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는 10월 29일 새벽 서머타임이 해제됐다. 동절기 시간대, 즉 계절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이미 겨울로 접어든 셈이다. 평소에도 겨울 나기가 쉽지 않는데, 전시 상태로 두번째 맞는 올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보통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하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러시아군의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전기가 끊어져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하고, 시도 때도 없는 단전으로 요리 등 일상 생활에서의 불편이 생각보다 컸다는 게 지난 겨울의 기억이다.
지난해 겨울 정전으로 암흑천지로 변한 키예프(키이우)/텔레그램 캡처
올 겨울은 지난해보다 나을까? 지난 겨울의 학습효과로 모두가 미리미리 대비하고 있으니,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지난달(10월) 26일 크리스토퍼 카볼리 유럽 주둔 나토(NATO) 합동군 사령관과 토니 라다킨 영국 합참의장과 협상을 갖고 "특히 가을-겨울 기간에 방공망을 강화해 주요 인프라 시설을 보호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겨울철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공망 시스템 지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희망을 안겨주는 뉴스는 몇 가지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7일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구소련제 방공시스템과 미국의 첨단 방공미사일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공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구소련의 '부크' 미사일 발사대에서 미국의 '시 스패로'(Sea Sparrow) 미사일을 발사하고, 소련식 레이더와 미국의 '사이드윈터'(Sidewinder) 미사일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미 관리들은 이같은 시스템은 '프랑켄 샘'(FrankenSAM)'이라고 부르며 최종 테스트를 거쳐 겨울이 오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호크미사일/사진출처:sciencetechniz.com
NYT는 또 우크라이나에서 가동에 들어간 냉전 시대의 '호크' 미사일 시스템도 겨울철 방공망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앞서 지난달 26일 발표한 1억5,000만 달러(약 2037억원) 규모의 대(對) 우크라 추가 지원안에 방공 미사일을 대거 포함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나삼스(NASAMS)와 AIM-9M 대공 미사일, 스팅어 휴대용 미사일 등이다. 물론, 115㎜·105㎜ 포탄과 자벨린 대장갑 미사일 등도 포함됐다.
숄츠 독일 총리도 대공 방어 시스템을 포함한 대 우크라 군사 지원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거기에는 패트리어트, 아이리스(Iris)-T60 방공미사일과 게파르트(Gepard) 방공자주포와 같은 방공망 장비가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은 '호크' 미사일 발사대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혓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방공망 강화 전략을 러시아가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뚫을 계책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드론이 키예프(키이우)로 날아가 공격에 성공하는 장면/텔레그램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소그룹으로 '샤헤드' 드론을 발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지 통합 TV채널(телемарафон)에 나와 "적군(러시아군)은 특정 지역에 위치한 방공 부대와 그 자산을 파악하고, 후속 공격 계획시 활용하기 위해 드론을 띄우고 있다"며 "정찰을 위한 드론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가 겨울철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위해 한 달 이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순항 미사일 공격을 단행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정보당국은 지난달 중순, 장거리 폭격기를 동원한 러시아군의 대우크라 미사일 공격이 지난 9월 21일 이후 3주간 중단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군정보국(GUR)의 분석은 더욱 구체적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바딤 시키비츠키 GUR 대변인은 6일 "러시아가 최근 몇 달간 미사일 발사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왔다"며 "비행 거리가 350km 이상인 약 870기의 고정밀 미사일(칼리브르 165기, 이스칸데르 290기 등)을 축적해둔 상태"라고 주장했다. 지난 겨울 대규모 미사일 공격 전과 유사한 규모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 미사일들을 올 겨울 에너지 부문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드미트리 쿨레바 외무장관도 독일 벨트지와의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최악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며 "(독일이 거부하는) 타우루스 장거리 미사일 등 대공 방어망 장비 공급을 거듭 요청했다.
독일의 공대지 타우루스 미사일/사진출처:Armyinform.com.ua
스트라나.ua는 "러시아가 지난해 에너지 시설 공습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해, 올 겨울에도 수백 개의 미사일을 에너지 기반시설 타격에 쓸려고 할런지는 의문"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방공 시스템을 확보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보복 드론 공격도 자주 예상된다고 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 방산업체 '우크르오보론프롬'이 비행 거리 최대 1천km에 달하는 '샤헤드형 드론'의 대량 생산을 발표했다"면서 "이같은 우크라이나 군수산업체 발표는 러시아 측에게 에너지 인프라 폭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가 군수 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끊기 위한 기반 시설 공습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공습에 관한 한,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측면도 있다. 자체 생산및 보유 미사일·드론 외에도 이란제 장거리 미사일을 도입,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10월 18일을 기점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이란 무기 판매금지 결의안이 해제되면서, 이란산 미사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알리 바게리 카야니 이란 외무차관도 "이란을 오가는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과 보급품에 대한 모든 제한이 해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파테흐-110 미사일/사진출처:itc.ua
미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가 눈독을 들이는 이란 미사일은 사거리 300~700km의 파테흐-110과 파테흐 미사일의 개량형인 '졸파가르'(Золфагар) 탄도 미사일이다. 사정거리 700km의 졸파가르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서부 영토까지 공격 가능하다. 탄도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은 순항미사일보다 격추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중력의 힘을 이용해 가속하기 때문에 상공에서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한다.
게다가 이란산 파테흐-110 미사일은 러시아의 S-300 미사일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습에 참여할 자폭용 드론도 그 기능이 더욱 향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전쟁연구소는 러시아 '란셋'(Ланцет, 영어로는Lancet) 드론의 새 버전을 분석한 결과, 표적을 자동으로 포착해 타격 성공률을 높이는 '자동 표적 시스템'이 탑재됐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군은 또 개량된 '이즈델리예(Изделие)-53 자폭용 드론을 지난 10월 21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드론의 폭탄 탑재량은 3~5kg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의 '란셋 드론'의 비행 범위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나 더 깊숙한 후방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러시아의 미사일·드론과 우크라이나(서방 진영)의 방공망이 올 겨울 다시 한번 충돌할 게 분명하다. 창과 방패의 전쟁이다. 러시아와 미국 주도의 나토(NATO) 첨단 무기및 장비들이 실전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