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4]아름다운 사람(9)-카톡할아버지 김대용
부산釜山하면, PK의 본산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부산에 사는 아주 특별한 어르신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분과 인연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11월, 성균관대 홍보실에 한 노인이 들어오더니 나를 찾았다. 부산에서 올라와 교보에서 나의 처녀작품 『백수의 월요병』(2005년 9월 서울셀렉션 펴냄)을 사들고 저자의 사인을 받으러 왔다는 거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믿을 수 없었고 몹시 감격했다(당시 이 내용을 <좋은 생각>에 원고지 10장으로 쓴 생활수필이 실렸다). 아무나 못할 일이 아닌가. 1939년생, 우리 나이로 86세. 호도 참 좋으시다. 기를 양, 참 진, 양진養眞. 하여, 양진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덤으로 한 권 더 드린 짧은 만남 이후 문자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였던가. 팀원들과 부산 자갈치시장 나들이를 갔을 때, 해운대에서 두 번째 만났다. ‘문제의 식당’ 초원복집에서 복매운탕을 사주신 후 범어사를 같이 돈 후, 청포도 한 박스와 중국의 유명한 술 한 병을 안겨주셨다. 대접을 톡톡히 받은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선물. 흐흐.
그 이후 한번도 만닌 뵈거나 전화한 적도 없다. 허나 카톡으로 십 수년째 주고받은 글들이 그 얼마이던가. 책으로 치면 10권도 넘을 듯하다. 그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어디에서 캡처를 하는지, 창작을 하시는지, 그야말로 영양가 있는 좋은 글과 사진, 그림, 음악 등을 보내오신다. 우리 나이 86세이면 누구나 상상하듯 꼰대, 그것도 TK꼰대일 듯한데, 천만에, 전혀 아니다. 몇 번이나 읽어도 참신하다. 신박한 글투성이다. 그것은 생각이 지극히 젊다는 것이다. 어쩌다 사적인 안부를 카톡으로 주고받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19년 내가 귀향해 고향집을 리모델링하고 있다거나, 17년 당신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어떠한 항암치료도 받지 않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등. 우리나라 고질병 중의 고질병인 ‘영호남 갈등’을 한번도 표출한 적이 없다. 생각은 젊은데, 그 영남 프레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게 안타까웁지만, 그분이 보기에는 나도 그럴진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놀라운 것은 2005년 처음 뵈었을 때, 그분이 보여준 작은 수첩. <사야 할 책>이라며 책 제목들이 빼꼭히 적혀있었다. 신문 북코너에서 정보를 얻는다했다. 말하자면 ‘독서가讀書家(책벌레)’. 어쩌다가 그 목록에 나의 책이 끼어 있었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고, 20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참 특별한 일이다. 오늘 아침, 부산 만남 이후 근 20년만에 처음으로 통화를 했다. 그분 말씀이 재밌다. “우천 선생. 어제 내가 좋은 꿈을 꾼 것같소, 선생이 전화를 해 목소리를 들려주다니요” 말마다 경칭이다. 80대 후반이면 한참 어르신인데도, 전혀 꼰대의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다. 이런 ‘꼰대’라면 얼마든지 많아도 좋을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책을 얼마나 읽으셨을까? 좋은 글, 좋은 책의 감별사鑑別士가 따로 없을 정도로 안목眼目이 뛰어나다. 나부터 정치꼰대일지 모르니,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사적인 얘기들을 주로 나눴다. 우리 아버지, 당신, 사모님의 건강 등이 단연 화제였다.
부산에 가 그 분을 돌아가시기 전에는 한번 뵈어야 할 일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시니 운신의 폭이 좀 넓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 심어놓고, 부산으로 날라가 양진선생님도 어떻게든 뵙고(사모님이 거동을 못해 당신조차 집에 갇혀 산다고 한다),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훑어볼 생각이다. 부산은 마산과 함께 한때는 민주화의 성지였거늘, 이번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심판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도 두 명이나 냈는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걱정이 많이 된다. 하지만, 그곳에도 아름다운 사람은 있게 마련. 그중의 한 분이 양진선생님이지 않겠는가. 그분이 날마다 보내주시는 좋은 글과 사진, 그림, 음악 등을 공유하고 싶은데 시간을 너무 뻿기는 등 번거로운 게 문제다. 이 졸문이 양진 선생님에게 실례가 안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늘, 강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