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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산행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터다. 비렁길로 유명한 금오도(金鰲島), 신비의 바닷길이 있는 사도(沙島), 그리고 꽃섬길로 뜨고 있는 하화도(下花島)-. 모두 여수 10대 명품길이다. 섬은 유람선을 타고 빙 둘러보아야 해식애로 이루어진 기암절벽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람선을 타지 않더라도 이름난 3곳의 섬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개도(蓋島) 봉화산(烽火山·336.1m)이다.
개도는 여수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여수시에서 직선거리로 21.5km 떨어져 있는 봉화산은 3개의 큰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산행이다. 마름모꼴로 능선이 이어진 평범한 육산이지만 짙푸른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을 보며 걷는 매력적인 섬산행지다.
개도는 인근 다른 섬들의 유명세에 다소 밀려 있는 듯하지만 한때 인구 3,000명을 넘기도 했다. 김 양식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는 강아지도 기왓장을 물고 갈 정도로 기와집이 많았단다. 점차 잊혀져가는 섬이 되고 있지만 풍광, 먹거리, 역사 등 관광지로의 탄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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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푹신한 흙길과 경치 좋은 바윗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 아이러니하게도 개도를 다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조선시대부터 명맥을 유지해 온 ‘개도막걸리’다. 예전 시골에서 주전자로 막걸리를 받아와 먹던 맛이라고 한다. <막걸리>라는 책을 출간한 이소리 시인은 우리나라 최고의 막걸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산 중턱에도 옹달샘이 흐를 정도로 섬 어느 곳에서나 넘쳐나는 맑은 물이 대한민국 으뜸 막걸리의 명성을 만들었다.
특성상 개도선착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관광안내도에는 정상인 봉화산과 천제봉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 있으며, 등산로의 이정표도 오류투성이다. 개도선착장이 한려선착장으로 표기되어 있는 등 시급히 표준화를 이룬 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홍합 좀 들고 가쑈.”
“섬 인심 푸짐허요.”
대합실 옆에 있는 함바집 수준의 만나식당에서 주민 두 분이 막걸리 잔을 권한다. 1병에 2,000원 하는 개도막걸리를 사서 배낭에 집어넣고 선착장에서 오른쪽 300m 지점에 있는 들머리로 향한다. 예전에는 이정표가 있었지만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없어졌다. 선답자의 표지기가 길을 안내한다.
몇 발짝만 옮기면 바다를 등지고 오르게 된다. 남평문씨 제각부터 공터가 있는 210m봉 능선까지는 20여 분 거리이며 방부목 계단 따라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숫돌 생산지로 명성을 날리던 여석리 선착장의 뱃고동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소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과 삼나무 지대를 통과한다. 바닥에는 검은 박석을 깔아놓아 손질이 잘된 공원에 온 듯하다. 30여 분 밋밋하고 평범한 길을 따라가면 화산마을에서 여석선착장으로 가는 샘골고개를 만난다. 누군가 커다란 화살표로 진행방향을 그려놓았다. 이정표에는 일반적으로 거리(km)를 표기하는데 특이하게도 목적지까지 도착 예상시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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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0m봉을 지나서 도로를 건너면 팔각정으로 이어진 능선길로 연결된다. 개도선착장에서 남평문씨 제각으로 이어진 등산로 입구.
- 가파른 팔각정 가까이 올라갈수록 바다의 조망이 점차 열린다.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맑은 바다 위에 누에모양 섬이 반긴다. 하화도다. 그 뒤로 상화도와 추도, 제도, 낭도까지 스탬프 꾹 찍어 갖고 싶은 한 폭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 팔각정에 앉아 준비한 도시락과 함께 개도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순간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팔각정에서 100여 m 거리에 있는 전망바위에서는 화산마을 전체와 가야 할 봉화산이 삿갓처럼 보인다. 5분 정도 더 내려가자 커다란 목장 같은 초지가 나타난다. 정용운(60) 화산마을 이장은 “개도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해 군마를 키우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봉화산 곳곳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초지와 울타리 같은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방치된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광콘텐츠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한려해상 섬들의 중심 왕좌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방목하고 있는 소의 똥이 사방에 질펀하다. 돌담장이 경계석 구실을 하고 있는 5곳의 커다란 말 목장 터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잡목길이다. 파도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건 모전마을 몽돌해변 소리와 육고여가 지네처럼 튀어나온 지형이라 바닷물을 가두고 있어서다.
개도는 들쭉날쭉한 섬의 지형 때문에 고기들이 산란하기 좋고 먹잇감이 풍부해 강태공들에게 인기 높은 섬이다. 10분 정도 잡목숲을 지긋하게 오르는 동안 섬다운 조망이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넙적 바위 표지판에는 ‘봉화산’이라고 적혀 있어 혼란스럽지만 천제봉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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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화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깎아지른 암릉지대. 아래쪽으로 청석포와 시퍼런 바다가 절경을 이룬다.
- 억새밭 수준의 목장지대가 또 나온다. 우측으로 10m 거리에 옹달샘이 있으나 수량이 일정치 않아 음용수로 권하기는 어렵다. 9부 능선에서 너덜지대로 우회하다가 ‘천제봉’이라고 표기된 이정표 방향으로 50m 오르면 봉화산 정상이다. 표지판에는 ‘천제봉’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삼각점 주변의 흩어진 돌무더기는 봉수대 흔적이다. 고흥 팔영산에서 봉화불이 오르면 이곳에서 금오도, 돌산, 여수 좌수영으로 보낸 중계소였다.
정상다운 조망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에는 동남 방향으로 금오도, 동북 방향 돌산도, 서북쪽으로 하화도와 사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팔영산과 나로도까지 보일 정도다. 크고 작은 한려해상의 섬들의 중심에 왕좌처럼 자리 잡고 있어 개도를 소개할 때면 거느릴 개(蓋)자를 쓴다.
정상 봉화대 터를 지나 소사나무숲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접하게 된다. 암릉지대가 형성된 능선을 따라 멋진 해안절벽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10분가량 진행하면 암릉이 크게 솟구친 고래등 바위를 만난다. 망루에 서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왼쪽으로 화산마을 전체와 금오도 주변의 작은 열도들이 펼쳐진다. 아래로 푹 꺼지며 10여 분 내리막이다. 해안가에는 긴 가뭄으로 바닥이 보이는 개도정수장도 보인다.
운동장처럼 넓은 목장 터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왼쪽으로 내려서면 화산마을이다. 빨간 첨탑을 가진 화정제일교회를 좌표로 삼으면 수월하다. 애교스런 안내문이 있는 철문을 만난다.
‘문을 닫고 내십시오. 죄송합니다. 소가 내려가서 농작물을 손상시킵니다.’
화산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 삼거리에 있는 ‘개도주조장’에 가면 갓 출고한 개도막걸리 시음이 가능하다. 20분 정도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개도선착장이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맞다. 여수 10대 명품길 중 하나인 ‘개도 해풍산행길’을 다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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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능선의 암릉지대에서 본 개도리 일대./2,3개도선착장에서 천제봉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이국적인 풍경의 목장 같은 초지가 여러 곳 있다./4 말을 가둬 키웠으리라 추정되는 경계석 용도의 돌담./5 개도 봉화산은 크게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산행이다. 섬산 특유의 시원한 조망이 볼거리다./6 소를 방목하는 초지가 곳곳에 있어 질펀한 소똥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information
산행길잡이
■개도선착장~남평문씨 제각~샘골고개~ 팔각정~전망대~목장지대~천제봉~봉화산~ 암릉지대~이정표~화산마을~도로~ 개도 선착장 <4시간 30분 소요>
■개도선착장~남평문씨 제각~샘골고개~ 팔각정~전망대~ 목장지대~화산마을~ 개도선착장 <3시간 20분 소요>
교통(지역번호 061)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수여객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10분, 9시40분 2회 한려페리호(665-0011) 철부선이 출항한다. 1시간 소요되며 뱃삯은 1인 편도 8,850원. 백야도(686-6655)에서도 출항한다. 개도 여석선착장까지 오전에는 8시, 11시30분 2회 출항하며 25분 소요되고 편도 4,000원이다. 다만 여석선착장에 도착하면 샘골고개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기타 문의사항 화정면 개도출장소(659-1745).
- 숙식(지역번호 061) 변변한 슈퍼도 없다. 개도선착장 주변에 작은 식당들이 민박을 겸한다. 개도횟집(665-1517), 갯마을식당 (010-4137-2225), 만나식당(665-8736) 이 있다. 화산횟집(665-0586)이 규모도 크고 단체 수용이 가능하다. 백반 6,000원에서부터 삼겹살, 생선회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다. 단체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여수시내로 나오면 남도한정식으로 유명한 한일관(654-0091)이 있다. 해산물한정식 4인상 10만~12만 원, 가볍게 먹으려면 돌게장으로 전국을 재패한 돌산대교 근처 봉산동 게장골목을 찾으면 된다. 1인분 8,000원.
볼거리 작은 돌멩이로 가득 찬 개도 모전해수욕장 몽돌해변은 개도의 볼거리다. 여수엑스포의 중심에 있던 오동도 그리고,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국보 제304호 진남관(鎭南館)은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이 담긴 유적으로 우리나라 단층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