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나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기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끓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 읽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
시인 백석이 1948년에 발표한 이 시를 내가 처음 접한 건 고등하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 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대학 다닐 때는 이 시를 아주 정확하게 암송할 수도 있었다. 무려 37회에 이르는 쉼표까지 정확히 지켜서, 그만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는 한다는 얘기다.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성취를 꼽으라면 ‘갈매나무’라는 상징일 것이다. 사실 이 시어가 나오기 전까지 이 시는 담담한 고백, 혹은 살짝 청승맞은 신세타령의 느낌을 주지만, ‘갈매나무’로 이 시는 돌연하고 반짝이는 시적 긴장을 획득한다. 자기 부정과 절망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시인이 그 바닥을 딛고 힘겹게 건져 올린 자기 긍정과 희망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갈매나무 못지않게 처음부터 나를 강력하게 사로잡은 것은 시의 제목이자 공간적 배경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었다. 이는 편지봉투에 쓰는 발신 주소이기도 한데, ‘신의주 남쪽 유동이라는 마을에 사는 박시봉방의 집에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누추하기 그지없다. 제대로 된 바닥도 아니고 삿을 깐, 눅눅하고 곰팡내 나는 방이다. 날씨는 추운데 난방은 되지 않아 화로 비스름한 걸 가져다 겨우 불을 쬔다. 그곳에서 시인은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놀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순간이든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다 보면, 마치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도 만난 것 같고, 그곳에서 살지 않았어도 산 것 같고, 그 순간을 겪지 않았어도 겪은 것 같을 때가 있다. 나에겐 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살면서 저 정도로 극한 상황은 겪지 않았지만 나 또한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은’,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곳을 떠올렸고, 거기에서 시인이 본, 정확히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는 갈매나무를 상상했다.
이곳에서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굳이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 안에 담기 있는 슬픔을 또 다른 밀려오는 슬픔으로 받아 안는다. 그 과정에서 슬픔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삶에 대한 순정한 겸허가 자신을 일으켜주는 것을 느낀다.
삶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 설령 바깥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실이다 이별은 내 뜻과는 무관하게 닥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누추하기 짝이 없는 방에서 그 힘을 찾아낸 시인처럼.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