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서목사님과의 교제는 장차 주님께서 베푸실 은혜를 더욱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께서 장차 거기까지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예진이랑 도서관에 가는 날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무한한 세상 지식을 흡수합니다.
그 지식이 주님 안에서 활용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로 제 영혼을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본문 주해)
2~3절 : 예수님의 수난예고가 있는 후 6일이 지났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신 후 엿새 후에 (그 죽으심과 부활 이전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산 위에 데리고 가셔서 보여주신다.
왜 이 세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 비해 더 헌신 된 자들이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9절에 의하면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갑자기 예수께서 변형되셨는데 광채가 나고 몹시 희어지신 것이다.
이 변형되신 모습은 부활 후에 누리게 될, 또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기 전에 가지셨던 신적 영광을 보여주신 것이다.
4~6절 :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하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평행구절에서는 별세를 의논하셨다고 한다.(눅9:31)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두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베드로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면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한다.
랍비는 유대인들이 율법 선생을 부를 때에 흔히 사용하는 호칭이다. 또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동급으로 생각한다. 베드로는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두렵기도 하고 좋기도 하여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의 의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베드로 아직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셔야 할 메시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7~8절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한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난 소리이다.(막1:11)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친 아들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이 들리고 문득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다.
9~13절 : 주님은 세 제자들에게 변화산 사건을 발설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이 일을 영원히 비밀로 덮어두시려는 것이 아니라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이셨다. 이것은 부활을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은 확증되고, 이후에는 이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 즉 주님의 부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예수께 그 의미를 묻되 바로 묻지 못하고 엘리야의 출현과 관련된 당시 서기관들이 가르쳤던 종말론의 내용을 들어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서기관들은 말3:1과 4:5~6절 등의 내용을 근거로 끊임없이 메시아에 앞서서 엘리야가 올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먼저 와서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모든 것을 회복하여야 할 엘리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메시아 되신 예수께서는 이미 오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또 부활하신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의미로 질문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질문에 대답해 주신다.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는 서기관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멸시를 받으며,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 역시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시고 있다. 즉 엘리야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개조시키는 도구가 되어 메시아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그가 오심을 준비하도록 할 것이라고 확증하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로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목 베어 죽임을 당한 것을 가리킨다.
(나의 묵상)
어제 8장에서의 수난예고와 오늘 본문의 변화산 사건을 한 번도 연결하여 생각해 보지 못했다.
변화산 사건(주님의 변형)은 주님께서 걸어가야 하는 고난의 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과 그 끝이 하늘의 영광인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아직 아무런 그림을 가질 수 없는 제자들, 장차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참된 메시아이심을 어렴풋이라도 알도록 하시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렴풋이’이지만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 성령이 임하게 되면 제자들에게 이 사건은 매우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소리 저 소리 해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에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 했다가, 주님의 수난예고에 ‘그러시면 안됩니다’하고 주님께 대들다가, 변화산 영광의 모습에 ‘초막 셋을 지을게요’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다가....그런데 하늘의 소리까지 들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제자들은 그 하는 대답이고 질문이고 간에 온통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마치 나의 모습과도 같다.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멋지게 해 놓고는 삶의 현장 속에서는 또 내 생각과 감정대로 행하면서 주님께 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말씀 속에 은혜를 받으면 ‘초막을 짓겠습니다’ 하고 감당도 안 되는 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다.
그리고 앞뒤 맥락 없는 질문까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현재 영적 상태에서부터 장차 주님의 증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고난과 영광을 조금씩 가르쳐 주신다.
나도 오늘, 수난예고와 변화산 사건의 이어지는 의미에 대해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들으며 조금씩 알아간다.
지난 주일 저녁, 서울로 올라올 때 대구동촌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이 우리교회 출신이라서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간다.)
....성도의 삶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그 문제를 대하는 성도의 태도가 다양하다. 어떤 분은 혹독한 삶의 시련을 믿음으로 잘 대처하니 목사로서도 놀랄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문제는 삶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삶의 정황을 핑계 삼아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그 마음이 습관이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라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시고 양육해 가신다.
병치유와 귀신 축출과 기적을 보여주시다가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까지 말씀하심으로 점점 더 깊은 계시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런 주님께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이 땅의 문제 해결에 마음이 머무르는 자가 많다.
참으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영적 수준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나를 기대해 주시는 주님께 부응하여 주님을 더 깊이, 더 바르게 알게 되기를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도서관에서 묵상을 마무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진이는 곁에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습니다.
행복한 할미와 손녀의 모습입니다.
제게 주신 말씀의 기쁨을
우리 예진이도 알게 되기를,
아니, 저보다 더 크고 깊게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제자들과 같은 저입니다.
못 알아듣겠다고 투덜거리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