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잊고 그냥 와버린 어머니 용돈
권다품(영철)
급하게 어머니의 인감이 필요했다.
부산 저축은행이 부도가 났단다.
면세가 된다기에 어머니 앞으로 5000만원 적금을 해 놨더니 이 지경이 벌어졌다.
가지급금으로 2000만원을 내준다기에 그것이라도 찾아야 겠다 싶어서 바쁜 가운데 급히 시골을 다녀와야만 했다.
학원을 하다보니 오전에 빨리 갔다와야만 오후 수업 시간에 지장이 없겠다 싶어서 괜히 마음이 바빴다.
출발 하기전에 미리 전화로 인감을 찾아놓으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연세를 드셔서 그런지 인감을 어디다 뒀는 지 모르겠다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도장을 새로 파서 인감 변경을 해야만 했다.
전에는 면소재지인 무안에도 도장을 파는 곳이 몇 곳 있었는데, 그분들은 다 돌아가셨는 지, 면사무소 공무원이 "요즘은 무안에는 도장파는 곳이 없습니다. 밀양까지 나가서 파와야 합니다."고 일러주었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왔다갔다 하며 도장을 파고, 인감증명을 떼고 하다보니 벌써 시간이 제법 흘러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고향까지 왔으니, 어머니 혼자 점심을 드시라고 하고 내려오기엔 서운해 하실 것 같아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출발을 했다.
어머니는 자식들만 만나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그동안 적적하셨던 마음들을 풀어놓으신다.
면사무소로 내려가면서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일인강 모렌강 동네 나이많은 사람들이 바다밑으로 길이 난데 놀러 간다카네. 새터는 전에 이장하던 그 양반이 책임지고, 우리 동네는 덕실아제가 책임지고 돈을 걷는다 카네."
"아~, 그럼 거제도다. 가보이소. 엄마 조합에 있는 돈 그거 아껴놨다가 뭐 할라꼬? 온 동네 사람 다 가는데 돈 아끼지 말고 다녀 오이소."
나는 또 돈 아낀다고 안 가실까 싶어서, 별 생각없이 그렇게 당부를 하고 내려왔다.
아침부터 바쁘게 설쳐서인 지 특별히 바쁜 것도 없으면서 수업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바빴다.
이튿날을 더 바빴다.
저축한 돈을 다 준다는 것도 아니고 2000만원이라도 준다고 하니, 혹시,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리면, 그마져도 못 찾을까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이자도 없는 쪼가리 돈 2000만원씩을 받아왔다.
저녁에 누나가 전화가 왔다.
"너거는 돈 받았나?"
"어, 받았다."
"여태 넣어둔 기간 이자가 아까바서 우리는 마 놔둬 본다. 누가 인수해도 그 돈이야 안 내주겠나 싶고.... 그런데 어야, 너거 어제 촌에 갔을 때 엄마 놀러간다 안 카더나?"
"거제도 가신다 카데."
"아이구, 그라마 엄마 놀러 가시는데 용돈이라도 좀 드리고 올 꺼 아이가? 마음이 바빠서 잊아뿟더나?"
'아차' 싶었다.
"아, 그렇네! 오종이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마음이 급해가지고 마 잊아뿟네! 흐흐흐, 할마이 돈 달라 소리는 못하고 디기 섭섭했겠거마는. 딸내미한테 전화한 거 보마. 할마이 뭐라 카시던가배?"
"섭섭하기야 안 섭섭했겠나? 아들이 와서 점심만 사주고 그냥 가뿠으이끼네. 그런데 야, 동네 할매들은 그것도 모르고, '아이구 각골댁이는 좋겠다. 엄마 놀로 간다꼬 아들이 용돈 줄라꼬 왔지요.' 이라더라 안카나! 하하하....."
"흐흐흐..... 그래서 엄마는 뭐라 캤는공?"
"보골은 나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래 카이끼네 보골은 몬 내겠
고 그렇더라 안 카나. 하하하......"
마음이 바쁘다보니 미쳐 생각을 못 했다.
용돈도 드리고 동네 노인분들 목이라도 축이시라고 음료수값이라도 좀 드리고 왔어야 했는데......
물론 우리 어머니의 통장에는 돈이 충분히 있다.
그래도 많이 부끄러웠다.
"각골댁이 오늘 한 잔 사소. 아들이 엄마 놀러간다꼬 용돈줄라꼬 일주러 올라왔지요? 얼마나 좋노!"
어머니의 기분이 어땠을까?
아들 칭찬을 하니까 기분은 좋은데,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기분이 참 묘했을 것 같다.
물론 어머니 통장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끼지 않고 써도 충분히 남을 만큼의 돈이 들어있다.
그러나 "내일 여행간다."는 말을 하면 아들이 용돈을 좀 줄 줄 알았는데, 용돈도 한 푼 안 드렸으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또, 우리 어머니 성격에는 '요새 학원이 잘 안 되는강' 하는 걱정도 하셨으리라.
자식들이 부모 마음을 안다고는 하지만, 아마 다 짚얻.리지는 못 하는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 칭찬에 억지로 웃어야 했던 그 묘한 기분이 어땠을까?
엄마 미안합니데이.
다음에는 안 잊아뿌께요.
2011 년 3월 24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