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거 어떡해요!” 정수리 쪽은 밝고 아래 머리카락은 어둡다. 층진 경계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정수리만 환하게 동동 떠 보이는 후배는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이전에 셀프 염색을 했었나요?” 아베다 교육부 최정윤 과장이 이 난감한 사태를 설명하자 이렇게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새치가 고민인 후배는 갈색 버블 염모제를 몇해 전부터 꾸준히 사용했단다. 그런데 이번에 평소보다 훨씬 밝은 색에 도전하려고 미용실을 찾았다가 이런 사단이 난 것. “염모제가 덮이고 덮인 모발에 염색을 하면 색깔이 탁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염색을 한 적이 없는 천연 모발, 그러니까 정수리 부분은 색깔이 선명하게 나오죠. 경계선이 생긴 건 여러 사항을 고려하지 못한 디자이너의 실수지만, 반사빛 영향도 있는 듯하네요. 금빛, 구릿빛이 도는 붉은색 등 따뜻한 계열은 시술 후 반사빛으로 원래 색상보다 더 밝아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윗부분은 더더욱. 반면 잿빛, 카키, 보라 등 차가운 계열은 시술 당일엔 어두워 보여요. 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고, 후자는 밝아집니다.”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했던 경계선은 사라지고 색상은 차분해졌다. 심지어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아 후배의 당혹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최근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염색은 중요한 헤어 트렌드가 됐다. 90년대 이후 우리가 이렇게 밝고 다양한 헤어 컬러에 열광했던 적이 또 있을까. 염색이라면 머리카락 상한다며 손사래 치던 한국 여자들도 너도나도 화사한 컬러로 모발을 물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컬러는 아름답고 오래, 손상은 최소화할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염색한 모발은 내성이 생긴다 문제는 가볍고 환한 색상이 유행한다는 점. “검정은 쉽죠. 짙은 색으로 염색할 거면 집에서 대충해도 비슷해요.”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 교육부 김달래 차장이 말했다. “문제는 항상 밝게 염색할 때 생기죠. 특히 셀프 염색을 하면 아무래도 얼룩이 지거나 색상이 뭉치는 부분이 생기기 쉽죠. 그리고 이런 얼룩덜룩함이 밝게 염색할 때 더 두드러져 균일하게 톤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또 한번 염색한 모발은 내성이 생겨서 더 강력한 염모제를 필요로 한다. 염색 후 생각처럼 색상이 나오지 않았다고 다음날 같은 제품의 더 밝은 색상 염모제로 염색을 해도 원하는 색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럴 땐 탈색 후 염색을 해야 원하는 색상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최근 3개월 내 코팅·매니큐어 시술, 헤나·허브 컬러 염색, 흑색·흑갈색 등 짙은 색상으로 염색을 했다면 색상이 잘 나오지 않을 확율이 수직 상승한다. 그렇다면 강력한 프로용 염모제를 사용하면 어떨까? 김달래 차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트 제품이 편하고 안전한 상품 개발에 주력한다면, 전문가용은 다양한 색상과 조제 여부를 중시합니다. 즉, 전문적인 지식 없이 사용하다 두피나 모발에 자극을 줄 수도 있고, 문제가 생겨도 하소연할 곳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용 염모제를 함부로 사용하는 건 위험합니다.” 즉 염색이 손에 익지 않다면 밝은 염색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
염색을 망치는 요인들 아모레퍼시픽 헤어케어 연구팀 박재정 연구원은 모발을 충분히 건조시킨 후, 또 실내 온도 20℃ 이상인 곳에서 염색을 하면 발색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단, 드라이어로 열을 가하는 것은 금지!). 또 모발이 두껍거나 처음 염색인 경우에 염모제를 모발 전체에 도포한 후, 샴푸 5~10분 전 염모제를 한 번 더 덧바르면 염색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모발 길이와 머리숱 정도에 따른 사용량도 중요하다. “단발머리는 1통의 2/3, 어깨선에 닿는 긴 머리는 1통 전량,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1과 1/2 혹은 2통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사용량이 적으면 염색이 잘 안 될 수 있으니 모발에 스며들도록 부드럽게 문질러주면서 충분히 발라줍니다.” 박재정 연구원은 바르는 순서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치용과 멋내기 염모제는 바르는 순서가 다릅니다. 새치용은 새치가 많은 부분부터 먼저 발라야 합니다. 멋내기 제품은 염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모발, 특히 두피에 열이 많고 모발이 가는 경우에는 두피 열기에 의해 정수리 부분이 밝게 나올 수 있으므로 모발 끝부분부터 먼저 바르고 정수리 부분을 나중에 발라야 합니다. 그러나 염색을 한 적이 있고 뿌리에 검은 머리가 자라난 모발의 경우에는 반대로 정수리 부분부터 먼저 발라야 합니다.” 셀프 염색시 흰머리가 잘 염색되지 않는다며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밝은 색상의 멋내기 염모제는 모발을 밝게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흰 머리를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니 새치용을 사용할 것.
미용실에서 염색 전 알아둘 것 염색하는 날은 머리를 감지 마라. 일반적으로 모발을 밝게 해주는 염모제에는 조직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두피도 말캉하게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이것이 두피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보호막이 돼줄 피지막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미용실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또 원하는 컬러를 미리 정해서 미용실을 방문할 것. “알아서 해주세요”만큼 위험한 발언도 없다. 어떤 계열로, 어느 정도 밝기가 좋은지 미리 결정하고 가도록 하자. 도저히 모르겠다면, 평소 자주 입는 옷 색깔과 스타일을 알려주고 의논해야 하며, 특히 메이크업도 평소대로 하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냄새가 독하면 나쁜 염모제다? 냄새가 거의 없는 염모제들은 대부분 암모니아 대신 모노 에탄올아미노산을 사용한다. 염색 당일 쾌적하게 염색을 할 수 있는 반면, 모발에 잔류해 다음 번 화학적 시술을 할 때 모발을 손상시킬 수 있다(펌을 즐기는 한국 여자들에겐 간과할 수 없는 문제). 그러니 냄새가 덜 난다고 무조건 순한 염모제라고 오해하지 말 것!
컬러를 오래 지키는 방법 색상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비법으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염색모발 전용 샴푸!“ 색을 빼앗는 요소(자외선, 열, 수분 등) 중 샴푸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염색모발 전용 샴푸는 항산화 성분, 코팅, 케어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모발 속 색소가 빠지지 않고 현재 색상을 더 또렷하게 보이도록 돕습니다.” 김달래 차장의 말에 최정윤 과장도 맞장구를 치며 염색 중 전 처리제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다. “모발을 충무김밥이라고 생각하세요. 큐티클 층이 김이고 그 안의 밥이 모피질입니다. 염색은 바로 이 모피질에서 일어나는데, 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나(다공성 모발) 약하면(손상된 모발) 밥이 터져나가듯, 이런 모발에 염색을 하면 색이 진하고 탁하게 나왔다가 금방 빠져버려요. 그래서 염색 전 영양 보강이 중요합니다. 셀프 염색 시에도 모발에 분무를 했을 때 또르르 흘러내리지 않고 잘 스며든다, 백콤이 잘된다 싶으면 다공성모발, 손상된 모발이니 꼭 영양을 공급한 후 염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