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진은영
너무 삶은 시금치, 빨다 버린 막대사탕, 나는 촌충으로
돌돌 말린 집, 부러진 가위,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 도
마 위에 흩어진 생선비늘, 계속 회전하는 나침판, 나는
썩은 과일 도둑,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밀가루 포대 속
에 집어넣은 젖은 손, 외다리 남자의 부러진 목발, 노란
풍선꼭지, 어느 입술이 닿던 날 너무 부풀어올랐다 찢어
진
앤솔러지
나에게는 다섯 명의 시인이 있지
첫번째 사람
그는 아파
모두가 떠나간 검은 빌딩의 불 켜진 한 층처럼
밤새
통증이 빛난다
눈먼 시간들이 부딪치는 어느 모서리에서
두번째는 용감해
유리 꽃잎이 부서지는
청춘의 안티노미에서 출발
목의 후드를 부풀린 코브라와 녹빛 총구들
침엽수림처럼 솟아오르는 국경을 향해
행진!
너는 곧 죽을 거야
라고
말린 넙치 위에 쓰인 글자들을
맛있게 씹으며
붉은 침 흘리며
다시 출발
___저런, 턱이 부서진다
그러니까
암살자 태양이 뜨는 백야에
세번째 시인은 의사 흉내를 내지
나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대성당이다
라고 그는 외친다
자기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던 성 베드로를 좋아해
네번째 나의 시인은 천재
그는 결코 노래하지 않아
바닥에 옆드려
영원히 입맞추는 꿈을 꾸네
꿈의 꿈속에서 물고 있는
거대하고 말랑한 풍선꼭지
별의 내부는 그의 숨결로 가득하다
마지막 한 사람은
엉터리
그의 갈라진 목소리 안에 또 다른 다섯이 살고 있다
저마다 녹색 침을 퉤퉤 뱉는
다섯마리의 새들을 키운다
새들은 깃털 수만큼의 이미지를 품고 있어
뽑힌 나무들 너머
덜덜거리는 굴착기 위에서
잿빛 깃털들이
여러 빛깔로
흔들리며
떨어지네
마지막 사람은 엉터리
서툰 시 한 줄을 축으로 세계가 낯선 자전을 시작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