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돌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멀리 지방에서 취업을 하려고 시험을 치렀다. 지방으로 가게 되면 만나기가 어려워 사이가 멀어질 것이 뻔하다. 지방까지 가지 말고 함께 일하자고 극구 만류하였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은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고 두려워서 안절부절 하였다. 그런데 시험에서 그만 떨어졌다.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이 되는 것이 당연하고 축하할 일이지만 떨어져서 대뜸 다행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고맙다거나 떨어져서 아주 잘된 일이라고 대놓고 말하기에는 겸연쩍은 일이다. 그래도 마음과는 달리 토닥거리며 위로할 것이다.
몇 년 만에 선배를 만났다. 몰골이 아주 수척해졌다. 대뜸 호들갑을 떨면서 아주 얼굴이 말이 아닌데 어디 죽을병이라도 걸렸느냐고 대놓고 말하기에는 그렇다. 몇 달 만에 어느 어른을 만났다. 그분 역시 핼쑥해졌다. 어디 많이 안 좋으시냐고 하는 것보다는 전보다 많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한다. 그러면 아주 반가워하며 환해진다. 어느 정도 자신의 건강상태는 알고 있지만 그냥 잘 지내면서 큰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얼버무린다. 그러면서 어딘가 자신감을 보이며 좋아하는 눈초리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말을 하면 많이 떨떠름해 할 것이다. 살짝 돌려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말하는 입장에서 눈치가 보인다. 환자나 연로하신 분에게 대뜸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걱정된다고 하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빈말이지만 그래도 관심 섞인 말로 안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거나 아부하는 말로만 여길 것이 아니다. 소위 하얀 거짓말인 셈이다.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그 분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잠시라도 위안이 되면서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당사자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마 좋으라고 하는 말이려니 하면서 싫지는 않아 곱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지금쯤은 말을 하자.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아주 잘 하고 있다고, 기대하는 바가 크고 관심이 많은 열렬한 팬으로 늘 지켜보고 있으며 응원한다고 말을 하자. 이렇게 직접 만날 수 있어 행운으로 즐거운 시간이며 행복하다고 말을 하자. 마음이 한결 산뜻하니 기분이 상쾌하다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더없는 영광이라고 말을 하자. 가능한 찡그리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좋은 말을 함으로써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너무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고 덕담수준으로 분수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초조하게 가슴을 조이지 않아 마음 건강에도 좋다.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서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보이는 대로 직설적으로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가 하면, 모르고도 아는 척하며 분위기를 맞춰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도가 지나치거나 맛들이면 부작용은 물론 자신도 거짓말에 익숙해져 좋지 않은 쪽으로 발전할 수 있어 염려된다. 그와 반대로 너무 고지식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어울려 함께 하기에는 다소 힘들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을 꺼내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때에 따라서는 사실에서 벗어난 거짓에 가까운 말이 오히려 좋은 말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약간 돌려서 말하거나 벗어나게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도움 되거나 위안이 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말 한마디 잘못했다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주는가 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며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하여 사내대장부가 한 번 내뱉은 말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고도 한다. 그만큼 믿음을 줄 수 있는 신용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쉽게 말을 하고 쉽게 저버려 거짓이 난무하여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