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5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9장 14절 - 29절 - 세상의 불신앙에 흔들리지 않고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믿음을 통해 승리를 얻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어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일이 일상의 반복적인 일이지만 가장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가능하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를 일깨워 주셔서 주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듣지 못하는 귀를 열어 주시고 보지 못하는 눈을 떠서 주를 보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은 주의 보혈로 정결함 얻길 소망합니다.
새 영과 마음을 주시고 주 안에서 얻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로 인도해 주시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 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 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본문 해설
예수님과 3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와 제자들에게 이르자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온 무리가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라면서 달려와 인사를 한다.
이에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무엇을 제자들과 변론하고 있었는지를 물으시게 된다.
이때 무리 중 한 사람이 말 못하게 귀신 들린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왔음을 말하고 그 아들은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고 파리해져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거기에 모인 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하시며 자신이 얼마나 그들과 함께 있으며 얼마나 참아야 하냐고 한탄하시면서 아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의 책망 대상은 당시 세대의 모든 사람이었으며 수많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보고 가르침을 듣고도 불신앙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대해 한탄하셨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오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여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게 만든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를 물으셨고 그가 어릴 때부터 귀신들리게 되었으며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들어가게 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다면 자기들을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러한 소년의 아버지의 대답은 긍정반, 부정반의 표현으로 온전한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자들이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음을 선포하시자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믿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외친다.
아이 아버지의 외침으로 예수님이 아들을 고치실 것처럼 보이자 주변의 무리가 모이게 된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러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게 되었고 아이는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은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게 된다.
아이를 치료하신 후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물었고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는 사람의 의지적인 기도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가운데 주어지는 믿음의 기도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말한다.
나의 묵상
변화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예수님은 다시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셨고 그곳에서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게 된다.
이에 군중들에게 그 이유를 묻게 되었고 변론의 이유는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하자 이를 이유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의심하면서 변론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수많은 치유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지만 여전히 믿지 않으려고 하고 틈만 나면 예수님의 사역을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은 한탄하신다.
또한 제자들도 이러한 논쟁에 휘말려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는 무능력의 모습을 보이면서 예수님은 당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향해 탄식하며 책망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식과 책망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전달됨을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복음의 진리가 전해지고 복음이 진리라는 수많은 증거 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거부하며 문제점만 찾으려는 자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성도들도 사람들과 변론하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적인 영적 영향력은 사라지고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지 못하는 것처럼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세대를 향한 주님의 탄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에 더욱 주와 온전한 관계 가운데 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대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허탄한 변론은 의미가 없으며 거룩한 백성의 삶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임을 공감하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삶의 모습을 제시하면서 진리 안에서 능력 있게 살라고 권면한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당시의 제자들이 주님과 온전한 관계 가운데 있었다면 그들은 서기관들과 변론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를 믿고 신뢰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감당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보이지 않으시고 주님과의 온전한 신뢰가 세워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지 못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온전한 관계 가운데 있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과거 자신들이 행하였던 축귀의 경험들만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음을 짐작케 한다.
오늘날도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했던 일들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역의 중심을 두려는 모든 시도는 믿음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든다.
과거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온전한 관계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세워가는 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신앙의 모습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2~16)
오늘도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성도가 취할 삶의 태도이며 나아갈 방향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며 사는 것이 가장 능력 있는 삶임을 고백하며 순간마다 주께 나아가기를 힘쓰는 나의 모습, 그리고 지체들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것이 능력의 삶임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이것을 믿음으로 기도하는 삶임을 가르치셨으며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기도의 능력이 세상의 소리와 변론과 불신앙을 물리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참 믿음,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세상의 불신과 변론에서 벗어나 하늘의 능력으로 사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은 갈수록 불신앙을 드러내며 수많은 진리의 선포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세대의 부정적 반응에 두려움으로 반응하지 않고 담대한 믿음을 반응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며 살게 하시고 주와 함께 하는 믿음의 능력을 보이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