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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고작 24세의 나이에! 참으로 대단하신 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1821~1846)의 축일입니다. 그간 배출된 한국인 사제 숫자는 7천명을 넘어 섰는데, 신부님은 1호 사제로서, 한국 모든 사제들의 맏형이요 모델이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묵상할 때마다 우선 드는 느낌은 안쓰럽고 짠한 느낌입니다. 사제직을 꿈꾸며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소년 김대건은 물설고 낯선 곳에서 8년 세월을 고생한 끝에 부제품을 받게 됩니다.
사제직을 준비 중이던 청년 김대건 안드레아의 조국과 동포를 향한 사랑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조국의 동포를 향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자 없이 살아가는 조선 천주교 교우들을 향한 연민의 정도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학생 김대건 안드레아는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는 길을 뚫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가 21세이던 1841년 연말 마침내 의주를 통해 밀입국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한양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눈물을 머금고 멈춥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무렵 김대건 안드레아는 부친 김제준의 순교 소식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어린 동생과 함께 머물 곳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참으로 가슴 찢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같았으면 부모님과 가족이 저 지경인데 사제는 무슨 사제, 하며 다 팽개치고 어머니를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1844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학생은 드디어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습니다. 보다 안전하게 조선 입국로를 뚫기 위한 그의 노력은 점점 배가되었습니다. 드디어 1845년 1월 꿈에 그리던 입국이 성사됩니다.
천주교 박해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기에, 육로를 통한 정식 입국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청년 김대건 안드레아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국경에 도달한 그였지만, 여권이 없었습니다. 기지를 발휘해 아슬아슬하게 국경을 통과했지만, 가는 곳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홀로 밤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큰길로는 걷지 못하고 숲이 무성한 산길로만 걸으니, 그 여정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날씨는 한겨울, 눈은 펑펑 오지, 먹은 것은 없지, 결국 그는 눈 위에 쓰러져 정신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파리외방선교회 사제들을 조선으로 모셔오기 위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고초는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상해에서 출발한 라파엘호는 큰 바다를 건너다니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연안에서 조기잡이 정도나 할 수 있는 작은 황포돛배였습니다. 바닷가에 살다 보니 바다의 위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그리 잔잔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돌변해서 무섭고 거친 모습입니다. 그런 날 황포돛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상해 바로 건너편은 제주도입니다. 따라서 선장 김대건 신부의 계획은 인천과 가까운 산동 반도 쪽으로 올라가서 한강 하구를 통해 입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와 풍랑에 떠 밀려 정처 없이 흘러가던 라파엘호는 제주도 앞까지 떠내려갔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새 사제의 전도 여행길은 거의 목숨을 건 여행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의 여정이 마치 바오로 사도의 여정과 흡사합니다. 고작 24세의 나이에!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모습 앞에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외국말로 그 어려운 신학 공부한다고 10년 가까이 쌩고생했지, 입국로 뚫는다고 거의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 뱃길로 선교사 동반하려다 죽을 고생한 새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를 고작 24세의 나이로 당신 나라에 데려가셨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조국과 동포를 향한 극진한 사랑, 선교사 영입을 위한 불굴의 의지, 목숨을 내건 선교 열정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부족한 사제들의 수호자시니, 천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계속 격려하고 계심을 굳게 믿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4년 나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으로 보는 '사제직 수행의 목적'>
복음: 마태오 10,17-22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커다랗게 세워진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교회가 성장하였고 또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김대건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범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동상으로 외국에 보내 놓고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격이 될 것입니다. 성인은 본받자고 정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성인으로 칭하지 않아도 이미 하느님께 성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생각할 때는 단 한 가지 모범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일을 하기는 하셨지만, 결국 한 가지 목적이셨습니다. 그분이 어렸을 때 먼 길을 걸어가셔서 공부하시고 조선 땅을 밟기 위해 육로로, 또 해로로 길을 개척하시며 하신 고생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고생하셨을까요? 당신만으로는 조선의 모든 신자의 배를 불릴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왜 신자들의 배를 불리려 하셨을까요? 그래야 착해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데 뮈세는 ‘5월의 밤’이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시 속에 어미 새 펠리칸이 등장합니다. 어미 새 펠리칸은 갓 낳은 굶주린 새끼 새들을 해변에 놓아두고 먹이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에도 어미 새는 단 한 줌의 먹이도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맙니다. 여행에 지친 어미 새 펠리칸이 돌아올 때 엄마를 본 굶주린 새끼 떼들은 어미 새에게 몰려갑니다. 그걸 본 어미 새는 날개 속으로 새끼들을 포옹합니다. 그리고 어미 새는 그 자리에 누운 채 부리로 자기 가슴을 쪼아서 자기 피와 심장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 놓습니다. 어미 새는 새끼들이 엄마의 피를 마시고 엄마의 살을 먹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서서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새 중에서 가장 모성애가 강한 새가 펠리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펠리칸은 새끼 새들이 병약하고 아플 때 부리로 자기 힘줄을 터뜨려 피를 먹이고 배고플 때는 가슴을 쪼아 살을 뜯어 먹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미가 그렇게 해서 새끼들도 커서 그렇게 자기 새끼들에게 할 수 있습니다. 잘 먹는 새끼들은 어미를 믿기에 악해지지 않습니다.
반면 뻐꾸기를 생각해봅시다. 뻐꾸기는 어미에게 사랑 받지 못합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몸집이 크니까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해야 하고 먹이를 더 많이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알들을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리고 자기만 어미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유욕, 식욕, 권력욕이 자기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주위에 있는 것들은 목숨을 잃습니다. 나중에 새들이 회의하면 제일 먼저 쫓겨날 새가 뻐꾸기일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는 인간에게 하느님과의 통로를 제공하여 하느님의 생명의 양식과 가르침으로 신자들이 더는 세상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세속-육신-마귀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종교만 버리면 돈도 많이 주고 결혼도 시켜주고 높은 벼슬도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런 편지를 남깁니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을 만나 부디 마음을 허실(虛失)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主佑)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원수(三仇)를 대적하십시오.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큰일(靈魂大事)을 경영하십시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한국 교회에 천국의 음식을 전할 길을 준비하다가 붙잡혀 순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새끼들이 뻐꾸기가 아니라 펠리칸이 되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사람은 받은 사랑만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돈 좋아하면 안 되고 십일조 내라고 하면 반발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또 이런 것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이는 김대건 신부님을 수호자로 둔 사제들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세속-육신-마귀와의 싸움이 더 격해졌고 더 많이 지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마지막으로 신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가장 중요한 교리가 삼구와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면서까지 하늘 양식을 전해주는 길을 트기 위해 노력하셨음을.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라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인기 강사로 잘 나가던 강사가 어느 순간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 그럴까 싶어서 전보다 유머를 더 많이 사용했지만, 점점 불러 주는 곳이 줄어들 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속담처럼, 인기 강사라는 사람들의 인기가 어느 한순간 사라지더라는 것이지요. 그의 스승님을 찾아가서 왜 그런지를 여쭈었습니다. 다음은 그 스승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유명 강사들이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가 인기 없어지는 것 봤어?”
“아니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서 인기가 없어지는 거야.”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워낙 깊기에 그 인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잔재주로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깊이 있는 내용으로 다가서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님 가르침의 깊이로 인해 인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즉, 방법의 문제가 아닌, 깊이의 문제였습니다.
저도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깊은 묵상으로 강론과 강의를 준비했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깊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없는 깊이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진실된 마음으로 깊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믿음, 희망을 세상의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사제로서는 아주 짧은 시간을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이 있는 삶,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박해자의 칼날에 큰 두려움 속에 떨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 안에서 끝까지 견디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의 말씀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얼마나 깊이 있는 삶을 사셨습니까? 그 삶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합니다.
오늘의 명언: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어린 왕자' 중에서).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5,1)
평화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온다네.
불평은
평화를 깨뜨리고
적의와 악행은
평화를 쫓아낸다네.
마음속에
불의를 품는 이들은
평화로울 수 없으며
평화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들에게 씌워지는
아름다운 화관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매일 묵상 단톡방)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면 되고,
아는 건 안다고 말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말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증거하는 그 말들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할 게 아니라
내 안에 성령께서 살아있도록
거처를 마련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야 미움과 박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제가 듣고 본 것만을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 이상은 제 안에서 나오는 내 말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님을 제가 압니다.
오늘도 제 안의 성령께서
제 미천한 입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