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치아의 성 야고보 사제
야고보는 1394년 9월 Ascoli Piceno 가까이에 있는 Monteprandone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도미니코였다.
그는 그가 아직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 목동으로 일해야 했다.
그 후 그는 Ascoli의 프란치스칸 수도원과 도미니칸 수도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페루지아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Bibbiena와 Porziuncola에서 작은 형제들과의 접촉을 갖게 되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1415).
그는 플로렌스 외곽에 있는 Monte alle Croci 수도원에서 인문학과 신학을 계속 공부하였으며
1422년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431년에서 1458년 사이에 야고보는 이태리의 많은 도시에서 유명한 설교가가 되었다.
그는 또한 프란치스코 수도회 내에서의 개혁 운동(Observant 개혁 운동)에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교황들은 좀 복잡한 선교를 해야 할 때면 야고보를 그 선교지에 자신들의 대사로 보내곤 하였다.
이런 식으로 그가 간 곳은 헝가리,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폴란드이다.
그는 1450년 로마에서 거행되었던 성 보나벤투라의 시성식에 참여하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간은 이태리의 도시들에서 설교를 하는 데 소비하였다.
야고보가 주창한 일들 중 한 가지는 “Monti di Pieta”라는 것을 창립한 것인데, 이것은 중세의 은행의 일종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저렴한 이자로 대부를 받아 쓸 수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태리에서 Observant들이 했던 위대한 사회 개혁들 중의 하나로서, 고리대금을 근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야고보는 1476년 11월 28일 나폴리에서 설교를 하던 중 죽음을 맞이하였다.
베네딕도 13세가 1726년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작은형제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