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체력저하가 얼마나 되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풀코스에 참가 할 수 있을지, 내가 달릴 수 없다면 무슨 樂으로 살까, 하면서 많은 걱정을 했는데 가뿐히 완주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자신감도 생겼다.
우선 지난 고구려대회에서 330을 목표로 참가해서 328로 무난히 달성하고, 자신감은 생겼으나, 이번 서울대회의 목표를 잡는데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가족들도 오랜만에 응원을 하고 있는데 낮 간지럽게 325는 민망하여 과감하게 320을 목표로 잡았다. 평균페이스 4:44초, 평소 혼자 인터벌 연습할 때 최고속도인데 가능할까? 하지만 도전해 보자. 목표를 설정하니 은근히 오기가 생긴다.
이번 대회에는 아들내외가 응원차 모시겠다고 하여, 대회장까지 함께 도착하여 보니, 그동안 못 듣던 배동성의 우렁찬 멘트가 나를 반기고, 이순신장군도 세종대왕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3년만에 열리는 대회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쌀쌀한 날씨(4℃)임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은 열기로 가득하다.
기념사진도 찍고 주변 구경도 하고, 아들과 새아가의 응원을 받으며 B조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워낙에 달리미들이 많아 320페메와 같이 출발해야 하는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배동성의 출발신호와 함께 힘차게 출발이다. 혼잡해서 처음부터 속도는 못내고 주위 흐름에 맞추어 오랜만에 숭례문을 지나고, 을지로를 만끽하며 달리는데 저 앞에 노란풍선이 보인다. 저 풍선을 따라가서 오늘의 목표인 320을 달성할 마음으로 부지런히 달려 5Km 지점에서 풍선을 따라잡고, 페메의 발자국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달린다. “착, 착, 착”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하다. 1Km 정도 페메와 같이 달려 을지로를 돌아 나오는데 페메의 속도가 느려진 것 같은 기분에, 아예 페메를 추월하여 앞서나가 달린다. 청계천로를 달리는데 벌써 반대편에서는 엘리트가 지나가고 선두그룹이 달린다. 역시 에이스들은 달리는 폼 자체에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급수대에서 물도 한모금씩 마시며, 응원하는 시민들에 손도 흔들어 주며, 주변 빌딩도 쳐다보며, 한명 한명 추월하면서 계속 달린다. 그렇게 청계천로를 돌아 종로를 지나는데 하프를 알리는 표시점이 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38분이 조금 지나있다. ‘이정도면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고도 내 최고기록도 경신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욕심이 생기며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흔들고 ‘욕심부리지 말자’하고 빨라지는 발걸음을 늦추어 달린다.(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어 신답지하차도를 지나, 군자역, 대공원역을 지나 35Km지점을 앞에두고 아껴둔 마지막 파워젤을 먹으며 달리는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착, 착, 착” 들리며 “35Km지점 통과. 평균속도 4분42초, 320달성 충분함”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따돌렸던 320페메가 나를 다시 따돌리고 있었다. 아차 싶어 페메 뒤에 바짝 붙어 페메 뒤꿈치만 바라보며 달리니 어느덧 잠실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잠실대교를 지나 우회전하니 40Km 표지판이 있다. 이제 페메도 본분을 다했는지 옆으로 빠지고, 도로변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한다. 이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다리가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운동장입구에 다다르니, 많은 인파들 속에서, 응원 나온 가족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하기에, 손을 흔들어 주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며 혹여 우리 성마클회원들이 보이지 않을까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안보여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운동장으로 들어와 트랙을 한바퀴 돌아 피니쉬라인을 밟는다. 시계를 꾹 누르고, 힘든 것도 잊은 채 시계를 보니 목표달성이다. 3:18:37
대회장을 빠져나오는데 자꾸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홀가분하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도하고, 금주도하고, 몸 관리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 클럽의 동지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리라.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29번째 도전을 마무리 했을 뿐 또 서른번째의 도전을 위해 오늘부터 또 시작이다.
마라톤이라는 것이 기록 경기라 기록에 늘 욕심을 내다보니 마지막에는 내가 왜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마음뿐인데, 욕심을 안 낼수는 없지만 욕심을 쬐끔만 내려놓고 달리면 이렇듯 편한 레이스를 할수 있는데, 앞으로는 인생도 마라톤도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편하게 달려보련다.
2023. 3. 19. 08:00
서울국제마라톤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