. 돌팔이가 아는 것은 배가 아프다, 설사한다, 열이 난다--이 정도이다. 청진기를 갖다 대지만 그에게 들리는 것은 여러 가지 요란한 불협화음을 내며 흘러가는 하수도 소리뿐이다. 전문의는 복통의 원인은 수백 수천 가지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함부로 병명을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확실히 알기 전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전문의조차 오진율이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훨씬 높다. 40%만 되어도 명의 소리를 듣는다. 희귀병은 거의 100% 오진한다. 알아도 치료 방법에는 또 수백 수천 가지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 신중하게 결정한다. 무수한 임상경험을 통해서 척척 알게 되면 비로소 명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돌팔이야 '만병통치약'이 있으니까 하나도 어려울 게 없다. 어리석은 자들을 호려서 돈만 벌면 된다.
대통령이 제시한 교육 전쟁의 전략은 교육병에 대한 큰 치료책인데, 이것은 전혀 잘못된 교육 진단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1996년에 이미 포항공대에서 연구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고등학생 인구 대비 대학진학률이 세계 1위였다. 이미 그 때에 대학 문이 세계에서 제일 넓었다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양적인 팽창을 해야 할 때가 아니라, 질적인 내실을 다져야할 때가 차고 또 찼다는 의미이다.
1981년 이미 대학 정원을 한꺼번에 30% 이상 늘린 전두환 정권 때 경험했듯이 '들어가기는 쉽게 나오기는 어렵게'라는 말은 '온정주의'가 어디에나 만연한 우리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다. 그 후 소위 졸정제는 흐지부지되고 계속해서 대학 정원만 늘어났던 것이다.
이해찬이 교육 전선의 '총사령관'으로 교육 전쟁을 선포한 1998년에 이미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대학 정원이 많았다. 실업계를 빼면 그랬다는 말이다. 실업계는 원래 대학진학이 목적이 아닌 취업이 목적인 학교이다. 그런데, 이들까지 포함하니까 마치 대학 문을 더 넓힐 여지가 충분한 듯했던 것이다. 그것도 4년제 대학만 대학인 듯이 입학 경쟁률을 내보니까, 그랬던 것이다. 마침내 2003학년도부터 실업계까지 포함해서 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를 능가하게 되었다. 더 이상 갈래야 갈 데가 없는 지점까지 이른 것이다.
우리보다 인구도 3배나 많고 일인당 소득도 3배나 많은 일본은 4년제와 2년제 다 합한 대학 입학 정원이 약 70만인데도 미달로 대학 문을 닫는 데가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많다. 73만 명 정도 된다. 고교 졸업생은 69만 명. 대학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취직이 될 리가 없다. 4년제든 3년제든 2년제든 졸업을 해도 제 학력을 인정받는 사람이 30%밖에 안 된다. 위장 취업이 아니라 진짜 취업에서 대졸이 고졸 대우받는 사람이 70%나 된다는 말이다.
만약 이해찬이 교육 전문가라면 무엇보다 이런 현상 정도는 모를 리 없었다. 전문가라면 70년대의 생각을 90년대에도 갖고 있는 대통령에게 당당히 맞서거나 싹싹한 태도로 조목조목 알려 주어 그 생각을 바꾸게 해야 했다. 그래도 안 되면 깨끗이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시대착오적인 대통령의 뜻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양 받들어 온갖 해괴한 정책을 남발했다. 문제 쉽게 내는 것을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평가원에 엄명을 내렸다. 정말 웃기는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수능이 그렇게 나오자, 일선 학교에서도 문제를 쉽게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점수 올려주기 전쟁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이해찬 다음 장관인 김덕중이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바람에 너도나도 '수'를 맞아 성적표를 보면 공부 못하는 아이가 거의 없는 듯하다.
학교에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자, 학생들과 학부모는 갈팡질팡했다. 이렇게 되자 못 살고 못 배운 학부모와 그 자식들은 '놀아도' 되는 줄 알고 막 놀았다. 그러나 잘 살고 잘 배운 학부모는 재빨리 학원으로 과외로 아이들을 더 거세게 내몰았다. 더군다나 문제가 쉬워졌으니, 효과는 만점이었다. 전에는 돈을 어지간히 들여도 효과가 잘 안 났지만, 문제가 터무니없이 쉬워지자 멍청한 부잣집 아이들이 과외 덕을 톡톡히 보아 성적이 쑥쑥 올려갔던 것이다. 뒤늦게 아뿔싸, 하고 못 살고 못 배운 학부모들이 자식들을 보충수업비 자율학습비의 10배 20배를 주고 학원으로 보내고 독서실로 보냈지만, 이미 노는 맛을 알게 된 아이들이 통제가 거의 없는 학원과 독서실에서 지겨운 공부를 할 리가 만무했다. 때마침 전국에 세계 제일의 초고속통신망이 깔리고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등이 나오자, 학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전자 오락계를 평정했다.
일률적인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은 분명 문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을 훨씬 능가했다. 또한 그런 제도는 정부와 전교조가 한사코 고수하는 평준화란 이름의 획일적인 교육 정책 때문에 생긴 제도이다. 3류 학교의 대명사였던 미아리고개의 서라벌 고등학교가 평준화되면서 시원찮은 학생만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도 대거 들어오자, 신바람이 난 교사들이 1학년 때부터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무지막지하게 시켰더니, 당장 서울에서 초일류 고등학교가 되었다. 서울대에 무려 70여명이 들어간 것이다. 이걸 보고 어느 학교가 안 따라하겠으며 어느 학부모가 그 방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좋은 제도란 보통 사람도 그 제도 안에 들어가면 잘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비범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잘한다. 그러나 교사는 40만 명이다. 대우나 지위나 다른 데보다 나을 게 없는데, 비범한 사람만이 모여들 리가 없다. 그들을 보통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비범한 사람은 열에 한둘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 보통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교육개혁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범한 사람만이 수업을 멋지게 이끌 수 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사 중 열에 일곱 여덟은 지금의 비범한 한두 사람 못지 않게 잘했다. 김대중 정권은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 살상'을 하고 '교육 파괴'를 했다는 산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드 대란을 보고도 카드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교육 대란은 보고도 아무도 잘못했다는 장관이 없다. 그런 교사 단체도 없다. 오히려 일선 교사의 무능과 나태를 나무라고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관을 나무란다. 이런 걸 두고 적반하장이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전교조는 이해찬을 더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듯하다.
이제 못 살고 못 배운 학부모의 자녀는 명문대 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부의 세습에 이어 지식의 세습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부모가 못 살고 못 배웠더라도 그 자녀들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학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재주 있고 성실한 학생들은 명문대에 척척 붙었지만, 이제는 학교서 안 해 주니까, 평준화된 대도시일수록 부자와 지식인에게 유리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사회 계층이 완전히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게 바로 서민들을 위한다는 취지의 이해찬식 교육개혁의 실상이다.
교육 개혁이란 걸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교육이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시대에 앞서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자유와 개방과 자율과 다양성이 필요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고 교육부와 전교조가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준화와 입시제도를 통해 평등과 폐쇄와 타율과 획일성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목숨을 걸고 나아가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대학부터 사립부터 먼저 자율권을 주어야 교육 문제는 풀린다. 입시든 등록금이든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법을 만들어, 그것으로 간접적으로 도와 주어야 한다.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눈에 불을 키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사교육도 하나의 당당한 고부가가치의 교육산업임을 인정하고 공교육을 그보다 더 좋게 만들려고 애를 써야 한다. 기껏 생각한다는 게 국가 공권력을 발동하여 EBS만 배불려 주고, 과목당 수십 권씩 만들어 거기서 입시 문제를 낸다고 하여, 무슨 러브호텔이나 룸살롱처럼 퇴폐산업이라도 한 듯이 멀쩡한 출판사들을 하루아침에 우르르 도산시켜 무수한 실업자를 양산하고, 국정 교과서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일개 공기업의 참고서를 국정교과서보다 더 대단한 바이블로 만들어 다양한 학교 교육을 우습게 만드는 획일적인 독재적인 사고방식부터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EBS 강요로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희희낙락해서야, 이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사교육이 아니라 교육부 수장과 교육학자와 교육관료와 전교조가 교육에 제일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명령과 지시와 곡학아세로 제발 가난하고 못 배운 집안 사람의 2세, 3세들에게 명문대라는 희망의 별을 빼앗아가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