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다가 곤충은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물종이기도 하다. 최초의 곤충이 지상에 등장한 것은 고생대 실루리아기∼오르도비스기다.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의 저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은 이를 일컬어 “곤충은 공룡이 탄생하고 번성하고 멸종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종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상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시기가 이 즈음인 것을 감안한다면, 곤충은 가장 초기의 육상 이주자 중의 하나 혹은 그 가까운 후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곤충은 그 긴 세월 동안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생물 대멸종의 시기를 무사히 견디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개체 수 역시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곤충의 통찰력’을 지은 길버트 월드바우어는 작금의 인류는 예외 없는 인구대폭발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에는 사람 1명당 곤충이 2억 마리의 비율로 존재하며,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곤충의 수는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 말한다. 곤충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끈질기며, 가장 번성한 육상동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로 ‘생태 밸런스’ 위기
하지만 이런 곤충의 생태적 성공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곤충이 번성한 바탕에는 식물이 있었다. 많은 곤충이 식물과의 공진화를 통해 진화성, 다양성을 키워왔다. 그 결과 현존하는 곤충의 30%는 오로지 식물만 먹는 식물성 곤충이며, 전체 식물 종의 70%를 차지하는 속씨식물 중 열에 아홉이 곤충을 통해서만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곤충과 속씨식물이 각각 동물군과 식물군 중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종인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윈이 무려 30cm에 달하는 긴 꿀주머니를 가진 마다가스카르 난초만 보고도, 분명 이 난초에 꼭 맞는 긴 주둥이를 지닌 곤충이 존재할 거라고 확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진화를 해 왔다고 식물과 곤충의 관계가 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식물은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한 색과 독특한 향과 달콤한 꿀로 곤충을 유혹하는 동시에, 단단한 껍질과 뾰족한 가시와 유독한 알칼로이드로 이들을 물리친다. 날카로운 턱으로 풀잎을 씹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소화액을 분비해 곤충을 잡아먹는 벌레잡이식물도 있다. 그렇게 식물과 곤충은 수억 년 동안 완벽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미묘한 균형을 이루어 왔던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진화의 기나긴 시간 중 아주 최근에 나타난 변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역할은 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몇몇 육식성 곤충이 인간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고 기생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로 인해 인류는 큰 피해를 본 바 있다. 중세 유럽의 인구를 3분의 1로 줄였던 흑사병은 쥐에게 기생하던 벼룩이 원인이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의 책임은 모기에게 있다.
하지만 인간이 식물과 곤충의 공존 시스템에 끼어들어 미친 영향은 이보다 훨씬 크다. 인류는 농사를 통해 인위적으로 소수의 특정 식물종의 수와 밀도를 기형적으로 증가시켰고, 효과 좋은 살충제의 개발로 인해 곤충을 대량으로 살상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인해 수억 년 동안 조율해온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은 아니었으나, 인류에 의한 대규모 서식지 파괴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식생 분포가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던 곤충과 식물의 안정적 균형이 심각하게 깨지고 있다. 생태 시스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가장 최근에 등장해 수억 년간 이어져 왔던 안정적 균형을 깨뜨린 밸런스 파괴자인 셈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