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옥석(玉石) 眞짜 假짜 選別을 위한 교적부(所屬,肢體,組織,編成)행정의 해(後)💖
△새 하늘 새 땅을 소망(所望)하며,(眞짜)⇨(聖靈)✫(假짜)⇨(惡靈) 소속을 분명히 해야△ *축복(祝福)* 해방동이 행전(行傳) (Ezre)⇨(正直)⇨(觀心)⇨(信賴)⇦(義理)⇦(順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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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2:1-17절) 이단(異端)의 활동(活動)서론
最近에 와서 세계적(世界的)으로 복음(福音)을 부정(不正)하는 사건(事件)이 크게 두 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이른바‘다빈치 코드’라는 책(冊)과 영화(映畫)였습니다.‘다빈치 코드’ 라고 하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최후(最後)의 만찬(晩餐)’이라는 그림에 비밀(祕密)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책(冊)의 저자(著者)는 최후(最後)의 만찬(晩餐) 석상(席上)에서 예수님 옆에 기대어 앉은 수염이 없는 젊은이가 제자(弟子)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結婚)을 했다고 주장(主張)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原來) 역사(歷史) 소설(小說)이라는 것은 역사(歷史)의 어떤 소재(所在)에서 저자(著者)가 자기(自己)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小說) 허준을 보면, 허준의 선생(先生)이 밀양의 얼음골에서 자기(自己) 시신(屍身)을 허준이 분해(分解)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失題)로는 그런 선생(先生)도 없는데, 다 지어낸 이야기인 것입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城) 밖에 있으리라(계22:15) "지어내다"의 뜻은 거짓으로 감정이나 표정을 꾸며낸다는 의미. 예)"애써 웃음을 지어내다"와 같은 뜻.
마찬가지로‘다빈치 코드’도 저자(著者)가 그림을 보고, 상상(想像)을 해 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앙(信仰)과 관계(關係)되는 것들은 이런 상상(想像)을 조심(操心)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映畫) 벤허 같은 경우(境遇)에는 실제(失題)로 있는 일은 아니지만, 조사(照査)를 많이 해서 거의 일어났을 가능성(可能性)이 높은 이야기를 소설화(小說化)한 것이지만, 다빈치 코드는 완전(完全)히 저자(著者)의 상상력(想像力)의 소산(消散)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통(通)하여 많이 유포(流布)되었던 것은 사실(事實)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가룟 유다의 복음서(福音書)’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복음서(福音書)’는 아주 요래된 이집트의 콥틱어로 기록(記錄)된 문서(文書)를 찾아서 해독(解讀)을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복음서(福音書)에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背信)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자기(自己)를 밀고(密告)해 달라고 가룟 유다에게 부탁(付託)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가서 일러바쳤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전문적(專門的)인 학자(學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번역(飜譯)에 오류(誤謬)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제대로 번역(飜譯)해야 할 것을 변역(飜譯)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원본(原本)을 공개(公開)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再臨)의 시기(時期) 에 대(對)하여 가장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킨 파(派)는 안식교(安息敎)일 것입니다. 이들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숫자(數字)를 가지고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시기(時期)를 계산(計算)을 해서 예수님이 언제 재림(再臨)하신다고 발표(發表)를 했다가 맞지 않으니까 시기(時期)를 뒤로 연장(延長)을 했습니다.
그래도 불발(不發)이 되니까 예수님이 이미 공중(空中)에 재림(再臨)을 했다는 식(式)으로 주장(主張)을 변경(變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한 시한부(時限附) 종말론(終末論) 파(派)에서는 날짜와 시간(時間)을 정해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발표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어느 텔레비전에서는 휴거(休居)하는 시간(時間)을 앞두고, 모두 흰옷을 입고 서서 찬송(讚頌)하는 시한부(時限附) 종말론자(終末論者)의 추태(醜態)를 아예 중계방송(中繼放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한 사람도 휴거(休居)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일반인(一般人)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기독교(基督敎) 전체(全體)를 광신자(狂信者)집단(集團)으로 생각(生角)을 해서 자녀(子女)들을 교회(敎會)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단(異端)들이 아주 좋아하는 숫자(數字)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십사만 사천’이라는 수(數)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맹렬(猛烈)하게 활동(活動)하고 있는 이단(異端)들은 이‘십사만 사천 명’안에 들어야 구원(救援)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열심(熱心)히 사람들을 포섭(包攝)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敎人)들은 종말론(終末論) 때문에 주위에서 공격(攻擊)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이유(理由)는 데살로니가라는 지방자체(地方自取)가 그리스 북부(北部) 지방(地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대개(大槪) 세 가지 경향(傾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전통(傳統) 그리스 신화(神話)를 추구(追求)하는 신앙(信仰)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無條件) 제우스신(神)이나, 다른 신(神)들의 존재(存在)를 믿고, 신전(神殿)의 점(占)쟁이들이 하는 신탁(神託)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信仰)은 거의 무속적(巫俗的)인 신앙(信仰)이었고, 점(占)쟁이 신앙(信仰)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디오니소스종파로서 술에 취해서 완전히 발광(發狂)을 하는 밀교(密敎)의식(儀式)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온갖 음란(淫亂)과 광란(狂亂)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플라톤과 같은 철학적(哲學的)이면서도 종교적(宗敎的)인 성향(性向)을 띈 아주 난해(難解)하고, 복잡(複雜)한 영지주의(靈脂主義) 신앙(信仰)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지는 그 정체를 잘 모르겠지만, 이 당시 데살로니가에 상당한 이단(異端)의 세력(勢力)이 활동(活動)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주장(主張)이 무엇인가 하면, 이미 예수님의 재림(再臨)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만약(萬若) 예수의 재림(再臨)이 지나갔다면, 이들의 믿음은 완전(完全)히 엉터리가 되게 되고, 결국(結局) 구원(救援)받으려면, 이런 이단(異端)들의 가르침을 받아야한다고 주장(主張)을 했던 것입니다.
휴거(休居) 파(派)에서도 사람들을 두렵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 휴거(休居)가 되지 않으면, 나중에 이차(二次)로 휴거(休居)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반드시 순교자(殉敎者)만 휴거(休居)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순교(殉敎)를 하지 않으려면, 지금 휴거(殉敎)를 해야 한다고 주장(主張)하니까 사람들이 겁이 나서 지금 휴거(休居)하려고 달려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궁금한 것은 과연 예수님은 재림(再臨)을 하기는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긴 기간(其間)동안 재림(再臨)하지 않으시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우리는 그 시기(時期)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Ⅰ.Ⅱ.Ⅲ編을 사모(思慕)하며 기다립시다. 아-멘
찬송가 508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오늘의 묵상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民族)을 제자(弟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베풀고,내가 너희에게 분부(吩咐)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世上)끝날까지 너희와 항상(恒常)함께 있으리라(마28:18-20절) |
※생명의 양식이 귀찮아 읽지 않고, 삭제하는 분은 댓글로 *중단* 하면 즉시 중단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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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복음*축복의 통로💖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소통의 시대,상호 댓글 아멘 소통☞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첫댓글
딱구리를본명으로회복하세요.가명은축복기도가않될뿐아니라.천국생명책에도
기록되지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