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두 손녀의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린다. 아이들 부모가 직장 일로 참석하기 어려워, 청풍 시골집에 있던 남편까지 올라오라 하여 우리 조부모가 출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운동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유쾌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큰손녀는 백군이고 작은손녀는 청군이란다. 한집안에서 응원할 편이 갈렸으니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난감하다. 큰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목청껏 “백군 이겨라!”를 외치고, 돌아서서 작은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청군 이겨라!”를 외쳐야 할 판이다.
안내문을 보니 보호자가 함께 뛰는 경기도 있다. 쑥스럽지만 이왕 나서는 김에 나도 한번 나가 볼까, 슬그머니 마음이 들뜬다.
그러다 문득 아홉 살 가을의 운동회가 떠올랐다. 엄마와 다리를 하나씩 묶고 2인 3각 달리기에 나섰던 날이다.
“하나, 둘! 하나, 둘!”
우리 모녀는 구령에 맞춰 한 번도 엉키지 않고 결승선까지 달렸다. 당당히 1등이었다.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연세에 어린 딸과 어쩌면 저렇게 발을 잘 맞추실까?’
사람들은 신기해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무하러 가는 날이면 엄마는 큼지막한 나뭇단을, 나는 조그마한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산길을 내려왔다. 가파른 흙길에서 엄마는 언제나 앞서 걸으셨다. 내가 미끄러질까 돌부리를 치우고, 길을 막은 넝쿨을 걷어내며 천천히 내려가셨다. 나는 엄마가 다져놓은 발자국만 골라 밟았다. 엄마가 한 걸음 내디디면 나도 한 걸음. 그렇게 서로의 걸음에 숨을 맞추며 그 길을 내려왔다.
그러니 그날 운동장은 우리에게 처음 가 보는 길이 아니었다. 산길에서 몸에 밴 호흡이 결승선까지 이어졌을 뿐이다.
운동회를 마치고 연필과 공책을 품에 한가득 안은 채 엄마 손을 잡고 돌아오던 가을날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 아이가 어느새 딸의 엄마가 되고, 손녀들의 운동회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가 앞서 길을 내주던 그 산길처럼, 이번에는 내가 손녀들과 발을 맞추고 싶다. 운동회가 끝나면 아이들은 연필과 공책을 안고 달려오겠지. 나는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와야지. 엄마의 손이 내게 그랬듯.
첫댓글
어린시절 가을 운동회는, 학교에서도 큰 행사이고
마을의 행사이기도 하고, 가족들의 행사이기도 했지요.
청백이 나뉘어 릴레이를 할 때는
그 함성이 마을을 떠나 보낼 듯이
북소리 꾕과리 소리가 요란했지요.
근데요~
손녀 둘의 운동회를 통하여
베리꽃님과 어머니의 발마춤이 어쩌면
이토록 가슴을 찡하게 합니까.
나도 분명 어린시절 운동회를 하고,
공책을 받고 연필을 상으로 받은 기억은 있는데,
글감으로 떠오르지 않으니요.^^
아마도 엄마와 딸의 연대감이
도시에서 자란 어린이들 보다는 더 도탑고
따뜻한 사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조건이 먼 훗날 까지 이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 석촌님의 글에서 처럼 '카르페 디엠'을
떠올려 봅니다.^^
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하구요.
순수하고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의 글,
오늘도 감사한 날이지요.^^
옛날 시골 운동회는 정말 온 마을의 잔치였지요.
옛 운동회 날의 요란했던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산골에서 자라며 엄마와 나누었던 그 끈끈한 유대감이, 시간이 흘러도 제 삶과 글 속에 든든한 밑거름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젤 먼저 따뜻하고 정스런 댓글 달아주시는
콩꽃님께 늘 감동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아 ! 어린 아이가 엄마가 되었고 또 이제는 할무이가 되었네
손녀를 향한 그이쁜마음에
꿀이장님까지 동원하시니 ㅎㅎ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꿀이장 할배까지 동원했어요.
오랜만에 손녀들과 발을 맞춰 2인 3각 경주를 해볼까 해요.
며칠 안 남은 날을 위해 오늘부터 부지런히 체력 단련을 시작해야겠어요.
요즘 도시의 운동회는 어떤 풍경일지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산골운동회는 얼마나 흥겨웠을까요?
엄마와의추억은 오히려 나이들수록 새록새록..
밥상머리에서
반찬해놓고 엄마를매일 불러봅니다.
그리고
기도속에서도..
즐건추억되겠는데요..
맞아요, 프라타나스님. 엄마와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늘 새록새록 떠올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지요.
밥상에서, 기도 속에서 어머니를 부르신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해집니다.
남겨주신 마음처럼 이번에 손녀들과 예쁜 추억 많이 만들고 올게요.
정성 어린 댓글 감사드리며, 늘 평안하세요.
사랑이 넘치는 정경입니다.
부럽고요.
그게 사는 재미인데요.
베리꽃님과 같은세대 같은 학군내에 살았더라면 샘이 나서 못견뎠을 것 같습니다.
운동회라고해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오시지, 여섯명이 달려서 맨날 4등이니 연필한자루 못탔지,
두살 위 삼촌은 매번 1등만 했지, 고모님은 나를 약올리기만 하지.
내아이들 초등시절엔 맨날 야근에 출장만 다녔지,
손주들은 성장기에 외국에서 자랐지.
그것 참!
나야 그렇다치고
준비 잘해서 상품 많이 챙기시길~~~
늘 4등만 해서 연필 한 자루 못 타셨던 서운함이나, 1등만 하던 삼촌과 약올리던 고모님 이야기가 아쉽긴 하지만 정겹습니다.
응원해주신 만큼 손녀들과 최선을 다해 뛰어 상품 많이 받아오겠습니다.
수채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글입니다.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 작은 추억에 어울리는 맑은 빛깔을 칠해주셨군요.
가을 운동회를 마치고 연필과
공책을 품에 한가득 안고
엄마와 함께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던 베리꽃님의 등에
저녁 노을 붉은 빛이 환하게 비치네요.
저는 만국기 펄럭이던 4학년의
가을 운동회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머리에 파란띠를 맸으니
청군이었겠지요. ㅎ
머리에 파란 띠를 매고 만국기 아래를 달리던 4학년 청군, 마음자리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네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가을 운동회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공감 댓글 감사합니다.
어제 이 글을 읽고 한참 마음이 뭉클하여
댓글 쓰기가 어려웠어요
아시죠?!,,,
베리꽃님과 모친 이야기에 늘 짠하다는 것을!
또 하나 있어요
수필방에 눈팅만 하고 댓글 못 올리고 있는데
베리꽃님 글에 기다렸다는 듯이 댓글 쓰기가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답니다
앞으론 수필방에 댓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글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지요.
조용히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깊은 공감과 진심 어린 댓글까지 건네주심, 늘 고맙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필방에서 더 자주 다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늘 평안하세요.
아 베리꽃 님은 천상 이야기꾼이세요.
어쩜 그렇게 기억을 잘 하시는지
제 인생의 황금기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나무랑 님, 따뜻한 말씀 감사해요.
제 글이 나무랑 님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니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과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늘 평안하시고 자주 따뜻한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