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5]아름다운 인연(10)-전라도닷컴 황풍년
‘아름다운 사람’ 시리즈 제목은 몇 회 쓰다보니 나로선 분에 넘치는 글같아 제목을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바꾼다. 어느 사람을 ‘아름답다’고 지칭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공동체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거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 불의를 미워하는 공의公義로운 사람일 때 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의 주관主觀으로만 흐르는 것같아 거시기하고, 객관적인 입장으로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아름다운 인연’으로 10번째 소개하는 사람은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부터 광주에서 월간잡지 <전라도닷컴>을 펴내, 이제껏(3월호가 통권 263호) 발간해온 황풍년(61) 대표이다. 잡지가 처음부터 내세운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만을 담는다>는 것은 일종의 슬로건 같은 것이다. 무슨 말인가? 정치 경제 등은 일체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그게 마음에 들었다. 2021년부터 3년 동안은 <광주문화재단> 대표로 일하느라 닷컴을 떠나 있다가 올해초 ‘그리운 친정’으로 복귀한 ‘참 언론인’이다. 황 대표 이전에도 한국잡지사에는 혁혁한 거물들이 있었다. <사상계>의 장준하, <씨알의 소리>의 함석헌,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의 한창기, <문학사상>의 이어령 등을 들 수 있겠다. 잡지를 받으면 맨먼저 읽는 게 발행인이 쓰는 1쪽짜리 머리말 칼럼이다. 위에 언급한 잡지들의 머리말도 그랬다. 발행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돈 안되는 잡지를 딱 한번 거르고(2014년 세월호참사때 억장이 막혀 내지 못하고 다음달 합본호를 펴냈다) 왜 줄기차게 내는지를 알 수 있다. 시제時制와 상관없이 그동안의 글들을 묶으면 아주 훌륭한 칼럼집이 될 듯하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추억의 편지 72신]'전라도닷컴' 황풍년 대표에게 - Daum 카페
전라남북도 농촌지역과 도서벽지 등을 발품발품하여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생활과 그 지역의 표준말인 사투리와 방언 등을 고스란히 기록해내는,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잡지. 말하자면, 닷컴은 ‘고향故鄕 그 자체’라고 하겠다. 어르신들이 말하는 것을 고대로 받아적는 게 쉬운 것같아도 무척 어렵다. 어머니나 할머니의 말을 한번 받아 적어본 적이 있는가? 10분도 못돼 손발을 다 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잡지에는 구술口述전문 자매기자(남인희-남신희)가 있다. 구술은 물론이거니와 어찌나 글을 잘 쓰는지 금세 반하게 된다. 무엇보다 농어촌의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데 시각들이 너무나 따뜻해 좋다. 그들이 남겨놓지 않는다면, 않았다면, 진즉에 없어지고 사라졌을 아름다운 우리말이 넘쳐난다. 발행인도 많은 글을 쓰고, 아주 준수한 글들을 모아 책도 세 권 펴냈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2016년) 『풍년식탐』(2013년) 『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2010년)가 그것인데, 읽다보면 쏙 빠지는 글과 저자의 마력이 있다.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잡지사 사장社長’이므로 수입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했으나, 그 일조차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했다. <광주드림>을 창간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본래는 어느 관공서를 방문, 광고 1쪽 내달라는 말도 잘 못하는 수줍고 내성적인 사람인 것같다. 그런 그가 방송인 활동도 많이 했다. 막 솟아나온 고사리를 ‘톡’하고 꺾는 재미에 매우 즐거워하는 순진하고 촌스러운 남자, 그가 지역 문화활동을 제 궤도에 올려놓고 말겠다는 뚝심은 어디에서 나올까? 서울의 유수한 대학을 나오고 중앙지 기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나, 당시 <전남일보>엔 소설가 문순태 선생과 ‘광주의 십자가’를 쓴 김준태 시인이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지방신문 기자가 되었다한다. 그러다 뜻한 바 있어 1999년 12월 일간지 기자記者을 때려치우고 2000년 1월부터 잡지사 기자가 되었다.
한때는 정기독자가 5000명도 넘었다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구독률, 가시밭길은 불 보듯 뻔한 이치. 참 그 지난한 고비고비를 어떻게 넘어왔을까? 그리고 현재의 손익분기점은? 모를 일이지만, 월초 배달되는 잡지를 보면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짝사랑 찐한 애정을 갖고 있다. 오죽하면 능력도 없어 도움도 못되면서 ‘홍보이사’라는 직함을 자청했을까? 사람들이, 특히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 잡지를 너도나도 구독해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고향을 잃거나 역사를 모르거나 기록을 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생각을 나는 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평생 썼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혹자는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효자도 아니지만, “닷컴은 나로 하여금 효도를 하게 만든 잡지”라며 쓴 졸문이 잡지협회 공모전에서 낙선하기는 했지만, 마음만큼은 진짜였던 것을.
황풍년, 어쩌면 이름이 ‘풍성할 풍豊, 해 년年’일까? 멋지고 드문 이름일 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면 풍년이라고 짓겠다는 약속했다고 한다. 게다가 성이 ‘누르 황黃’이니, 누렇게 물들어 고개 숙인 가을 황금들판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그것만큼 배 부르고, 보기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하여, 첫 책의 이름도 『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와의 인연은 아름다운 게 틀림없다. 소생의 출판잔치에 광주에서 아예 닷컴 사무실을 전주로 옮긴 듯 전직원(5명)이 몽땅 왕림을 했으니, 오직 황감할 따름이다. 애독자로서 건강이 급속히 안좋아진 그가 언제나 건강하고 건필하기만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