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만 2회독 했다. 두번째 읽을 때에는 더 이상 다시 읽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함석헌' 이름 석자를 알 듯 싶었다. 김동길교수의 '함석헌이 없다면 김대중은 없다'는 함석헌 추모 문집의 서문에 적힌 인용문은 분명히 맞다. '반공법'을 피해서 '주체사상'에 사상기원이 있을 표현들을 이리 저리 바꿔 쓴 표현들의 '행간'의 표현이 징그러웠다.
글의 서두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함석헌'을 중심으로 '지식의 계보'를 따지면 한나라당에 '위장 취업'한 좌파정치인들을 찾아낼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시작되고 나서야(이승만 중심의 이북 실향민 계보가 완전 몰락하고 나서야), 드러났지만 이북 실향민의 다수는 우파 세력이 아닌 좌파세력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상계]를 중심으로 '반공법'을 피해서 자유민주주의 모드로 적응해 나갔다. 6.15이후 좌파세력이 커밍아웃 하기 전에는 [사상계]는 반공보수 잡지였고, 6.15 이후 좌파 세력이 커밍아웃 한 이후에는 [한겨레신문]의 상당수의 정신적 저수지로서, "동반하자"며 유혹할 수 있는 한나라당 내 가장 코드가 맞는 이들을 지칭할 것이다.
국가적 문화인물 소개란에서 드러났듯이, 함석헌은 '반체제인물'이다. 그런데, 우파의 지도자로 알려진 김동길교수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김동길교수가 함석헌을 극찬하면서 함석헌 모드로 국민을 길들이면 '김대중 집권 터닦았단 말인가'하는 반론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러면, '김동길교수'에게 함석헌 비판을 주문하는 것이 되나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면서 '뺄셈의 정치'운운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독서 초심자는 '단어'나 '표현'을 중심으로 역사가의 논리 흐름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독서 10급 이하 수준에서는 함석헌을 인용하는 반공교회가 있다 해도, 근본적으로는 함석헌을 인용하는 반공교회는 '위선'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김대중의 '6.15'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 미래 지향이라고 밝혀 놓은 것도 '아시아 연방제'의 내용으로 표현하고 있다.(당시에, 월북시인 임화가... 라고 적으면 검열에 걸린다고 [네 거리의 순이]의 저자가.... 로 적는 스타일이 많았다. 좌파 서적 검열 피하는 문체 비꼬기를 알면 너무 쉽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책을 지독하게 안 읽는 사람에 의해서 '벼락같이 온 해방'이란 구절만 많이 인용되었다. (특히, 국문학 논문에서 많은 데, 몇 페이지 몇 째줄에 인용했다는 것을 그대로 언더 바 각주로 살려 쓰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김동길교수의 통찰에서도 명백히 '김대중정신'의 근본 뿌리를 이룬다고 지적될만했다. 동시에, 김동길교수로 상징되는 우파 지도자 중심의 '인정주의' 통로를 통해서 한나라당에 김대중 친화 정신의 위장 취업의 루트가 되었다.
'주체사상 책'과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를 비교하고,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와 강만길씨외 좌파 역사책을 비교하면 결론이 단박에 나오리라 보인다. 한국 좌파 사상가의 최고봉은 '함석헌'이 분명히 맞다. 김대중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다고 봐야 된다. 또, 조선일보-사상계 출신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몇 백만배 더 불순하다!! 혈연주의와 지역주의에 입각한 감싸주기가 함석헌에 대한 허상을 창출한 것이다.
2. 함석헌의 '신앙 사기극'의 도해적 이해.
북진 멸공 통일을 주장하면서 함석헌주의 연장선의 구절도 쓰는 이들에 대해서, 저널리스틱한 용어선점 이상도 이하도 보지 못한다. 정반대 내용을 대충 연결해놓은 것에서, 매번 항의를 했으니 이번에도 항의를 하자.
대한민국의 일반 역사책은 대충 이러한 흐름일 것이다.
나라 잃음----> 나라 잃은 설움-----> 독립운동-----> 대한민국 건국-----> 6.25----->4.19와 5.16-----> 조국근대화운동------>민주화운동(김영삼 정부 때까지의 보수역사책. 한국사시민강좌를 근거할 때)
함석헌의 역사책은 이러한 흐름이다. 이 책은 6.25 전쟁 때 사망한 사학자 김성칠의 패턴을 따라서 '일제 36년'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는 강만길에 의해서 대한민국사를 '분단시대'로 통째로 잡아 먹겠다는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한 뜻=씨알=민족-----> 외세 분단------> 끊겨진 흐름의 회복.
대한민국사도 '헤겔철학'에 입각한 '역사'(하나님 정신의 발현)를 말하며, 함석헌의 역사도 '헤겔철학'에 입각한 '역사'로서 하나님 정신의 발현을 말한다. 결국, 자기가 몸 바쳐야 할 나라가 무엇인가가 상징적으로 차이가 난다.
북진멸공통일은 '대한민국' 국민만이 국민이며 북한동포는 1.4 후퇴 직전까지 북진할 때 군사력에 의해서 투항되는 항복자만을 인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소련군의 꼭두각시로 드러난 김일성체제에 봉사되는 북한동포에 대해서, 휴전상태에서 '반국가단체'를 위한 봉사자로 간주한다.
반면에, 함석헌 브랜드의 '한(뜻의) 민족론'은 어떠한가? 사실상,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있다. '통일을 이룰때'(=건국이 완전히 부정될 때)를 해방으로 그리는 역사가 함석헌의 체계가 된다. 함석헌의 사상적 영향권들이 쓰는 책들은 '한뜻'사상으로 엮여졌고 미국이 갈라놓았음을 과장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해방직전의 역사를 얼렁설렁 분석한다. (함석헌은 아예 분석조차 없었다)
주체사상파 대학생들의 오래된 데모 사진을 보면 '조국애'로 적혀 있다. 그 조국애는 함석헌이 그리는 마침내 올 해방으로서의 대한민국 완전 철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통일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강만길교수와 [창작과 비평] 패거리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은 근대 민족국가에 미달했다는 반복된 지적은, 함석헌에 사상적 뿌리가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6.15논리의 계보상 시조가 된다.
박정희 정부가 '국민주체성'이란 말을 내세우자 대항논리로 김대중전대통령과 김영삼전대통령께서 '민주화선언'으로서 민족해방선언(북한정치이론과 사실상 같은 체계)를 내세웠다. 함석헌 처럼 대한민국 언어로 북한의 민족론을 맞게끔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정희 정부가 내세운 헌법상의 '민족'표현인줄 알지만, 사실상 함석헌식 논리처럼 북한식 민족론에 다리놓기 하는 표현에 가깝다.
3. 좌파들에 하나님의 뜻이 임재하며 하나님이 도울 수 없는 대한민국은 기필코 무너지게 된다는 좌파 역사책 전체와 싸우는 것보다, 함석헌과 [사상계] 영향권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
[요덕스토리]의 감독이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를 완독했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남북고루 뿜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아토론방에서 파아란 한은경님같은 분들이 '어떻게 남북한 공존론'이 나서게 되었나 하면서 울화를 낼 시간 있다면, 우파 내부에 '함석헌'인맥이 닿는 영역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사가 아니라 '함석헌식' 반역의 역사를 따라가는 바를 확인하고서 고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그 할아버지들은 이북 실향민 원로 사상가를 비판할 수 없다고 혈연 지연주의로 감싸겠지만, 김동길 교수께서 함석헌 없으면 김대중 없다라고 확신할만큼 함석헌은 구제불능으로 좌파 정신의 시조같은 바이다.
그렇다면, 꼭 책은 논리적 전체로서 이해되어야 하고, 부분 부분 구절 따와서 읽는 독자 감성 더하면 안되느냐고 '사고의 다원성'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책은 꼭 논리적 흐름과 전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함석헌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김정일에게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임재한다는 식의 생각을 표현은 안했되 논리로서는 사실상 그러하게 썼다. 사실상 이상적 국가형태로 아시아연방을 오래전에 표현했다. 김용옥의 다종교주의가 아무리 독소를 내뿜는다 해도 함석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다. 물론, 김용옥도 함석헌을 보고 배우면서 함석헌같은 인물이 되겠다고 하면서 공부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헤겔의 철학에서 '국가와 종교'간의 변증법적 종합(신자와 불신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근대국가 건설)이란 논리적 배경을 전제로 할 때, 함석헌이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우기는 '남과 북'의 변증법은 사실상의 국가연방제를 이루는 지식사기극의 모태가 되었다. 백낙청교수, 김윤식교수, 임헌영교수, 권영민 교수등의 통일문학사론, 남북한 문학사론의 모태가 되었다.
4. 함석헌을 전체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북진 무력 통일론이 왜 웃찾사 '길용이'같은 생각인가?
북진무력통일론은 결국은 군인 정치에 의한 설계 차원으로 대한민국 침해 혐의자 차원의 북한동포 조차도 인정 안하는 항복 세력만 인정하는 논리다. 여기에서, 군대를 안가신 여성분이나 동방위를 마치신 분들은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함석헌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그 이면에 '남과 북'이 하나의 뜻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백낙청교수의 '하나로 아우르기'어쩌고 하면, 자연적으로 북진 무력 통일론의 기반은 막힌다. 조갑제기자의 북한동포론도 최초 발생지는 함석헌 생각과 거리가 멀지 않았다.
한민족 어쩌고 하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을 아우르는 지평에서 뭔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통일론은, 자동적으로 북한에 무력 공격을 금지시킨다. 북진 무력 통일의 다음 버전이 자유민주통일이었다. 이 맥락을 '아우르다'타령파가 자주 놓친다.
옛말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각자가 최고의 진리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명예를 위해서 헌신하는 바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서 인정을 구하는 투쟁을 표현했다.
대체, 함석헌의 사상처럼 남과 북을 아우르는 속에서 뭔가가 있다고 하고 사태가 위태로우면 돌격하라!! 하는 바탕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행동대장' 길용이를 보내라!! 하는 의미밖에 없다. 건들건들건들건들 하는 건달의 생각일 뿐이지, 전혀 자유민주주의 바탕이 아니다.
남과 북을 아우르는 전략이 사실상 대한민국을 파멸시킨다는 보고서를 참으로 현재의 기득권 보수가 오랫동안 무시했다. 북진무력통일론의 다음버전인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은 전쟁을 최대한 자제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 정치체제로 한반도 전체를 감싸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과 북을 아우르는 식의 생각에는 애국정신이 깃들일 바가 없다. 오직, 애국은 남과 북이 잡탕밥 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이는 그 담론의 전형적 주체들이 보이고 있다.
5. 친북연공의 4.19와 6.3 운동도 함석헌의 [사상계]가 만든 것.
이러한 글을 보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역사 흐름이 어떻게 어째서 김대중정신의 시조인가를 따져볼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6.3 운동의 서울대 6.3과 고려대 6.3의 오늘의 전대협 최고 이론가를 능가하는 공산주의 기질을 지적했었다. 그들은 '신앙'의 행동자였다. 구호조 '악귀'로 말해질 수 없는, 함석헌이란 좌익 종교인이자 좌익 역사가의 잡지를 믿는 좌익 학생 경력자였다.
6.3 운동 사진을 보면 사상계를 든 채 누워 있는 사진이 많이 보인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친북연공운동의 시조로서 '반공법'을 피해서 쓴 구절로 점철되어 있다. 표현상 용공 어휘 하나도 없어도, 현실적으로 우파의 사상이 될래야 될 수 없는 바탕이 있다.
오늘날, 반공논쟁이 싱거워 지는 자체가 '이러한 좌익의 거두'와 정신을 같이했음을 추억하며 옳다는 분들이 권력을 쥐려 하는 측면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