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 TV토론을 보면서...
아니되옵니다 / 조명래
거대 정당이 자신들의
사상과 정치 이념으로
과장과 왜곡을 일삼아
절차조차 무너뜨리고
치졸한 여의도 문법의
탈피못한 진보 근성은
필경 목적이 있슴인데
보수의 당대표 경선에
같은 정당 인물들끼리
목불인견 하는 꼴값이
반드시 드러날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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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의 이치에서 발산하는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이땅에 탄생한 모든 생명의 발전을 지향하고 추구하며 소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창조의 이치이며 섭리이다.
아무리 자신이 지정의로 직진을 하여도 이미 우주가 둥글게 휘어져 있으니 토션 또한 창조에 섭리를 이탈한 직진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겉보기에 최고인듯 하지만' '개미의 하늘'도 '기린의 하늘'도 '새의 하늘'도 창공을 넘어 휘어 있는 '만유의 하늘'은 각각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고유한 하늘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존중해야할 '진실' 그자체인 것이다.
곧 그것은 개미보다 기린이 조금 높다고 하늘을 더 높이 소유하고 있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개미의 하늘'도 '기린의 하늘'도 '새'의 하늘도 두려움으로 똑같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하늘로 부터 오는 두려움을 바라보는 인간은 예로부터 지금 현재 미래까지도 과장이 아닌 '진실'을 붙잡아야 자신의 위치도 높게 주어지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의식을 타고 났다. 국회의사당 지붕 위에 돔은 하늘을 상징하고, 그것은 두려워해야 함을 머리위에 받쳐들고 자각하라는 상징이다.
의사당 본관을 둘러친 석주 24개는 24절기로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 지점을 두고, 이땅의 백성들에게 타임스케줄을 선물로 준 한국인의 천로역정인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북극성 너머 아득한 '우주배경복사'로 부터 출발한 태초에 은하수를 타고 지구에 흙으로 찾아온 천로역정이 있다.
돌아갈 때도 북두칠성을 향하는 배 즉 상여를 타고 은하수를 향해 태초로 가야하니 한국인만이 이땅에서 소멸하는 인간 생명을 두고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은하수까지 가는 길은 천사의 안내를 받아 가는 천로역정의 길로 한국인 세포속으로 대물림해 온 유산으로 새김되어 있는것이다.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번연'에 '천로역정' 소설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본책이지만, 본시 한국인에게 '천로 사상'을 그대로 옮겨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존재한다.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호통을 치던 '의천사상'은 한국인만의 고유한 바탕의 의식이다.
어쩌다가 이땅에서 기린의 목을 선물받았다고 '개미의 하늘'을 가소로이 내려다 보며, 하늘의 두려움을 잊고 경고망동 한다면 그분은 필시 가로놓인 나무가지에 목이 걸려 스스로 패망하게 될 것이다.
이게 인간사를 세워준 만유의 이치이니 역행하려 드는 자의 필패함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그만큼 법과 규정 위에 부여된 소중한 유산이 존재하는 것이다.
민의가 두렵지 않느냐! 두렵다면 치졸한 행태는 말어라! 당대표 자리 하나놓고 그리 본분을 망각한다면 정녕 이 나라의 지도자감은 아닐 것이다.
○ 화용도서(華容道恕)라...
화용도서(華容道恕)는 관우가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를 용서하여 보내준 것인데( 華 빛날 화, 容 얼굴 용, 道 길 도, 恕 용서할 서)로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온다.
관우(關羽)의 입장에서는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매우 약한 의리있는 행동을 비유하고, 조조의 입장으로는 최고의 권력자가 일개 장수에게 목숨을 애걸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꼽자면 그중 나관중의 삼국연의도 포함되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넓은 대륙에서 펼쳐지는 웅대한 배경과 한 왕조가 쓰러져가는 안타까움, 천하를 훔치려는 야심있는 남자들의 야욕, 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영웅호걸들의 활약은 책을 들면 쉽게 덮을 수 없다.
그 중 가장 압권은 적벽대전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기는 10만 개의 화살을 얻는 방법, 동남풍을 빌고 멋지게 사지를 벗어나는 공명의 지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조조의 마지막 숨통을 놓아주고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관운장의 의리의 화용도 용서 장면은 아마 삼국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장면을 10번 이상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갈량은 적벽에서 완패한 조조군의 도주 루트를 정확하게 꿰고 있어서 조운, 장비등을 보내 매복하게 하지만, 유독 관우에게만은 아무 임무도 주지 않는다.
답답해진 관우가 "왜 자신은 보내지 않느냐"고 묻자, 제갈량은 "가장 중요한 관문인 화용도가 남았는데 관운장은 조조의 은혜를 입었으니 조조를 놓아 보낼 것이라 보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에 관우는 자신이 이미 안량, 문추를 베어서 은혜를 갚았으니 그럴 리 없다면서 "관우가 조조를 풀어주면 목을 내놓고,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으면 제갈량이 목을 내놓는다"는 내용으로 쌍방이 목숨을 담보로 한 군령장을 쓰고 관우는 출전한다.
관우가 출전한 후, 유비는 "관우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조조를 살려줄 것 같다"고 걱정한다.
제갈량은 천문을 보니 어차피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니, 관우를 보내서 풀어주게 하면 예전에 졌던 빚을 갚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 한다.
적벽에서 공명과 주유의 동맹군에게 80만 대군을 잃고 허도로 달아나는 조조를 공명은 끝까지 혼 줄을 내주고자 조조가 달아나는 길목인 오림에 조운을 매복케 하고, 다음 길목인 호로곡에는 장비를 배치하고 마지막 애로에는 관운장을 배치하게 된다.
한편 조조의 80만 대군은 방통의 연환계책과 공명의 동남풍에 힘입은 주유의 화공작전에 완전히 궤멸되어 불과 2~3천여 기의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적벽을 빠져 나와 서서히 화용도 계곡으로 들어섰고, 입구인 오림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운에게 습격을 당해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로 달아난다.
잠시 후 다시 호로곡에서 장비를 만나 곤욕을 치른 조조는 불과 30여 명의 군졸의 호위를 받으며 마지막 애로지역인 화용도로 향하는 갈림길이 두 개로 갈라져 있었는데 큰 길에서는 연기가 안 나는데 작은 길에서는 모닥불을 피운 듯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작은 길을 택했고,
좌우에서 그 이유를 묻자 "이것은 제갈량의 함정이다.
작은 길에 불을 피워서 큰 길로 유도하여 우리를 기습하려는 계책이다.
그러니 작은 길로 가자"라고 대답하여 좌우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그리고 가다가 쉬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
"주유와 제갈량은 정말 꾀가 없어! 나 같으면 딱 이 길에다 군대를 매복시켰을 텐데 말이지 그랬으면 우리 모두 꼼짝 못하고 죽었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순간 그러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그 때 관운장과 500명의 군사들이 조조를 포위했고, 이에 기겁을 한 조조는 승상지위의 체면을 고사하고 말에서 내려 일개 적장인 관운장에게 무릎 꿇고 울면서 살려줄 것을 애원한다.
결국 관운장은 측은지심이 발동되어 조조를 도망치게 틈을 열어주게 되고 나머지 병사들까지 살려주게 된다.
그 후 관운장은 군령장대로 목을 내놓을 처지가 되는데 유비를 비롯한 모든 장수들의 간곡한 건의에 의해 형벌은 취소되었다.
이 때 관우는 공명에게 목숨을 빚지게 된다. 중국의 중세이후 역사에서 성인을 두 분으로 모시는데 한 분은 문성으로 공자이고, 다른 한분은 무성으로 관운장이다.
그리고 중국은 황제의 무덤을 릉(陵)이라고 하고, 성인의 무덤을 림(林)이라고 하는데 현재 중국에 림은 공림(孔林 공자의 무덤)과 관림(關林 관우의 머리가 묻힌 무덤) 두 개 밖에 없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관우는 절대적인 신앙적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전장터에서 용맹을 떨치던 장수 관운장도 인간의 약함 앞에서 무한히 약해지는 참 인간인 덕장임에 틀림이 없다.
이는 현대인의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모순적인 행동에 비해 관우의 덕성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숙연해진다.
또한 관우를 통해 깨닫는 교훈으로는 인간이 되어서 몰염치를 혐오하고 의리의 참모습으로 돌아가야 함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 가정, 친구, 명예, 권력, 돈, 직위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인간다워야 한다.
권모술수와 거짓, 양심을 버리는 것은 결국 인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