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에는 차례가 없다?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1990년 9월쯤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모 일간 신문에 추석(秋夕) 특집기사가 실렸는데 각 종교별 차례의식(茶禮儀式)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내려가던 내 눈이 점점 일그러졌다. 제사의식은 유교가 발달했으리라 생각하는 이가 많았음인지 유교의 차례의식을 제일 먼저 소개하였고, 다음엔 기독교의 그것을 설명하였는데 계속 더 읽어보아도 불교의 차례는 아예 언급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한국역사의 삼분의 일이 불교 그 자체의 역사인데, 그리고 국교가 되어 민중의 역사를 이끈 햇수가 천년이 넘는데 차례의식이 소개되지 않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신문사 아니면 그 기자에게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져 물었더니 자료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는 거였다. 자신 있게 그러마고 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정말로(?) 없었다.
불교에는 차례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거야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천육백년이 길다고, 의미 있다고 모두들 이야기했지만 없는 것이 비단 차례에만 그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왔다. 그래서, 내가 꼭 찾아양 하고 찾아도 없다면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2. 차례의 효시 - 충담스님의 헌다
제일 먼저 국어사전을 펼쳤더니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 보름, 또는 그 밖에 명절이나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간단한 낮제사' 라는 말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령의〈문장백과대사전〉을 뒤졌더니 삼국유사 표훈대덕조(三國遺事表訓大德條) 에 충담(忠談) 스님이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을 소개하고 있었다. 경덕왕이 즉위한 지 24년(765년)되던 해 삼짓날 귀정문에 올랐다가 나랏일 걱정에 훌륭한 스님의 고견을 듣고자 거듭 청해 모신 스님이 충담스님이었다. 충담스님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차 끓이는 도구와 차를 가지고 있었다. 차를 끓이며 그는 매년 삼짓날과 중굿날에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님께 차를 끓여 올리는데 지금도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 했다. 차를 마신 뒤 '찬기파랑가'라는 향가(鄕歌)의 저자인 그에게 요청해서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어미라/ 백성을 어린아이라 여기니/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는 태평하리." 라는 내용의 '안민가(安民歌)'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뒤 다른 자료에도 충담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다도(茶道)' 또는 재주 예자를 써서 '다예(茶藝)의 효시'라고만 했지, 예도 예자를 쓴 '차례(茶禮)'에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께 차와 향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예불(禮佛)이라 하는 것처럼 충담스님의 그것도 차례라고 불러야 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차례의 효시는 충담스님의 미륵부처님께 올린 차례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명절에 지낸 차례도 결국 그 뿌리가 불교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 큰스님들의 탄신일에 지내는 제사를 다례(茶禮)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유교의 제사에도 차를 쓰는 것이 바른 예법이라는 것도 보였다. 특히 4월8일 스님중의 큰스님이신 석가모닌 부처님 오신날 차를 올린다는 기록이 선원(禪院)의 청규를 담은 백장(百丈禪師: 720-814) 청규(淸規)권2 불 강탄조(佛降誕條)에 향화 등촉과 다과 진수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유교 예법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주자(朱子: 1130-1200)가 차와 관련이 있는 고장에서 생활했고 뒷날 명나라의 구준(丘濬)이 편집한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차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 나라 유가의 다례는 주자보다 2백여년 앞선 최승로(926-989)의 상례 때 뇌원차와 대차를 왕이 내린 것에서 훨씬 빨리 성립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었고, 신식(申湜: 1551-1623)의〈가례언해(家禮諺解)〉에 정월, 동지 삭망(초하루와 보름)에 차례 지내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보았다.
이제는 불교에 차례가 있다는 것을 뛰어 넘어 오히려 모든 차례 의식의 뿌리가 불교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숨을 고르게 되었고 뿌듯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례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차는 어디로 가고 술만 쓰고, 차례의 종가인 불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앟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고민되었다.
3. 차례에 술 또는 물을 쓰게 된 연유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의 차례는 충담스님의 헌다 이지만 그 이전에도 가락국 김수로왕의 17대손 갱세급간이 가락국 종묘에 차례 지낸 이야기가 나오고, 문무왕의 아들인 보질도(寶叱徒)와 효명(孝明)이 오대산에서 날마다 산골짜기의 물로 차를 달여 1만의 문수보살에 공양한 이야기도 있다. 또 중국에서는 송 문제(文帝) 3년(426) 유경숙의〈이원(異苑)〉에 차례 지낸 내용이 나온다. 한편, 국교가 불교인 고려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 사신 영접, 왕자(녀)와 태후 등의 서임과 공주의 결혼식, 원자 탄생, 중형벌자 판결을 위한 문답의식에도 차례를 지냈을 정도로 차가 성행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조오례의〉등의 기록에 의하면 종묘제례와 중국, 일본의 사신에 대한 다례 등 빈례(賓禮)에 차를 사용한 것이 나오므로 차례는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제 차의 사용이 줄게 되었을까?
이를 알아낸 동기를 잠깐 밝히고자 한다. 90년도의 신문사건 이후에 불교의 차례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차례의 유례, 의미, 차례의 보편화 그 문화적 근거, 불교인 가정의 차례를 내용으로 한 자료를 언론매체에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갈수록 관심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림(사진)을 제공하기 위해 제1회 불교차례의식 시연회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보도자료를 만들어 띄웠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불교방송국 '무명을 밝히고' 라는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 출연하게 되었는데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통 차인도 아니요, 전문 연구가도 아니며, 불교의식에 능한 태고종 소속이면서도 염불에는 재능이 모자란 탓에 빈 곳이 너무 많은 것이다. 아니 빈 곳이 많은 게 아니라 찬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헌다의식에는 꼭 뚜껑 있는 찻잔을 썼다고 한 마디 하더니 나가 버렸다. 얼른 쫓아가서 물었더니 차인으로 유명한 용운스님의 제자인데 자세한 것은 스님께 여쭈라며 전화기를 건네줬다. 스님은 바쁘신 중에서도 차에 관한 백과사전(?)을 풀어놓으셨다. 그야말로 차 감로법문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 날 방송 시간에 10분가량 늦어서 다른 순서 먼저 진행하고서야 내 이야기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방송을 들은 이들은 법현이가 유식한 것으로 알았겠지만 사실은 선조사 스님들과 용운스님, 그리고 태고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승려사학자 운제스님, 의식에 밝으신 운곡스님 등의 등불 밑에서 법현이라는 반딧불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음을 이제라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용운스님과의 전화통화에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가 바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피폐해지고 특히 임란 때 차 도자기 굽는 도공들을 다 끌어갔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해서 영조(英祖)임금이 왕명으로 '귀하고 비싼 차 대신 술이나 뜨거운 물 즉 숭늉'을 대신 쓸 것을 지시한 후부터 차례에 술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막연하게 유고가 들어온 고려말부터 술이 제사상에 오르면서 조선시대에 완전히 주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차례에 차가 빠지고 대신 술이 쓰이게 된 것은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영조 때부터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제반의식을 편집해 놓은 석문의범(釋門儀範)의 모본이라 할 수 있는 백파(白坡: 1767-1852)스님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 천도의식 전에 영가를 부르는 의식인 대령 진행방법을 담은 대령정의(對靈正儀)편 가운데 다게(茶偈)에 "내 이제 청정수를 감로차로 삼아서 증명(證明)님께 올리오니 원컨데 가엾게 여겨 받아주소서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證明前 願垂哀納受)" 하는 내용이 실리게 된다. 차를 쓰지 말라 한 왕명을 지키되 부처님께 최고의 공양물인 향기로운 차를 맑은 물로 대신 하려는 스님의 심정이 '감로차로 삼아서' 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소례를 대례로 알고 받아 달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와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명은 죽은 이의 영혼을 아미타부처님께 인도하는 대성인로왕보살(大聖引路王菩薩)을 말하는 말로 주로 지장보살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만 관세음보살 등 다른 보살도 그 역할이 가능하다. 이 다게는 오늘날 아침예불에 전승되고 있으나 근래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이어 받지는 못했지만 주류로서 다수를 접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아침 저녁 예불을 오분향례로 단순화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늘상 부처님께 올리는 횟수 많은 예불에는 청정수를 올리고 나머지는 차를 썼음이 다른 모든 의식문제에 차를 올리는 내용을 보아 알 수 있다. 작법귀감의 다게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국혼청에도 법주가 차를 올리고 삼배드리는 예식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차례가 성행했으나 경제적 이유와 함께 의식의 엄숙함이 복잡함으로 인식된 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조상의 제사를 절에서 지낼 때도 스님이 어려운 내용을 대신 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기존의 제례문(상용영반, 관음시식, 화엄시식, 종사영반 등)을 가지고 추석과 설 명절 차례도 지냈기 때문에 불교에는 차례의식이 없는 듯이 여겨진 것이다. 또 가정의 차례에는 이름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대신 술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고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써 일반인의 뇌리 속에 차 없는 차례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국화 없는 국화빵이요, 붕어 없는 붕어빵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균관에 있는 어느 어르신은 차례의 의미는 간단한 낮제사이기 때문에 버금 차(次)을 써야 하고, 차(茶)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4. 앞으로의 차례
우리 선조들은 차를 대단히 귀하게 여겨서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에도 차를 썼다. 며느리의 솜씨로 직접 달인 차를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말이 없는 조상대신에 그 차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나눠 마시는 것을 고묘(古廟) 또는 묘견례(廟見禮)에서의 회음(會飮)이라 했다.
따라서, 5천년 역사와 문화민족임을 자랑해온 우리가 차례에서 차를 빼서는 안 된다. 반드시 차를 써야 한다. 단, 모든 것이 민주적인 현대사회에서 가족 구성원 중 어느 개인의 의견대로만 해서는 안되므로 회의를 통해 의견을 일치해서 차를 꼭 쓰도록 했으면 한다. 요즘은 누구나 차를 가지고 있는 시대이며, 제사에 쓰는 술 종류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차의 사용은 이제 설득력을 얻기가 쉬울 것 같다. 불교, 비 불교인을 떠나서 전 국민이 차를 써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자라면 불교의식으로 차례를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 차례의식을 편성해서 보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찰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든 불공, 시식 등의 의례문을 살펴보면 불경의 핵심사상과 선조사스님의 경책말씀 그리고 진언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을 알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좋고 그야말로 깨달음의 소식을 접할 수 있을 텐데도 현재는 진행하는 스님도, 따라 가는 신도도 다같이 내용을 모르고 있어서 답답한 현실이다. 그래서, 제사 때 쓰는 시식(施食)을 기본으로 하되 우선은 스님이 없어도 불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글로 하고, 그 길이를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공양진언은 보통 불, 보살님 등에게 공양 올릴 때 쓰는 것이나 상용영반에도 그 보기가 나오고 조상님의 영가가 업식(業識)을 밝혀서 불보살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라고 감히 보공양진언을 썼다. 참고 삼아 필자가 이번에 새로 구성한 불교차례의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차례의식(상차림을 하고 차를 올린 뒤에 거행한다.)
1) 미타거불(彌陀擧佛):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
나무극락도사 아미타불 (큰절)
나무좌보처 관세음보살 (큰절)
나무우보처 대세지보살 (킅절)
2) 다게(茶偈): 차를 올리는 시
시방삼세 부처님과 청정미묘하신 법과 삼승사과의 해탈얻으신 승가에 공양하오 니 자비를 베푸사 감응하여 주옵소서
3) 청혼(請魂): 조상님 영가를 모시는 의식
금일 고조, 증조 할아버님과 할머님 영가시여 저희들이 모시는 추석(설) 차례에 강림하시어 감응하여 주시옵소서 (찻 잔을 올리고 재자들 모두 큰 절 2배)
4) 공양: 공양을 올리는 의식
저희 자손들이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5분향을 공양하오니 자성의 대지혜 를 발하고 반야의 밝은 등을 켜서 3계의 어둠을 밝히사이다.
(절을 올리고) 조주스님의 맑은 차를 드리오니 목마름이 아주 없어지이다.
(과일을 올리고) 선계의 진품과일을 올리오니 맛보아 조소서
(공양을 올리고) 진수를 올리오니 허기가 영훤히 없어지이다.
오늘 조상님 영가께 올린 모든 진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요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올린것이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5) 보공양진언: 조상님과 다른 영가께 모두 공양되오록 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
6) 보회향진언: 마무리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마하 자가라바 훔 (3)
7) 발원: 원을 세우고 조상님에 대한 추모의 생각을 키움
오늘 저희들이 올린 동양을 받으시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으시어 아미타부처님 의 국토인 극락세계에 태어나시고 저희 후손들이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올바른 삶을 영위하여 깨달음을 얻는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10념) (큰절 2배후 헌식하고 그릇의 뚜껑을 닫고 위패를 사른다.)
불교를 믿지 않는 분들도 지금 가정에서 지내는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되 술 대신 차를 쓰거나, 술을 쓰더라도 먼저 차를 달여 올린 다음에 술을 쓰는 것이 전통 예법임을 알았으면 한다.
모든 가정에서 차례에 차를 쓰고 차를 많이 마셔 여유 있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시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 라 불렸던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의 '엄스님을 참방함(訪嚴師)' 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내 지금 산사(山寺)를 찾아 온 것은
술을 마시고자 함이 아니오
올 때마다 술자리 베푸시니
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스님의 인품 높음은
오직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 때문이오.
용정(龍井)의 차 잎 따다가
혜산(惠山)의 물로 달인 차가 제맛이지요.
차 한 잔에 이야기 한 마디
점점 심오한 경지에 들어가네
이 즐거움 참으로 청담하니
굳이 술에 취할 일 아니라오."
*이 자료중 물을 쓰게 된 이유와 자료가 확실하지 않아 연구중임.
누구 아는 이 있으면 지도 바람.
우리 정신 사에 중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