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안의면 "연암 물레방아 공원". 물레방아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청나라 베이징을 다녀온 후 중국의 문물을 보고 쓴 "열하일기"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후 1792년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용추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국내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 동양의 바이올린 해금 : 조선시대 정조때 실학자 유득공은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일했던 인물로 연암 박지원(조선 후기 실학자로 청나라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의 영수로 실학을 강조함, 저서로는 "열하일기", "허생전"등이 있다)의 제자가 되어 실사구시를 주장하였으며 "발해고"를 썼던 시대를 앞서 간 역사가이기도 하다. 어느날 저잣거리를 지나다 평소 그가 좋아하는 해금소리를 듣고 당대 최고의 해금 연주자인 "유우춘"을 찾아가서 해금 연주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유우춘은 당시 군대 군악대원으로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음악가가 되었던 사람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 뒤로 길게 이어져 유득공은 훗날 자신의 문집 "영재집"에 "유우춘전"이라는 제목의 일대기를 쓰기도 했다. 당시 해금은 저잣거리 비렁뱅이(거지)들이 밥을 구걸하기 위해 연주했던 악기로 양반들은 "비렁뱅이 깽깽이"라고 천대했다고 하며, 서양의 바이올린 역시 집시들이 악기였었다. 해금이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유득공 덕분이었다. 해금은 원래 몽골 지방에 살던 "해"라는 부족이 사용하던 악기였다. 해 부족은 돌궐과 같은 유목민으로 게르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악기도 살림살이에 맞게 작아졌다고 한다. 해금은 두 개의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지만, 국악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여덟 가지 재료 즉, 8음(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이 다 들어가는 유일한 악기이다.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에는 세상에 있는 8음으로 만든 악기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세종대왕은 밤잠을 설치며 연구한 결과 총 26곡의 종묘제례악을 완성하였다.
물레방앗간 주인이 기백산을 바라보고 있다.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 동상.
물레방아공원 정자 사암정(思巖亭).
물레방아의 발원지 안심마을(함양 안의면 신안리).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