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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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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반듯하게 잘 꾸며진 ’간절곶 소망길‘을 따르는, 해파랑길 4코스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03 18.08.02 05: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해파랑 4코스

 

여행일 : ‘18. 7. 21()

소재지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일원

산행코스 : 신리항(4.3)나사해변(2.5)간절곶(4.4)진하해변(거리 및 소요시간 : 12, 3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임랑해변에서 진하해변까지 이어지는 4코스는 부산과 울산의 경계를 넘는 코스이다. 내륙을 통과하는 초반은 볼거리가 거의 없으나 신리항부터 시작되는 해안길을 만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나사리와 송정리 등 바닷가 마을들을 지나는 해안풍경이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 구간에서의 백미(白眉)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간절곶이 아닐까 싶다. 등대를 중심으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데 간절곶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듯 여러 가지 조형물들을 세워놓아 이를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해파랑길 4코스는 원래 임랑해변에서 진하해변까지의 19.9구간이다. 하지만 난 임랑해변에서 신리항까지의 구간은 생략하기로 했다. 눈요깃거리가 그나마 있는 월내항까지의 구간은 지난번 3코스 때 이미 끝냈었고, 그 나머지 구간은 삭막하기만 할뿐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수은주가 34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도 그런 결정을 내리는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트레킹 들머리는 신리항(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동해고속도로(울산-부산) 장안 IC에서 내려와 부산방면 14번 국도를 탄다. 잠시 후 좌천고가도(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서 59번 지방도를 이용해서 31번 국도의 임랑삼거리(장안읍 임랑리)로 옮긴 후 울산방면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신리삼거리(울주군 서생면 신암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잠시 후 트레킹을 시작하려고 하는 신리항에 이른다. 1970년대 초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고리에 살던 주민 27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마을이라는데 한적한 어촌마을 풍경이다. 그러나 수협이 들어섰을 정도로 호황을 이루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2004년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될 즈음에는 태풍이라도 불어올라치면 이 일대의 어선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탐방로는 항구의 끄트머리에 이르기 조금 전, 그러니까 신리 회센터건물을 왼편에 낀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작은 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넘자 또 다른 바닷가가 나타난다. 동글동글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바위들이 널린 독특한 풍경의 바다이다. 계란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형상이라고 해서 공돌 또는 알돌이라고 부른단다. 생김새는 몽돌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무튼 이 근처는 바위 사이로 모여드는 물고기 덕분에 낚시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강태공들 사이에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잠시 후, 그러니까 길을 나선지 10분 만에 신암마을에 이른다. 신암포구를 끼고 있는 신암마을의 역사는 1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씨(尹氏)를 시작으로 안씨(安氏)와 이씨(李氏)가 차례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세 성씨의 시조들이 모여 마을의 이름을 짓기 위해 의논하고 있는데 그들 앞에 구름처럼 크고 흰 바위가 나타났다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구름 운()’ 자와 바위 암()’ 자를 따서 운암동(雲岩洞)이라 정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름인 신암(新岩)은 운암동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마을은 광복 이후에 그 규모가 비대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신암회관을 중심으로 서남쪽을 중리, 동북쪽은 송리로 나누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실패했단다. 현재 신암리에는 신리와 신암, 비학의 행정마을이 있다.



포구의 한가운데에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한 사당(祠堂)이 지어져 있다. 마당에는 운암동(雲岩洞)이라고 적힌 빗돌이 보인다. 이곳 신암리(新岩里)의 옛 이름이니 마을의 공동 수호신(守護神), 별신(別神)’을 모시는 신당(神堂)이 아닐까 싶다. 이곳 신암리에서 지내는 별신굿 풍어제가 제법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별신굿이란 마을의 무속적 축제 가운데 하나로 그 역사는 유구하다. 부산지방에는 요즘 별신굿을 일반적으로 풍어제라 하고 있으나, 예전에는 별신굿 또는 뱃선굿이라 호칭했다고 한다. 별신굿이 고대로 부터 전래한 부족국가의 제천 의식이었던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의 무천(舞天) 등의 국중대회(國中大會)’가 하회(河回)와 같은 마을행사로 축소되고, 한편으로는 해변 어촌의 행사로 변천해 간 듯하다. 따라서 별신의 개념을 사적 가신(私的 家神)’에 대비해서 초가정적·공적인 마을의 공동 수호신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을의 신은 온 마을이 공동으로 모시는 신격이므로 신역(神域)에 있는 신당에다 별도로 모신 별신(別神)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포구의 끄트머리에서 툭 튀어나온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다른 항구가 나타난다.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의 이름이 신암이니 또 다른 신암항인 셈이다. 마을에 포구가 두 개나 들어섰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방파제의 벽면에는 바다풍경이 그려져 있다. 해녀가 많은 이곳의 특징을 살린 것이 아닐까 싶다.




방파제에는 독특한 모양새의 등대가 바다를 향해 서있다. 둥근 원통형의 획일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보통의 등대가 아니라 맥주잔처럼 생긴 것이다. 이곳을 답사했던 어느 기자는 왕관처럼 생겼다고도 했다. 하지만 본래의 모티브(motive)우산이 접혀진 형상이란다. 역시 난 예술에 문외한이 분명하다. 아니 너무 술을 좋아하다보니 그리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해안의 끄트머리에는 작은 해수욕장이 자리 잡았다.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은 보이지 않고, 열 개 남짓한 비치파라솔이 모래사장에 꽂혀있을 따름이다. 그래도 이름만은 반듯하게 지어놓았다. ‘신암 해피비치라니 이름만 듣고는 이렇게 작은 해수욕장인줄 누가 알겠는가.



신암항에서부터는 국토종주 동해안자전거길과 겹친다.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길을 함께 써야 한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2차선의 자동차도로와도 함께 쓰는데 경계선이 애매하다.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라 하겠다. 아무튼 해파랑길은 이제부터 간절곶 소망길을 따른다. 덕분에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걷기 좋은 길이 생겼으니 외롭게 홀로 걷던 도보 여행자에게는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나 같은 여행자들이 부쩍 늘어났을 것이고, 지역경제 또한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을 게 분명하다.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간절곶 소망길은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새해를 여는 간절곶의 명칭과 해맞이를 통해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바람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해안 길이다. 명선교에서 시작하여 남쪽 해안을 따라 신암항까지 10km 구간에 나있으며, 사랑, 낭만, 행복 등 다섯 가지 테마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구간은 이 다섯 개의 코스 가운데 마지막 구간인 행복의 길(신암항에서 나사항까지의 1.3구간)’이다.



오가는 차들을 살펴가며 잠시 걸으니 길가에 신암리유적(新巖里遺蹟)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에는 발굴현장과 출토유물 등의 사진과 함께 이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았다. 1935년 일본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忠)에 의해 즐문토기 유적으로 처음 알려졌으며,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66년과 1974, 1989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 형성된 남해안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의 하나로, 토기·석기뿐 아니라 토제 여신상(土製 女神像)’ 등 신석기 시대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일본 승문(繩文) 시대 유물도 출토됨으로써 일본과의 교류양상도 알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유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안내판 주변이 온통 쓰레기들로 뒤덮여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자전거길을 따른다. 아예 자동차길과 자전거길이 구분조차 없어져버린 길을 잠시 걷자 서생중학교가 나오고 이후부터는 국도 31선을 따른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면서 일으키는 바람소리가 간을 졸이게 만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구간이다. 비록 폭은 좁지만 가장자리에 보행자 전용 길을 만들어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걷자 나사(羅士) 마을이 나온다. 물론 신암항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참고로 나사(羅士)라는 마을 이름은 모래가 뻗어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후에 선비가 많이 배출되기를 원해서 선비 사()’ 자로 바뀌었단다.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60년 전 인조(16241649) 후기에 달성 서씨가 먼저 들어왔다 하며 이후 광주 이씨경주 최씨등이 들어와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도로에서 내려오면 나사포구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포구와 함께 백사장도 길게 이어지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진다. 동으로 대구장끝과 남쪽의 신선암이 활처럼 감싸 안은 길고도 넓은 해안이다. 해변의 길이가 1쯤 되는 모래사장은 정식 해수욕장은 아니란다. 그런데도 바닷가는 피서객들로 넘치고 있다. 하긴 이렇게 넓은 백사장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바다에 물막이처럼 생긴 둑이 쌓여있는 게 보인다(아래 두 번째 사진 참조). 작년엔가 이곳 나사해안에 이안제 설치공사를 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저걸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안제(離岸堤)’란 해안선과 떨어진 해면측에 해안선과 평행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해변에 작용하는 파력(波力)을 감세(減勢)하여 해변을 안정화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당시 기사에서는 이안제 설치를 통해 백사장 확장을 추진하는 한편 양빈(養濱 :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하여 침식 해안에 모래를 보급하여 인위적으로 해변을 조성하는 일), 데크 설치, 해빈광장 조성 등을 통해 나사해수욕장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바다에는 패들보드(Stand Up Paddle board, SUP)를 즐기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왠지 낯설어 보이는 풍경이다. 우리나라와 패들보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내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젠 바닷가로 나가볼 때가 되었나 보다. 서핑보드(Surf boards)를 해보고 싶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만두었었는데 대신 할 수 있는 걸 발견했으니 말이다.



나사해수욕장의 또 다른 특징은 해변 바로 옆에 방파제와 등대가 있다는 것이다. 파란색 문이 인상적인 등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 사진촬영 때 배경으로 삼기에 딱 좋겠다. 또한 이 방파제는 강태공들이 좋아하는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가족끼리 왔을 경우 아빠는 이곳에서 낚시를 하고 엄마와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물놀이를 하면 되겠다.



방파제에 안내판 몇 개가 세워져 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두어 곳에서 이런 안내판들을 볼 수 있었다. 지명의 유래나 구전(口傳) 이야기 등 적혀있는 내용들이 다양하다. 하지만 하나같이 하단에다 간절곶소망길 스토리텔링 중에서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2년쯤 전엔가 간절곶 소망길의 전설과 유래 등을 담은 스토리텔링 책이 발간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를 옮겨놓은 것이지 싶다. 전체 5개 구간 82개의 스토리로 구성된 스토리텔링은 주인석 작가가 서생면지, 울주문화원 문헌과 현지주민과의 현지 인터뷰 등을 기초로 집필했다고 한다.



이젠 평동항으로 가야할 차례이다. 이곳에서 2.4거리인데 간절곳 소망길4구간인 사랑의 길이기도 하다. 나사항의 끄트머리에 있는 모퉁이에서 해안가로 내려서지를 않고 그냥 해안도로(간절곶해안길)을 따른다. 비록 도로를 따르기는 하지만 기괴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한 구간이다.



쉼 없이 부서지고 깨지는 파도 너머로 코발트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짙푸른 동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시선을 아무리 멀리 두어도 그 끝은 수평선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지만 그걸로 이미 위안을 얻기엔 충분하다. 걷기도 전에 시선과 마음을 모두 앗아가는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국내 최장거리 걷기 길인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아래사진과 같이 탐방로가 자전거길은 물론이고 차도와도 겹치는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길은 잘 닦여 있는 편이다. 폭이 넓은데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데크계단이나 데크로드를 놓아 안전을 도모했다.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므로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특히 조금이라도 볼거리가 있는 곳에는 스토리텔링 이야기판을 세워놓아 읽는 재미까지 더했다. 이만하면 나무랄 데가 없는 둘레길이라 할 수 있겠다. 하긴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전국의 52개 걷기 좋은 해안길, 즉 해안누리길에 선정되었을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렇게 3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자 평동항에 이른다. 서생면 대송리(大松里)에 속한 자연마을로 마을 앞 바다에 포구가 조성되어있다. 평동이란 마을 이름은 들이 넓고 평평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선착장이 이층으로 지어진 것 말고는 특별한 볼거리는 없는 평범한 포구라 하겠다.



간절곶 소망길은 이제 3구간인 소망의 길로 접어든다. 평동마을에서 간절곶공원까지 2.6구간이다. 이 구간도 역시 기괴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바닷가를 오른편에 끼고 이어진다. 눈요깃거리가 제법 많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15분 조금 못되게 걷자 원형의 조형물이 세워진 대여섯 평이나 됨직한 데크 마당이 나온다. ‘응응광장이라는데 두 겹으로 이루어진 조형물의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스토리텔링의 이야기판까지 세워져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강양호와 진하랑의 사랑이야기인데 토대가 되는 장소가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회야강일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이곳과는 무관해보이기 때문이다.




응용광장을 지나자마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우뚝 솟아있는 하얀색 등대와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일대가 간절곶 공원이다. 간절곶(艮絶串)이라는 이름은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이곳을 바라보니 마치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생겼다고 한 것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곶은 육지가 바다로 돌출해 있는 부분을 의미하므로 간절곶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넓고 길다는 의미를 가진 이길곶으로 불리기도 하였고,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간절포로 기록되어 있다.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매년 11일이면 새해 첫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레킹을 시작한 신리항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렸다.



간절곶은 정동진, 호미곶과 함께 동해안의 대표적인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간절곶이라고 한다. 이는 국립천문대와 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 증명해준바 있다. 새천년(2000)의 첫날(11) 오전 73126초에 해가 떴다며 그 장소가 바로 이곳 간절곳이었다는 것이다. 하긴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새벽에 온다(艮絶旭肇早半島)’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2000년에 세워졌다는 간절곶 표지석의 뒷면에는 이곳을 찾은 분과 그 후손은 새천년에 영원히 번성할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같은 내용이 한자와 일어, 그리고 영어로도 표시되어 있으니 국제용인 셈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매년 1231일부터 그 다음날인 11일까지 간절곶 해맞이축제가 개최된다고 한다.



표지석 옆에는 굴뚝을 닮은 조형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작년엔가 포르투갈의 해넘이 마을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에서 보았던 조형물을 쏙 빼다 닮았다. 높이 8m에 폭이 1.5~2m라고 하는데 꼭대기에 십자가가 없다는 게 다를 뿐이다. 하단에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Luis Vaz de Camoes; 1524 ~ 1580)'가 쓴 시 구절까지 적어 놓았다.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마을에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곳 간절곶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라는 의미인가 보다. 육지의 끝이 아니라 바다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라는 이미지를 품고서 말이다.



한켠에는 높이가 5m에 이른다는 엄청나게 큰 우체통도 만들어 놓았다. 1970년대에 사용된 옛 우체통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진짜 우체통이라고 한다. 소망하는 바를 엽서에 적어 넣을 경우 실제로 배달이 된다는 것이다. ‘소망 우체통이란 이름이 붙게 된 이유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엽서를 구입할만한 판매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만들 내가 아니다. 내가 전하고 싶은 상대가 옆에 있고, 전하고 싶은 소망은 단 하나 사랑이니 말이다. 집사람에게 다가가 허그(hug)’를 시도해보지만 집사람은 손사래를 친다. 그래 오늘은 사랑도 귀찮을 정도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다.



우체통에서 대각선 언덕으로는 간절곶 등대가 있다. 이곳에 처음 등대가 생긴 것은 1920, 지금의 등대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해맞이 등대'가 되었다. 이곳은 국립천문대와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로 공포함에 따라 더욱 유명해졌다. 주변 경관도 빼어난 편이다. 이른 봄,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이곳 등대에서 바라다보는 유채꽃밭이 특히나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 계절이라고 해서 하등에 뒤질 것은 없다. 푸른 바다가 거문고 소리가 되어 흐르는 바닷가이니 어느 계절인들 절경이 아니겠는가.



등대는 백색 8각형의 기둥에 지붕은 10각형으로 동기와를 얹어 한옥의 멋을 냈고 전망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멋진 자태다. 하긴 울산 동구의 울기등대와 함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까지 선정되었다니 어련하겠는가. 아무튼 오랜 세월 동안 뱃길을 인도하며 한 자리를 고집하고 있는 희고 정갈한 모습에 경건함마저 든다. 참고로 이 등대는 누구나 자유롭게 올라가볼 수 있다고 한다. 원통형의 등대 안으로 들어가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에 이를 수 있단다. 하지만 오늘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일품이라는 전망대에서의 조망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마당의 한쪽 귀퉁이에는 조형등탑을 복원해 놓았다. 1979년부터 2001년까지 20여 년 동안 동해안을 밝혀오던 등대의 등탑(燈塔)이란다. 신등탑을 건립하면서 철거된 기존 등대의 등롱(燈籠)과 등명기(燈明機)를 설치하여 상반부를 복원했다는 것이다. 그 옆에는 연인체험 용으로 (Something의 파생어)’ 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연애와는 알게 모르게 다르면서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는 ’, 그런 썸을 직접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이용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트모양의 포토죤 주위에 세워진 네 개의 부스에서 이름, , 혈액형 등으로 커플궁합을 맞추어보면서 상대방의 애정도(愛情度)까지 확인하면 된다. 궁합을 맞춰보지 않았던 우리 부부이기에 이제라도 맞춰볼까 했지만 이왕에 늦었으니 그냥 살아가라는 모양이다. 난데없이 금()줄이 쳐져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대충 둘러봤으면 이젠 또 길을 나설 차례이다. 큰 날개를 편 풍차가 운치를 더해 주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높이 15m짜리로 포토죤(photo zone)‘으로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다. 저런 풍차를 사진의 배경으로 넣었을 경우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낯선 이방의 세계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멋진 '인생 샷'을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라 하겠다.



몇 걸음 더 걷자 대송항이다. 이곳의 명물은 시계탑광장인데 지금은 경관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해안을 매립해 만든 너른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시계를 넣은 철제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시계탑광장이란 이름이 붙었나 보다. 파고라(pergola의 일본식 발음)’의 외관이 특이하게 생겼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으나 여름철이면 음악회나 가요제 등이 자주 열리는 울주군의 문화 명소라 여기면 되겠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혜은이, 진시몬, 이재성 등이 출연하는 울주군 간절곶 오딧세이84일에 이곳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리는 현수막이 난간에 매달려 있다. 아무튼 이곳에서 난 방파제 끄트머리에 있는 붉은색 등대에 들러본다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연인들을 위한 프러포즈 등대가 있다는 데도 말이다. 등대에 서면 음악과 팡파르가 흘러나오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난 집사람에게 재도전 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날 받아줄 만한 사랑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건 나만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겠지?



시계탑의 뒤로 가자 간절곶 드라마세트장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MBC 드라마인 메이퀸욕망의 불꽃그리고 TV조선에 방영했던 한반도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이 드라마들의 촬영세트장이 이곳에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언덕 위로 오르니 중세 서양의 궁전(宮殿)을 쏙 빼다 닮은 이층 건물이 나타난다. (dome) 모양의 작고 예쁜 건축물도 보인다. 지난 2010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촬영을 위해 지은 드라마세트장이라고 한다. 해주의 아버지를 죽이고 조선소를 집어삼킨 장도현의 저택이란다. 이후 메이퀸한반도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지금은 비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촬영이 끝난 후 활용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다가 지난 2015년엔가 갤러리(gallery)와 카페로 새 단장을 했다고 하더니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던가 보다.



MBC-TV에서 방영했던 메이 퀸출연 배우들의 실물 모습을 재현한 포토존도 만들어져 있다. 김재원, 재희, 한지혜 등 선박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 이 드라마는 2012년 방영 당시 26.4%의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집사람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리고 두 남자의 사이로 쏙 파고든다. 젊고 예쁜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는 아직도 소녀가 분명하다.



간절곶회센터를 지나자 탐방로는 숲속으로 파고든다. 비록 잠깐이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해송(海松)들이 하늘을 가려주는 멋진 숲길이다. 잠시 후 탐방로는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곤 나무계단을 이용해 해안가 바위절벽을 오르내리며 이어진다. 바위벼랑과 해송, 그리고 푸른 바다가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잠시 후 어촌관광단지로 조성된 송정항에 이른다. 간절곶에서 출발한지 35분만이다. 이곳도 역시 해안을 끼고 있으나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다른 해안들과는 달리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깔려있는 몽돌해안이다. 그래선지 가족나들이 나온 피서객 몇 명만 보일뿐 한적한 풍경이다. 이곳의 볼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만들어놓은 시설이 아닐까 싶다. 얼핏 양식시설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유료 낚시터라고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낚시를 할 수 있다니 보기 드문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송정항을 지나자 바다거북이가 그려진 너른 광장을 만나고 이어서 바위벼랑에 걸터앉은 전망대에 올라선다. ‘송정공원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이웃에 있는 송정항은 물론이고 바다 저 너머에 있는 울산시가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다. 벼랑 아래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다. 그래선지 전망대에다 스토리텔링 안내판을 두 개나 설치해 놓았다. 원님의 욕심을 날려버릴 정도로 맛있는 미역이 채취된다는 미역바위, 상납돌과 왜가리들이 떼를 지어 논다는 왜갈돌이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바닷가를 따른다. 걷는 게 다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웬만한 태풍에도 개의치 않을만한 데크로드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말이다. 이 구간에서의 특징은 양식장이 아닐까 싶다. 규모가 엄청나게 클 뿐만 아니라 기괴하게 생긴 건물까지 들어서있어 자못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걸으면 솔개공원에 이른다. ‘처럼 툭 튀어나온 모퉁이에 돌의자 등을 놓아 탐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좋다. 진하해수욕장은 물론이고 울산공단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어서 반석이 깔려있는 해안가를 조금 더 걸으면 이번에는 아예 데크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실컷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이 부근도 역시 수많은 돌섬들이 바다에 널려있다. 밀물 때는 어김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암초와 같은 섬들이다. 그중에 유난히도 큰 바위집단이 눈길을 끈다. 스토리텔링 이야기판에 두꺼비 처녀바위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는데 저 바위를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분이 가마우지섬이라고 알려주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원산책로가 끝나면 널따란 솔개해수욕장에 내려선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어우러진 솔개해수욕장은 바위지대를 끼고 있어 멋스러운 자연 풍광을 연출한다. 하지만 텐트들이 많이 비어있는 걸 보면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 보다. 그렇다면 조용히 힐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겠다. 맑고 푸른 바다에다 모래까지 고우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는 걷기 수월한 데크로드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모래사장을 걸으며 발 도장을 남겨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송정해안에서 이곳까지는 25분이 걸렸다. 맥주를 마시느라 잠깐 쉬었던 시간을 포함해서이다.



모래사장이 끝나면 또 다른 비경인 바위지대가 나온다. 어느 것 하나 모양새가 같은 게 없는 기암괴석들이 바닷가에 널려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신랑각시바위가 아닐까 싶다. 두 개의 바위가 마주보고 있는데, 서있는 게 신랑바위는 각시바위는 앉아서 절을 하는 모양새란다. 이곳에도 스토리텔링 이야기판이 세워져 있지만 정교한 맛이 없는 것 같아 옮기는 것은 생략했다.



바위지대를 지났다싶으면 대바위공원이다. 옛날 울릉도를 지키던 할랑할미가 간절곶 몽돌을 주워갖고 돌아가는 길에 초동들의 노랫소리에 홀려 뛰어놀다 흘린 돌들이란다. 그 돌들을 통틀어서 대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 바위들이 몰려있는 해안가 산자락에다 널따란 공간을 만들고 대바위공원이라고 적힌 커다란 빗돌까지 세워두었다. 이 공원의 주요 시설로는 산책로와 달바라기언덕, 명선전망대 등이 있다고 한다. 간절곶에서 이곳까지는 간절곶 소망길2구간인 낭만의 길(2.1)’이다.



일대의 바위 가운데 가장 큰 바위가 있는 언덕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진하해수욕장 주변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화 속의 명선도가 크게 그려진 것을 보면 얼마안가 트레킹이 마감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길을 잘 닦아놓았는데 출렁다리라고 빠졌을 리가 없다. 탐방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출렁다리가 아니겠는가. 멋으로 만들었으니 다리 아래에 물이 없음은 물론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울주 해양레포츠센터이다. 울산 지역 최초의 해양레포츠센터인 이곳은 고무보트와 패들보드, 윈드서핑, 카약 등 각종 해양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3층 규모의 본관 1동과 편의시설 및 관리시설 2동으로 이루어졌는데, 해양레저교육을 위한 강의실, 세미나실 등에서 각종 자격 연수는 물론 취미 및 여가생활을 위한 체험활동이 이루어진단다. 건물의 옆 해송 숲속에는 캠핑장과 카페테리아 등의 부대 편의시설, 어린이 놀이터와 바닷길 산책로까지 조성돼 있다. 남녀노소 함께 어울려 즐기기 딱 좋겠다.



캠핑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틀면 주차장이다. 산악회의 버스는 이곳에 주차되어 있지만 난 계속해서 백사장을 따른다. 진하해수욕장의 또 다른 명물인 명선도를 탐방해보고 싶어서이다. 진하해수욕장은 해양레포츠센터에서 시작해 명선교에 이르는 2길이의 해수욕장으로 완만하게 휘어지는 넓은 백사장과 송림(松林), 그리고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방풍림 아래로 난 데크로드를 따른다. 1남짓한 길의 왼쪽으로 죽 늘어선 모텔촌과 수조 가득 해산물을 채운 횟집들이 진하해수욕장의 규모를 말해준다. 딱히 피서철이 아니더라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게 분명하다는 얘기이다.



백사장의 끄트머리 즈음에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던 섬이라는 명선도의 입구가 나온다. 해송(海松)과 일출로 유명한 명선도는 면적 1900, 둘레 500m의 무인도이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섬이었다지만 지금은 뭍과 연결돼 있다. 해당화나 갯메꽃이 많이 피는 곳이라 해서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하고 모래톱을 따르다가 걸음을 멈추고 만다. 중간쯤에 출입금지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하어촌계의 공동양식장이니 주민 외에는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이 열어준 길을 사람들이 막아버린 셈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런 경고판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간절곶 소망길1구간인 연인의 길(1.6)은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해야만 끝난다. 저 앞에 보이는 명선교가 시점(始點), 나로 봐서는 종점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epilogue) : 오늘 트레킹은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application)12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오늘 걸었던 코스가 평지였던 점을 감안할 때 시간 당 3.5는 꽤 더디게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주변 경관을 카메라에 담느라 더딜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이는 무더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은주가 34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것도 햇빛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해안길을 걷는 게 어디 그리 쉬웠겠는가. 걷는데 이골이 날 정도의 전문 산꾼들은 오늘도 4코스(19)를 완주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죽는 줄 알았다는 말로 트레킹을 마쳤다. 이는 오늘의 제반 여건이 그들에게도 악조건으로 작용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로보아 오늘 같이 무더운 여름철, 특히 햇빛이 날 경우에는 해파랑길걷기가 적합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난 8월 달의 일정에서 해파랑길 트레킹을 빼놓기로 했다. 같은 달 하순에 있는 터키여행의 일정과 겹쳐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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