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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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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개혁방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기복신앙 구절
접대 추천 0 조회 423 11.10.06 12:08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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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0.06 14:43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다만, 저는 접대님과 견해를 달리하고 싶네요~

    [마6:11]구절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은..
    문자 그대로 하루의 끼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고
    <하루의 영적 양식>이라는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작성자 11.10.06 15:04

    견해 표명에 감사합니다.

  • 11.10.06 14:40

    1) 예수님 당시 갈릴리의 농어민 대중들은 실제로 90%이상이 문맹인데다가, 하루의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2) 이 구절에 나오는 <일용할 daily>,<오늘 this day>등, 구체적인 <오늘>이 명시된 점,
    3) 그리고 바로 다음절(12절)에 이어지는 <빚진 자>, <빚>이라는 표현이 이어진다는 점 등으로 볼때

    당시 빚만 지고, 한끼의 식사도 어려웠던 민중들의 고달픈 삶이 기도문에 표현되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리라 봅니다..

  • 작성자 11.10.06 15:34

    먼저 3)번에 빚진자는 마태복음에는 빚진자로 볼 수 있겠지만 누가복음에도 있는 주기도문이 있는 것을 잘 아시겠지요. 거기에는 빚진자의 개념보다는 죄의 개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맞추어 마태복음에도 죄의 관점으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1.10.06 15:36

    그리고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하루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현실이겠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기도문을 주시고 기도하라는 것은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복음서에 나오는 새의 이야기가 구름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먹을것 입을 것 구하는 것은 이방인이나 하는 일이니 기도제목을 그의 나라로 하라는 부탁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 작성자 11.10.06 15:46

    그리고 이 글을 게시한 이유는 목사들이 사람들의 본능을 이용해서 묘하게 끌고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성경의 본뜻은 그게 아닐 건데요.^^

  • 11.10.06 16:00

    주기도문은..당시 소박한 민중들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문입니다.
    당시의 엄청나게 불공정한 사회경제체제 속에서..이렇게 소박한 민중들의 뜻이 담긴 것은..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요..
    (오늘날에도 역시 현재 밥을 먹느냐, 못먹느냐..는 매우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이지요~)

    그리고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의 경우..님처럼 해석하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이 구절 역시 주의깊게 보면..님 얘기와는 좀 다릅니다.

    앞의 <죄>는 분명 <하마르티아(죄, sins)>로 되어 있지만, 뒷구절의 <죄지은>은..<오페일로(빚진, indebted)>으로 되어 있지요..
    그래서 모든 영어성경에서도 <빚진 indebted>로 번역되어 있구요..

  • 11.10.06 16:06

    따라서 결국 <죄지은>으로 번역된 개역성경이 오역에 가깝고
    님 주장처럼..이것을 <죄>의 개념으로 보아서는..
    이 구절에 병행해 나오는 <일용할 daily>,<오늘 this day>등, 구체적인 <오늘>이 명시된 점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요,

    즉, <빚지고 가난한 민중들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런 간구의 배경에는..<(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이란 자들이 놀고먹는 당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고..
    이런 억압과 수탈이 난무하는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황이 바로잡혀 지는게 바로 이땅에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였지요..

    어차피 긴 토론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 11.10.06 15:02

    저도 시크릿가든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만나도 하루동안의 양식이었다는 점을 보면

    많은 재물과 양식에 눈을 돌리지 말고

    하루의 양식을 주심을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1.10.06 15:41

    봄날님의 견해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신약에서 만나는 히브리서와 계시록에 나오는 것 외에는 요한복음 6장에 제일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 떡인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한 예표이지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개념까지 설명하셔서 유대인들이 어려워했습니다만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작성자 11.10.06 15:42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 11.10.06 16:06

    봄날님의 견해가 바로 마6:31-32의 합당한 설명입니다..
    이는 마태복음 6장 전체 구절을 잘 읽어보면..바로 이해가 되는 것이자만요~

  • 11.10.06 15:41

    그냥 일반적인 양식이라 생각됩니다...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야 별 감흥이 없겠지만....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입니다. 말씀으로 보건데..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어 우선, 먼저 할 것이지만 삶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의 소원을 얼마든지 간구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목회자들이 그쪽으로 너무 치우치거나 강조하는 것은 문제일 것이나 관련된 모든것을 사기로 보는것은 곤란하다 여겨지며. 해서, 영혼의 양식으로의 이해는 좀 앞서갔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작성자 11.10.06 15:43

    사기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과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하나님이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신다는데 그것을 구한다는 것이 넌센스처럼 보여서여.^^

  • 11.10.06 15:47

    그렇군요^^*

  • 11.10.07 17:29

    저는 하나님께 일상의구체적인 필요 늘구하는걸요..
    우리 신앙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형이상학의
    차원에있지않다고 봅니다. 인간은 몸과영을 다가진
    존재기에 영과육의 필요가 모두 중요합니다. 기도문에
    일용할양식에대한 간구가들어있음으로해서
    과소유와 과욕을 막고, 생존에 필요한 것을
    구하면 주시는 주님께 나가도록 열어주심이
    감사합니다.

  • 11.10.07 23:1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주기도에 대한 견해는 시크릿님이 맞습니다.
    성서는 쓰여진 당시의 사회상을 잘 파악해야 그 구절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고 '종교가들의 써먹는
    방법'을 타파하고 개혁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특권층인 사두개인들이 18,000 명쯤, 바리사이파인들이 6,000 명쯤
    로마의 압제자들 외에는 하루 한끼 식사가 난망한 민중들이었습니다.
    만나의 의미, 소박한 하루 식사 이상의 탐욕의 경계, 등의 신학적 해명도 아울러
    포함 되어야 하겠지만, 만나가 예수님, 생명의 떡, 영혼의 양식 등의 비약적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 11.10.10 09:15

    출애굽 광야시절 매일 만나를 하루를 위한 분량만 수확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상통한다고 생각하며 답글 다신 많은 분들의 의견에 같이합니다. 또 다른 면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포인트가 아닌 일용할에 방점을 두면 매일의 삶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라는 명령으로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주만 바라보도록 하신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 11.10.11 14:17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란의뜻?은
    일용할-마24:45,때를 따라.
    양식-요4:34,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는것.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때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게 해주옵시고.
    나머진 접대님의 댓글이 설명이 잘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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