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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투시경] 헌법 제3조 ‘대한민국 영토조항’은 망가질 것인가
자유일보
손광주
6·3 대선 후 사회적 우울증에 걸린 국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시장의 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가. 비는 퍼붓는데 시계(視界)는 제로다.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꾸던 꿈. 일제 식민지 해방과 자주독립의 꿈,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우는 꿈, 목숨 건 국제공산주의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꿈, 5000년 보릿고개를 함께 넘는 꿈. 그리고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이루어졌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부터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때까지, 46년간의 남북 대결은 누가 봐도 우리의 객관적 승리로 끝났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그리고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더 이상 상대가 안 되었다.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이 사망한 그 시각 평양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1994~98년 북한 동포 3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동서독은 통일됐고, 소련과 동유럽은 붕괴됐으며,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북한의 뒷문까지 열린 상태. 남쪽의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휴전선의 한미 연합군은 세계 최강이었다. 한반도의 사회역사가 제대로 진보하려면 바로 이 시기에 북한 세습독재정권도 끝장났어야 했다.
운명은 그렇지 못했다. 죽느냐 사느냐 깔딱고개에 걸린 김정일은 오로지 핵무기에 승부를 걸었다. 1994년 미사일에 탑재할 수 없는 조잡한 핵무기 1~2기가 30년이 지난 지금은 50기가 넘었다. 핵무기 운반 수단은 미국에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완성됐다. 지난해 러시아와 신조약을 맺은 후 러-우 전쟁 파병에 지금은 핵추진잠수함까지 만들겠다고 큰소리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이젠 다 아는 이야기다. 김정일·김정은의 핵 생존전략에서 우리는 패배했다. 우리는 끝내 영변 핵시설을 때리지 못했고, 김일성 사망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북 정책에서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북핵 개발자들을 응징해야겠다는 발상조차 안 했다.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북한정권에 우리가 먼저 잘해주면 그들도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에게 잘하겠지, 핵 협상을 잘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지…순진무구인지 천진난만인지, ‘이불 킥 여포’ 같은 소리로 30년을 보냈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 국가의 운(運)도 야구나 바둑과 같다. 점수를 내야 할 때 못 내고, 대마를 잡아야 할 때 못 잡으면 거꾸로 위기가 오게 돼 있다.
미-북 간 핑퐁은 시작됐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이야기, 북한 측이 친서를 거부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어찌됐든 이란 핵시설이 상당히 파괴되어 중동전쟁도 폐막됐고, 트럼프가 주도한 나토(NATO) 방위비 문제도 회원국 GDP 5% 국방비로 합의됐다. 이제, 지구촌 카메라 앵글이 동아시아 중국과 한반도 북쪽으로 서서히 이동할 때가 된 것 같다. 북한은 어떻게 될까. 또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나.
단순한 구도로 정리해본다. 2023년 12월 말 김정은이 ‘남북 적대적 2국가’를 주장했을 때 감(感)이 잡히는 대목이 있었다. 먼저 북한주민들의 ‘통일 환상’을 접도록 한 뒤, 미국과 한국, 일본과 한국을 확실히 갈라치기 하고 적절한 타이밍이 오면 북한이 미·일 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김정은의 2국가론은 그냥 ‘남북이 따로 살자’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한미·한일 관계를 갈라치면서 ‘미국과 일본은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헌법(제3조 영토 조항)에 얽매이지 말라’는 메시지가 더 중요한 대목이다.
다시 말해, ‘우리(북)는 한국과 똑같은 유엔 회원국이고 자주독립국가이니까, 이제부터 북·미-북·일 간의 문제들을 청산하자’는 의도가 내재돼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헌법 영토 조항을 매개로 북·미 관계,북·일 관계를 훼방놓으면 우리(북)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을 국제분쟁화 하겠다는 암수(暗手)도 함께 숨어 있다.
김정은은 미국과 종전선언·평화협정, 나아가 수교회담까지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과는 납치문제, 과거사 청산과 식민지 배상 문제가 청산 대상이다. 미국과 협상이 되면 일본과는 자동적으로 연결될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핵심은 미국과의 협상이다. 물론 김정은은 ‘핵 보유’ 상태에서 미-북 평화협정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김정은 입장에서 한국 정부는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말고 북미 회담이나 주선해주면 되고, 달러를 지원해주면 좋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와 똑같은 역할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가 통일부를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남북 2국론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의 동아시아 연구자들 중에는 "힌국과 DPRK(북한)이 수교하기를 바란다"며 "한국과 북한이 수교하면 미국은 중국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불현듯 ‘비는 내리되 퍼붓는다’(It never rains, but it pours)는 영국 속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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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주 前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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