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슈미트 콜비츠는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로, 독일 프롤레타리아 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녀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는 장이었던 20세기 초 유럽 예술계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한가운데를 똑바로 응시하며, 도시 빈민과 빈곤 노동자, 전쟁 피해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거칠고 생생한 윤곽선으로 판각된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은 보다 직설적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긴다.
케테 콜비츠는 1867년 7월 8일 당시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산층 지식인 계급으로 진보적 사회 사상가였으며, 외할아버지는 자유 신앙 교구를 일으킨 신학자로 케테 콜비츠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 콜비츠는 새벽에 한국에 도착했다.
1980년 5월27일 04시, 그 새벽은 계엄군 총구 끝을 타고 금남로 도청 유리창을 깨면서 날아들었다.
세상은 침묵이라는 먹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심부를 한 청년이 조각칼 끝으로 찢어내면서 5월 연작이 시작되었다.
홍성담이 합판을 파내 항쟁을 기록한 목판화 50점을 ‘새벽’이라고 이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저 80년대를 횡단하면서 ‘새벽’은 판을 바꿀 정도로 나뭇결 자체가 닳도록 찍혀 나갔다.
목판화의 역동성은 벌써 오윤에게서 예감되었다. ‘민’이라 부르는 거대한 익명은 그를 만나 조형으로 비로소 호적을 얻었다. 그가 칼로 새겨낸 표정과 몸동작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민중의 지문이었다.
그의 칼끝에서 새 세상을 도모하는 주체로서 민의 새벽이 신명으로 열리고 있었다.
이철수, 김준권, 홍선웅, 유연복네들은 다 오윤의 아우들이다. 80년대는 목판화 시대였다. 골방에서 광장에서 한국의 먹은 뜨거웠다. 이들의 어머니가 콜비츠다.
그를 동아시아 해방과 혁명의 새벽으로 불러들인 이는 루쉰이었다.
<전쟁> 연작 가운데 ‘희생’이 그가 관여하던 잡지 <북두> 창간호에 실렸다.
폭넓은 게르만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처음 극동에 드리워지던 때는 장제스의 학살로 국공합작이 깨지고 장시지구에 소비에트를 형성한 마오쩌둥 정부에 토벌 공격을 퍼붓던 무렵이었다.
봉건과 제국주의, 좌절과 허위, 부패가 낳은 일상의 얼굴인 아큐(Q)를 각인시켜 도려내고 새 인간형을 창조 해내는 루쉰과 동료들의 조각칼은 대륙을 갈아엎는 쟁기와 보습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정작 그들이 손에 쥔 미술도구는 잘라낸 우산 뼈대나 펜대에 끼우는 펜촉 반대편 둥근 부분이었다.
타이완의 새벽 또한 목판화에 찍혀 나왔다.
루쉰의 자장 아래 청년기를 보낸 쓰촨 출신 대만사범학교 교수 황룽찬은 타이완 민중이 외성인에 맞서 일으킨 2·28봉기를 그해 4월 나무판에 새겨 알렸고 이내 옥으로 끌려갔다.
‘개(일제)가 나가더니 돼지가 들어왔다’고 외친 몇 만 명이 사라졌다.
그의 연인이 처형된 이튿날 새벽 황룽찬마저 총살되었다. 고작 서른두살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목판화는 이렇게 끓어오르는 시대의 어둠을 먹으로 삼아 찍혀 나왔고 생동하는 대중의 근육으로 작동 해왔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늦게 새벽이 오는 발트해 옛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케테 콜비츠는 독일혁명의 새벽을 판화로 찍어냈다.
그가 역사를 아로새겼다기보다 역사가 그를 빌려 세상에 말을 걸었다.
그에게 결정적 영감을 준 <직조공>을 쓴 게르하르트 하웁트만뿐 아니라 하이네 또한 슐레지엔의 ‘직조공의 노래’를 불렀다.
음지에서 세상을 날로 씨로 짜던 실은 콜비츠에게로 와서 질박한 선이 되었다.
그 선들이 빚어내는 형상은 육체가 있는 사상이다. 이것이 예술이다.
콜비츠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사상이란 한낱 뇌가 아니라 피가 더운 몸으로 박동할 때 인간세상의 지혜가 된다.
베를린 지성 1번지 훔볼트대학 옆 천장 한가운데 둥근 구멍을 낸 건물 노이에 바헤 아래 한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껴안은 채 앉아 있다.
늘 새벽인 양 희미한 자연채광에 어깨를 드러낸 여인은 눈과 비바람을 맞으면서 말없이 고통의 중심에 있다.
미켈란젤로는 신의 피에타를 깎아냈고 아들과 손자를 전장에서 잃은 어머니 콜비츠는 이 인간 피에타를 심장으로 녹여냈다.
시대의 고통과 공감하는 힘이야말로 명작의 존립 근거다.
명작은 언제나 현재적이다.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어제보다 더 어제를, 내일보다 더 내일을 오늘로 가져오고자 치열하게 살아낸 케테 콜비츠가 서울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