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기다리지도 안 했다.
아니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어대며 가을이라고 했다.
이에 질세라 가로수 은행 나뭇잎이 샛노랗게
가을 옷 갈아입고 가을 향연을 준비하고 있어
가을이 내 곁에 온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이 가을.... 무엇을 할까?
막연하여 잠시 망설였다.
'그래 나에게는 산행이 있었어'
갑자기 분주해지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민둥산행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 셋째 주 일요일은
민둥산행이 있는 날이다.
스무 날도 넘게 해맑고 청명하던 날씨가
하필이면 일요일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한다.
여름 우중 산행은 묵인할 수 있어도 가을 우중산행
끔찍했지만 산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그 무엇도 막을 수는 없었다.
몇 년 만에 우의도 챙기고 덤으로 우산까지 꼼꼼히
챙기면서 '비가 많이 와서 입산 금지 하면 어떡하지'
은근히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비가 온다고 하니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김치 볶은밥을
배낭 속에 넣으면서도 보리차를 넣으면서도
순간순간 비가 오지 않기를 얼마나 간구했던지.
금방이라도 장대비 쏟아질 것처럼 위태로운 하늘을
거실 창문 너머로 심각하게 바라보며 배낭을 집어 들었다.
간밤을 지키던 도심의 파수꾼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제 빛을 잃어가던 이른 아침 종로 3가에서 민둥산행 버스에 올라갔다.
낯 선 산우님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오늘 민둥산행
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동지라서 마주 보는
눈빛에는 유난히 동지애가 깊게 스며있었다.
비구름 가득한 잿빛 하늘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과연 언제 일을 저지를지 불안 불안했다. 솔직히
국도 38번 도로를 무심하게 지나가던 민둥산행 버스
창문 너머로 아침을 맞이하는 산촌 마을이 가까이 다가왔다 멀리 사라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황금들녘의 가을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빈 들녘에는 비구름이 몰려와 무서리
내리는 11월 어느 초겨울 풍경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와 기억도 아스라이 먼 어린 시절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산부자 동네 강원도 정선군 남면 증산초교 앞 주차장에
민둥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지친 일상탈출을 부추기는 가을 산행 이벤트.
버스에서 내리자 짙은 잿빛 비구름이 우리를 위협했지만
천만다행 비는 오지 않아 우의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민둥산행 들머리로 들어섰다.
워밍업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들머리 초입부터 45°는 족히
되는 깔딱고개다.
가쁜 숨 몰아쉬며 깔딱이라고 산우님께서 투덜투덜거리자
깔딱 아닌 산이 어디 있냐고 어느 산이나 깔딱이라고
시원하게 정답을 이야기하시는 산우님이 멋있어 보여서
보고는 싶었지만 참었다. 걷는 게 힘에 부쳐서 쳐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솔직히.
소나무 숲 속 길에는 누우런 솔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아무리 보아도 누우런 바늘처럼 보여 기어이 떨어지는
솔잎을 잡었다. 바늘은 아니었구나.
깔딱 고개를 워밍업 하고 나니 저만치에서
민둥산 급경사 2.6km, 완경사 3.3km라는 나무표시판이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급경사 2.6km로 방향을 잡고 나니 과연 얼마나 급경사일지
살짝 겁을 먹었지만 산행 길이가 짧아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노랗게 물이든 나뭇잎이 "가을가을"한다.
과묵한 산우님도 마음이 흔들였는지 노랗게 물이든
나뭇잎을 가리키면 "백합나뭇잎"이라고 하신다.
비단결처럼 고운 노란 꽃잎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뭇잎이 꽃잎이 되는 계절 이 가을.
가을 산행이 주는 특별 이벤트가 우리네 지친 일상탈출을 부추 인다.
비구름과 바람의 한 판 승부.
바람이 분다 세찬 바람이 쉼 없이 불어댄다.
비구름이 세찬 바람에 밀려 잠시 햇살이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비구름 완전히 없애버려' 무한한
응원을 보내며 쉼 없이 산길을 올라갔다.
민둥산 정상 1.3km 나무표시판이 우리를 기다린다.
잠시 숨을 고르고 또다시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비구름을 몰아내는데 여념이 없는 세찬 바람이
강도를 더하자 숲 속의 나뭇가지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이미 나뭇잎은 모두 털어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들이 때아닌 태풍을 맞아 수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과 비구름과의 한판
승부에서 바람이 승리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우중산행은 어떻게 하든 피하고 싶었다.
민둥산의 전설
드디어 억새가 보이가 시작하고
정상 600m 나무표시판도 만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구름과 한 판 승부에서 강풍이 지고 말었다.
빗방울이 털어지고 우위를 꺼내 입으며 정상 600m
억새꽃밭길을 올라갔다.
민둥산 억새꽃 축제는 9월 18부터 11월 8일까지 하는데
올 해가 13회라고 한다.
들머리 증산초교 주차장 앞에는 대형 텐트를 가지런히
쳐놓고 억새꽃 축제를 하고 있었다.
600m 억새꽃밭을 가로질러 민둥산(1,119m) 정상에 올라왔다.
어느 산이나 정상은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산우님들로
북새통이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천만다행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비구름과 한 판 승부에서 지고만 강풍은 화가
났는지 분풀이를 민둥산 정상에 있는 우리한테 했다.
정상석에 서자 광풍으로 변한 바람이 미친 듯이 달려든다.
그렇지만 악착같이 정상석을 꼭 잡었다.
살아갈 날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우리가 언제 또 올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정상에 나무가 없는 민둥산은 석회암층이라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가 없다고 한다.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화전민들은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고 한다.
천 미터 고지에서 일상을 영유했던 화전민의 고단한
삶은 화전민이 떠나고 억새가 이어받아 꽃으로
승화되었으니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민둥산의 전설이다.
태백산맥에 속해있는 민둥산 정상길
건너편에는 함백산, 태백산, 두타산, 계방산, 가리왕산, 백덕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져 천상낙원을 볼 수 있지만 오늘은
잿빛 비구름이 엉겨 붙어있고 비까지 내려
아쉽게도 하산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2026.10.18
NaMu
https://youtube.com/watch?v=0g00bVs0zBg&si=IZ_QqkLGdNnAPLyD
첫댓글 나무랑님의 민둥산 산행일기를
일목요연하게 잘표현 하셨네요
읽어보니 그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함께해서리 즐거웠구요 건강잘챙기시고
다음 좋은산서 다시만나요 ~gooooood
비가 온다고 해서 얼마나
맘 고생 많이 하셨어요.
수고 넘나 많이 하셨어요.
일요정기산방 방장님^^
비구름과 바람을 뚫고 민둥산 정상에 서셨군요.
뿌리내리지 못하던 화전민의 아픔이 억새꽃의 전설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뭉클해집니다.
가을 산행의 낭만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길 바랍니다.
옙^^ 쪼금만 참 었으면 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억새꽃이 보이는
순간부터 비가 왔어요.ㅠㅠ
그러게요 천 미터 고지에 화전을
일구며 사셨다니....
많이 서투는 글 잘 봐주셔서
넘나 감사드려요^^
글은 이렇지만
비와 바람이 많이 괴롭혔군요.
그래도 무사히 잘다녀왔으니 다행입니다.
날씨 좋은날에 또 오르실테지요.
그렇게 즐거움을 안고
어려움도 건너는거지요.
옙^^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산행
할 수있어서 감사해요.
근데말예요 선배님 갈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ㅠㅠ
아직은 건강해서 산행 할 수있음에
감사드려요.
나무랑님 차안에서
잠깐보았네요.
나는 정상은 어디산이든
변화무쌍한 모양으로,
정복자들을 괴롭혀요.
오랫만에 봐서 반가웠습니다.
어제는 설악의 화암사 신선대에
올랐는데 화창하고,바람한점없는
날씨가 반겨주었네요~~~
민둥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와 타임 님 넘나 멋있어요.
저는 올 가을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
노래만 부르다 다 지나갔어요.
같이 산행하던 20년지기 동지들이 한 분 두 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이제는 같이 산행 할 동지들이
전혀 없어서요.ㅠㅠ
설악산 다녀 오신 타임 님 넘넘 부러워요.👍
제가 얼마나 무식한지... ㅎ
민둥산은 나무가 없이 민둥민둥한
산들을 그냥 민둥산으로 부르는 줄
알았거든요.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얼마나 무식하다 놀리실까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근처의 함백산은 눈 많이 내렸을 때
올랐던 적은 있었는데 민둥산이
함백산과 멀지 않군요.
여전히 산 정상까지 오르실 수
있는 나무랑님이 많이 부럽습니다.
저두여 정상에 나무가 없어서 민둥산인 줄
알었는데요.
맘 자리님 생각이 맞는 것같기도해요.
정상이 석회암층이라서 나무가 자라지 못 한다고해요.
눈 왔을 때도 멋스럽고 야생화 천국 함백산 좋죠^^
그러게요 건강해서 아직은 산행 할 수있어서
감사한데요.
같이 다닌 산행 동지들이 모두 아프셔서요.
이제는 산행 할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ㅠㅠ
참, 신 나게 오르고
멋진 산행 하는 시절은 좋은 때입니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는 것입니다.
비 때문에
청명한 가을 날씨는 아닌 것 같지만,
갔다 왔다는 것이 어디입니까?
함백산 가는 길로 돌아섰을 때,
어느 산우가 반대편 쪽이 민둥산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아득한 옛 날이 되었네요.
그래도, 나무랑님이 산행한 후기 올려주시면
반갑게 읽거든요.
만둥산 억세 축제라고 하니,
밀양 표충사 뒤의 사자평이 생각나네요.
사자평은 야간 산행도 가능해요,
보름 달빛 아래의 억새 벌판, 장관입니다.^^
민둥산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그러게요 비가 와도 갔다 올 수있어서
넘넘 좋았어요.
야생화 천국 함백산을 가셨군요.
많이 서투른데요 잘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밀양 표충사 처음 들어보는데요.
표충사 뒤에 사자평 억새 벌판이 있군요.
야간산행도 해 보셨나봐요.
언니가 저보다 산행 선수이셨네요^^
제다 다니던 산악회에서도 11월 첫주 민둥산 산행을 한다는데
나무랑님글을 보니 겁이 납니다. 영월에서 오래살았기에
먼발치에선 봤는데 직접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왕년 산꾼 그산님 전혀 겁을 내지 않아도
되거든요.^^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한다니까요.
그러게요 영월을 거쳐서 가더라구요.
11월 첫주 쯤이면 억새꽃이 만개해서 무쟈게
예쁠 것같아요.
정상길 올라가면서 건너편 태백산맥 태산준령들의
신비스런 매력에 반할게예요.
늘 가고 싶었던 민둥산입니다
억새와 한 컷 하고 싶은 맘
간절했지만
산을 잘 못 타
늘 바라만 보죠 ㅎ
나무랑언니 대단하셔요
왕 부럽 ㅎ
후기글 읽으며
대리 만족합니다~^^
우~와 토끼방 미와정 총무님이시다^^
근데요 민둥산은 산행길이가 짧아서
아주 천천하면 누구나 할 수있어요.
날씨가 고르지못해 속도를 내다 보니까
그런거죠 모.
재주가 메주라서 할 줄아는 건 걷는 것 밖에
없어 산행을 하는 건데요 모.ㅋㅋ
장문 맘 잡고 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14년전에 민둥산을 동기들이 버스한대로 가을산행 갔을때도 길길이 비가와 온몸이 망신창이가 된적이 있었지요... 이번 4박5일 태항산날씨는 정말 보기드물게 화창했습니다. 저는 3번째 태항산을 갔지만 집사람은 처음인데 상당히 만족해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러게요 흙산이라서 비가 제대로 오면
진흙이 장난이 아니예요.ㅠㅠ
태항산 다녀오셨군요.^^
여행은 뭐니뭐니해도 날씨가 좋아
하는데요.
넘나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우와 민둥산 겁나 높네요. 저는 600m 쯤 되는 줄 알았는데 거기는 억쇄밭?
우와 거기서 정상까지 가는 길.
죽음이겠는데요.
장하십니다.
들머리 증산초교가 565m래요.
그러니까 정상까지 544m 간거예요.
600도 못 올라 간거라니까요.
관악산 육봉이나 케이블카 능선보다 쉬워요.
더군다나 흙산이라서요.
단지 들머리 300m쯤 깔딱고개가 힘 빠지게
하는 단점이 있긴했어요.
쉬엄쉬엄 하면 등산 초보자도 가볍게
할 수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