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끝자락. 하늘과 맞닿은 수십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휘감아 도는 이곳에 자연의 향기를 품고 사는 이가 있다. 해발 600m 고지 이상에서만 자라는 다양한 산야초를 채취해 차와 효소를 만드는 전문희 씨(52).
갖가지 산야초가 지천으로 피고 지는 6월 중순, 천왕봉 밑 한적한 산자락에서 만난 전문희 씨는 눈코 뜰 새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 있었다. 제철 맞은 각종 산야초를 뜯어다 차와 효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나오는 게 산야초지만, 특히 약성 좋은 놈은 지금이 제철이에요. 3월 중순부터 100일 남짓 동안 산야초를 뜯어다 덖고 말리고 효소를 담그려면 쉴 새가 없죠. 날마다 올라오는 새순을 따려면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판입니다. 특히산야초는 맑은 날 오전에 딴 것을 최고로치니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을 수 없죠.” 높은 산자락에 들어앉은 그녀의 집 안팎에도 산야초가 지천이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녀는 쉼 없이 산자락을 누비며 ?야초를 뜯었다. 10여 분 지났을까. 그녀의 바구니엔 금세 꿀풀, 인동초, 산뽕나무,산초나무, 찔레꽃, 산딸기 등이 수북하다.
“이놈이 인동초예요. 한 줄기에서 노랗고 하얀 꽃이 앞다퉈 피죠. 혹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에 핀다 하여 이름이 인동초입니다. 생명력이 강한 만큼 약성도 좋아 차로 달여 마시거나 효소로 담그면 몸에 좋아요. 꽃도 예쁘지만,열을 내리고 습濕을 없애는 데 최고죠.” 지천으로 널린 산야초 … 하늘이 내린 보배 뒷동산 마실 가듯 잰걸음으로 산자락을 오르내리던 그녀는 만나는 산야초마다 효능이며 성질 등므 설명하느라 침이 마른다. 산야초에 있어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 박사다. 그리하여 지금은 약재상이나 단골이 줄을 댈 정도로 이름난 산야초꾼이지만, 그녀는 한때 잘나가던 신세대 여성이었다. 통기타 가수로, 모델로,인테리어 사업가로 화려한 삶을 살던 그녀가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 자락에 뛰어든 건 17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림프샘 암에 걸렸어요.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앞이 캄캄했죠. 어릴 때 약골인 나를 살리려 어머니가 달여주던 온갖 산야초가 생각났어요.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면 뮳가 한번 고쳐보겠다고 다짐했죠. 산야초로는 고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녀는 즉시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달려가 모친 병구완에 매달렸다. 암을 알기 위해 전문서적을 뒤적였고,눈만 뜨면 약초를 찾아 산기슭을 헤맸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큰 산은 거의 다 헤집고 다녔을 정도다. 덕분인지 가망 없다던 어머니는 그녀 곁에서 3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곁을 지키면서 느낀 건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거였어요. 사는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맑게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런 제게 세속적인 성공은 더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길로 그녀는 지리산에 찾아들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떠났지만, 산야초의 효능을 절감한 전씨는 지리산을 놓지못했다. 그렇게 피아골에서부터 남원골, 뱀사골, 화개골, 구례에 이르기까지 지리산 구석구석을 떠돌던 그녀가 10년 전 거처를 마련한 곳이 산청 천왕봉 밑 산자락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눈 녹기 전에는 매화를 따고, 눈이 녹기 시작하면 냉이와 달래, 쑥을 캔다. 4월이면 으름을, 5월에는 찔레꽃을 딴다. 여름에 접어들면 뽕잎, 연잎, 감잎, 질경이가 그녀를 맞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에는 노란 산국과 감국, 구절초가 제철이다.
개망초, 싱아 같은 잡풀도 차와 효소로 거듭나 토끼풀, 망초, 싱아 같은 잡풀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근사한 차가 되고 효소가 된다. 산과 들에서 채취한 산야초는 자연이 내린 맛과 영양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전씨는 이들 산야초의 풍부한 영양성분을 사계절 섭취하려면 차나 효소를 담가보라고 권한다. 특히 효소는 물에 희석해 차로 마시거나 음식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어 무척이나 요긴하다고.
“요즘 우리가 말하는 효소는‘ 효소가 들어 있는 발효액’을 말합니?. 효소는 생명의 모든 작용에 관여하기에, 사람은 효소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어요.하지만 나이 들수록 효소 생성량은 줄어들고 활성이 떨어져 갖가지 병에 걸리기 쉽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효소를 늘려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체내 효소와 같은 효소를 보충해주는 것입니다.” 그녀가 산야초 효소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소를 만들 때 그녀는 뿌리, 잎,껍질, 열매, 꽃 등을 두루 채취해 사용한다. 특히 그녀는 100가지가 넘는 산야초를 채취해 ‘백초효소’를 담그는데, 이 가운데는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 있?만, 숙성과정에서 중화작용이 일어나 자연의 좋은 기운만 남게 된다는 것.
“100가지 이상의 산야초가 들어간다고 해서 백초효소예요. 대개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에서 나는 초목 가운데뿌리, 순, 잎,껍질, 열매, 꽃을 따 넣어 만드는데, 개복숭아, 오디, 으름, 산사과,돌배 같은 산 열매와 여러 꽃이 어우러져 약성은물론 맛도 좋죠.” 하지만 그녀는 효소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다만 누구나 자연에서 난 청정한 재료로 식단을 꾸미고 효소를 담가 꾸준히 마시며 생활습관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건강을 지킬 ?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종일 산등성이를 헤매다 보면 어디 한 군데 성할 날이 없다. 풀섶에 숨어있던 뱀에게 물리는 건 다반사고,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진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녀는 산을 떠날 수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 발길에 짓밟히는 야생초의 소중함을 알려야 해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산야초를 싹쓸이해가는 사람들도 많아졌거든요. 지금까지는 야생초를 알리는 데 힘썼다면 앞으로는 그 소중함을 지키는 데 앞장설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망태 자루에 호미를 집어? 전문희 씨, 산속으로 들어가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그녀는 오늘도 골 깊은 산기슭을 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