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숲길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팔월 마지막 날이다. 일요일 아침나절은 느긋하게 미적거리며 원고를 몇 줄 정리했다. 점심 식후 집에서 가까운 도심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어디 좀 먼 곳으로 떠나보려 해도 집사람 체력이 달려 그럴 수 없었다. 용지호숫가를 걷거나 반송공원엔 자주 오르내려 새로운 코스를 택했다. 창원실내수영장이 있는 용지사거리에서 창원 폴리텍대학 후문으로 갔다.
그곳 교육단지 뒷산 숲길을 지나 충혼탑에서 시티세븐 뒷산까지가 대상공원이다. 도심 숲속에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코스다. 솔밭 사이 황톳길 산책로는 발바닥에 와 닿는 촉감이 좋았다. 나이 든 할아버지와 중년 아낙이 더러 오르내렸다. 꼬마를 데리고 나선 젊은 아빠는 일찍 떨어진 밤톨을 까서 손에 쥐어주었다. 아트막한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도 몇몇 사람이 올라 시내를 조감하였다.
창원과학관 곁에 있는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쉬었다. 이어 극동방송 앞으로 내려가 충혼탑 사거리에서 창원수목원으로 들었다. 잔디밭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보였다. 도톰한 연잎이 수면을 가득 덮은 연못에는 분홍색 수련 꽃이 함초롬히 피어 있었다. 연못 위로 거닐도록 만들어 둔 데크로드에서 폰 카메라로 연꽃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물고기들은 꼬리를 흔들고 다녔다.
창원수목원은 시민들이 찾아와 쉬기 좋도록 여러 갖지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하얀 모시 적삼을 연상하게 하는 옥잠화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야트막한 꼭대기에 하늘정원이라는 분수대가 있었다. 언덕 곳곳에는 갖가지 수목과 화초들이 심겨져 있었다. 가을이 오는 문턱에 들녘으로 나가면 쉬 볼 수 있는 벌개미취가 연보라 꽃을 피워냈다. 무더기로 피어나니 더 아름다웠다.
정상부에서 남쪽 일부는 수목원 조경이 아직 덜 되어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창원대로와 맞닿은 남향의 맨발 잔디공원에는 신발을 벗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책을 나선지 한 시간 남짓인데 집사람은 더 걷기가 힘겨운 모양이었다. 되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홈플러스까지 걸었으면 싶었다. 창원대로로 내려서 공원 숲길을 따라 걸으니 집사람은 힘 겨워했다.
버스노선은 없고 택시가 잘 다니질 않아 이제는 홈플러스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대공원 족구장엔 편을 가른 족구 마니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 곁의 천연잔디에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게이트볼 시합에 열중이었다. 꽃 중년이 부럽지 않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주말 여가시간 건강한 생활을 위해 알뜰히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용원지하차도가 가까운 공원 숲에는 해정유적지(海亭遺蹟趾)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창원이 계획도시 출범할 당시 봉암 갯벌 가까운 바닷가에는 ‘해정’이라는 마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반세기 전 산업화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내주고 정든 땅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창원 시내 곳곳엔 그 당시 자연 마을이 있던 자리에 애향의 정을 새긴 빗돌이 세워졌다.
창원천교를 건너니 홈플러스였다. 집사람은 많이 지쳐 쇼핑할 기력이 없어 곧장 집으로 갔으면 했다. 창원천은 일주 전 내린 집중호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살은 넘쳐흘러 둔치와 하천바닥을 할퀴고 갔다. 이제 붉은 황톳물은 잦아들어 수량은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모래톱에 왜가리와 쇠백로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녁 식사거리를 찾고 있는 듯했다.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일요일 오후 도심 공원 숲길로 산책을 나선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집사람에겐 산책이 한 시간 정도면 알맞은데 배로 걸었으니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만도 했다. 홈플러스에 들어가 과일을 골라 보려던 생각은 접고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 농협 마트에 들렸더니 추석 제수로 쓰일 과일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여러 과일 가운데 포도를 한 박스 사서 둘러메었다. 1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