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느헤미야 4:9~14
52일에 죽음의 공포는 내 생명의 시간에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 시간동안 그들이 해야 하는 모든 일, 얻어야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52일과 같은 공포는 너무 가깝게 보이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의 도움과, 건져주심과 보호의 손이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의 공포로 인하여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5년 동안 예레미야 선지자가 끊임없이 외쳤지만 이스라엘 모든 민족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지 못했다.이스라엘의 마지막과, 재건과 중간기를 걸쳐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렘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25: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그럼에도 하나님은 돌이킴의 변화를 기대하셨고, 그럴 때를 대비하시며 하신 말씀
렘26: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렘26: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렘26: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생각과 같은 선택이 있었어야 했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하러 모인 이들의 마음은 닫혔고, 귀는 듣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송두리째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망함 뒤에 구원의 소식은 70년이 차면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70년 동안 돌아보고,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에스라 선지자를 통해 1차, 2차 귀환을 하게하시고 귀환한 그들의 1차적 업무는 무너진 성전 재건입니다. 3차 즉 마지막 귀환한 이들의 업무는 무너진 성벽 재건입니다. 이 임무를 완벽하게 실천했고, 무너지지 않는 성벽으로 완성하여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모든 일은 어느 한 개인의 기도와 열망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권으로 되어 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으로 바벨론 왕을 감동시켜서 하신 일이었는데요. 그 일을 행하고 있는 모든 인원들이 하나같이 동일하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여기서 한 가지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 있어도 내 삶의 외적, 내적 고난과 어려움은 항상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통하여 불가능하게 보이고,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일이 온전히 해결됨을 경험하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채워주심의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고난과 어려움을 언제나 당할 수 있고, 그 자리에 힘에 겹게 살아갈 수 있으나, 그때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연결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도우심으로, 건져주심으로, 빈손이 아닌 풍성함의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번 주에 말씀드린 1차, 2차 귀환해서 주어진 일을 행할 때 예측이 불가능했던 어려움을 당하면서 많은 시간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건져주심의 은혜로 20년 동안 열심을 다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성전 재건을 완수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 성벽이 무너진 채로 바사(페르시아)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기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 산 짐승들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채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문재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통해 3차 귀환하여 성벽 재건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52일의 죽음의 공포는 3차 귀환하여 성벽을 재건을 담당했던 모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들의 엄청난 열정과 헌신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그들은 52일 동안 체험하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기도 합니다.
3차 성벽 재건 시 방해 무리역시 사마리아 인입니다. 외적인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4:2 비웃음, 비아냥거림<참기 어려웠을 거예요.>, 압력, 음모<죽이려는 음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내적인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적의 대한 두려운 공포입니다. 적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웠고 언제 쳐들어와 죽이고 노략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둘째 그 땅에 흉년이 들어있어 매우 살기 어려운 삶의 현장이었고 셋째 느헤미야를 무너뜨리려고 산발랏의 뇌물을 받고 거짓 예언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여전히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환은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70년의 고통의 끝이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을, 성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상상했던 그런 삶의 환경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 모든 어려움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들어나고, 예수님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성전 재건축과 성벽 공사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둘째는 바사 왕이 귀환시켜줌의 조건이었고, 셋째는 성전 건축은 하나님께 예배함의 관계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벽 건축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과 번영을 위한 기초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전 재건축의 20년, 성벽 공사의 52일 걸렸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런 어려움의 연속인 상황에서 어떻게 완료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그들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둘째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14절
우리들은 이들과 같이 어려운 인생의 여정에 하나님의 약속이 펼쳐지게 하려면 이 두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놓고 언제나 어려움의 일들이 하나님과 내 자신이 가장 깊이 연결시켜주는 동력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도, 세상도, 세상의 권력자도 어찌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힘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믿음 생활이 그들과 동일하게 반복되어지는 그런 예측 불가능한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에스라 느헤미야를 따랐던 유대인들처럼 항상 기도합시다. 그것이 느헤미야가 말한 두려우신<애굽에 행하신 모든 일, 광야 40년의 시간에 행하신 모든 일, 가나안 점령에 행하신 모든 일입니다.> 이런 주를 기억하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기록하여 지금도 여전히 읽게 하신 이유입니다. 우린 두려움과 어려움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도 안에는 우리들이 구하는 모든 영적, 육적 필요가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이 끝까지 내 삶에 펼쳐지게 하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유지해야하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을 쉼 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가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항상 나타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는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