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필이면 왜, 내가? ♡
장애를 가졌거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들이 다 그렇듯, 내게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왜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지우셨는지 오래도록 고민하고 회의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중요한 질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아끼신다면서 어째서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몸져눕게 하시거나, 난치 또는 불치에 가까운 질병과 질환을 주시는가? 수많은 이들, 특히 아이들까지 고난을 받게 하시는가? 더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에 깊은 애정을 품고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처참한 교통사고나, 지진이나, 해일이나, 전쟁을 일으키셔서 무수한 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실 수가 있는가!
폭탄을 터뜨리고, 총질하고, 칼로 찌르고, 죽도록 두들겨 패는 따위의 서글픈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걸 두고 보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꼬마 때부터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것 같다. 누군가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답을 묻는 일도 많았다.
팔다리가 없는 덕에 신체장애가 있는 이들과 쉬 가까워지는 편인데, 열에 아홉은 이런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낭포성섬유증, 암, 전신 마비 같은 중증 질환을 앓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은 “하필이면 왜 내가?”라는 물음과 씨름하고 있었다. 더러는 스스로 찾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간신히 목숨만 건진 젊은이 제이슨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자가 정신을 잃는 바람에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뒤집히는 커다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제이슨은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네 군데나 뇌 손상을 입었다.
때마침 구급차가 가까운 곳을 지나고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구급대원들은 사고를 목격하고 급히 달려와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뇌가 부어오르고 있었으므로 곳곳에 박힌 머리뼈 조각들을 제거하는 응급수술을 받았다. 코마 상태가 두 주 동안이나 계속됐다. 간신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오른쪽 몸은 완전히 마비됐고 말을 하거나 냄새 맡기도 힘들었다. 1개월쯤 회복했을 무렵, 코가 내려앉고 빗장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 달을 더 병원에 갇혀 지내야 했다. 언어 기능은 회복됐지만, 오른쪽 반신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예전처럼 날 대해 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심했어요.” 제이슨은 말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때부터 사고와 부상을 바라보는 견해가 백팔십도 변했어요. 침상에 누워 있는 동안 줄곧 물었었죠. '왜 날까? 하고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 나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어요. '내가 아니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라고 질문하죠.” 제이슨은 그렇게 참담한 일을 겪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살려 주셨잖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주님을 어떻게 신뢰하지 않겠어요?”
동감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다치거나, 병들거나, 상실의 아픔을 주신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불행한 일들을 사용하셔서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고 믿을 따름이다. 하나님은 젊은이의 목숨을 건져 주시고 영적으로 강건해지게 하셨다. 제이슨은 이제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고통과 고난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지만 자비로우시며 권능이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더러 꼭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역경이나 차질 또는 그보다 더 심한 일들을 통해 주께 더 다가가게 하시는가 하면, 고난을 지켜보는 이들의 심령을 흔들어 깨우신다.
신실하고 경건한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어떻게 셈일까? 한 점 의구심도 남지 않도록 속 시원히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능력이 없다. 어떤 이들은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고비를 주셔서 겸손을 가르치신다고 풀이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복음 전도자로 널리 알려지면서 하나님이 몸에 가시를 주셨는데 이는 “내가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사도는 그 짐을 견뎌낼 만한 은혜도 함께 주셨음을 강조했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그대로였다.
훗날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5:4)
~닉 부이치치,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