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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42km를 흘러온 마인강이 라인강에 합류하는 서안(西岸)에 있는
강변도시 마인츠는 독일 서부에 있는 라인란트팔츠 주의 주도(主都)이다. 지리적으로 라인
강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가 되었으며, 활판 인쇄술을 발명했던 구텐베르크의 출생지로 인쇄
술이 발달하였다.
마인츠 대성당(Mainzer Dom) 한국어 위키백과: 마인츠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Mainzer Dom 또는 Martinsdom, 정식 명칭: Der Hohe Dom zu Mainz)은
975년 건축되기 시작하여 1239년에 완성되었기에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양식 등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졌다. 쾰른 대성당, 트리어 대성당과 함께 독일 3대 성당 중 하
나다. 14세기에는 마인츠 대주교들이 신성로마 제국의 재상과 선제후가 되었다.
마인츠 성당 정원의 회랑(回廊)에는 옛 마인츠 성당의 구조물과 장식물들이 보관되고 있어
오래된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종교 개혁 시기 중요한 무대였던 슈파이어(Speyer) 홈피:www.speyer.de 위키백과:슈파이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라인 강 서쪽 연안에 있는 슈파이어(Speyer)는
기원전 100년에 도시가 형성되었기에 금년(2015년)이 도시 창설 2025년이 된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알프스 산맥 북쪽의 중요한 교역·군사 중심지였으나, 5세기 훈족, 반달족 등의 침
입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7세기에 주교령(主敎領)이 되어 발전했으며 10세기엔 유명한 슈
파이어 대성당이 건축되었고, 1294년 제국 자유 도시가 되어 일대를 장악했다.
주교령(主敎領) = 주교의 영토(땅) 참고 링크: 주교, 대주교, (대)주교령
국왕령(국왕의 땅)의 지방행정을 맡은 사람을 그라프(독일어: Graf / Gräfin, 伯=伯爵 백작)
라 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이들 봉건 제후들이 국왕령을 세습하면서 국왕의 지배권에 복
종하지 않고 자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왕은 국왕령을 주교에 맡기곤
했다. 주교는 독신이 원칙이라 죽으면 그만이고 새 주교가 임명될 때 왕이 임명권을 행사해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국왕에 의한 중앙집권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주교의 세속 권력이
차츰 폐지되었으나 독일에서는 신성로마제국황제가 선거제로 된 탓도 있어 제후와 주교들
은 나중에는 독립국의 군주처럼 되었다. 이것이 독일의 독특한 주교령, 대주교령이다. 예
를들면, 트리어 대주교령, 마인츠 대주교령, 보름스 주교령, 뮌스터 주교령 등이 있다.
슈퍼카이저돔(Kaiserdom zu Speyer) 위키백과: 슈파이어 대성당
크고 웅장한 슈파이어 카이저 돔(Kaiserdom) |
이 성당은 1030년 황제 콘라트 2세의 명령으로 기공되어 1060년 하인리히 4세에 의해 헌
당된 독일 로마네스크 건축을 대표하는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신성 로마 제국시절의 황제들
이 안장되어 있어 슈파이어 카이저돔 (Kaiserdom zu Speyer) 또는 슈파이어 돔 (Speyer
Dom)으로 불린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일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작을 알리는 이 대성당은 폭 30m, 길이 133m에 이르며, 높이가
72m나 되는 탑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 예술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며, 이 건물은 크기로도
최대 규모이며, 독일 왕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Basilica(바실리카)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Basilica(링크:바실리카)양식이란, 중앙의 신랑(身廊) 좌우에 기둥이 늘어선 列柱(열주)가 있고
그 양측에 측랑(側廊)을 갖춘 삼랑식(三廊式)으로 기둥 사이는 아치(Arch) 구조로 짜여져 있
다. 건물 바닥은 T자 형태 또는 세로가 긴 십자가 형태의 직사각형 건축 형식이다. 중세 이
전의 좀 오래된 성당은 이런 Basilica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후 기적이 나타났다거나 종교
적, 역사적 중요성 등 존경의 대상이 되는 성당에 Basilica(大聖殿)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마네스크 양식(링크: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의 내부는 삼랑식에다 직사각형 바닥을 가진 바
실리카 양식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익랑(翼廊)을 양쪽으로 달아내어 십자가 형태를 보인다.
내부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흔하며 창이 작아 실내가 어둡다. 뼈대(rib) 없는 천장에다 두꺼
운 벽과 벽받이(buttress)가 있으며, 반원형 아치(Arch)가 특징이다.
카를 5세와 신성로마제국 위키백과 참조: 카를 5세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카를 5세의 치세(治世) 영역(1547년의 합스부르크 속령)
카를 5세(독: Karl V, 1500년~1558년)는 어린 나이인 1519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었는데, 1516년부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스페인어: Carlos I)이기도 했다. 중유럽과
서유럽, 남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의 카스티야 식민지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의 영토가 너무나 커 그의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곳’이
라고 불렸다.
카를 5세는 이탈리아, 프랑스와의 전쟁(링크:이탈리아 전쟁) 외에도, 유럽을 압박하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1세(링크:쉴레이만 1세 [Suleyman I])와 끊임없이 싸웠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지중해 연안에서 급속히 힘을 키워, 합스부르크 영토와 기독교인이 독점한
지중해 무역을 위협하고 있었다. 결국 카를 5세는 오스만과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하였다.
이슬람교가 진격할수록 가톨릭교회의 힘은 견제를 받았으며, 용맹했던 헝가리군도 1526년
모하치 전투(링크:모하치 전투 [Battle of Mohács])에서 패전하면서 全 유럽에 이슬람의 공포가
잔뜩 드리워지게 되었다.
한편 독일에는 1524~1525년 사이 농민전쟁(링크:독일 농민전쟁 [German Peasants' War])이 일
어났으며 1531년에는 개신교도들의 슈말칼덴 동맹(링크:슈말칼덴 동맹 [Schmalkaldischer Bund])
이 형성되었다. 1529년 2월 21일 독일 슈파이어국회에서 루터계 제후(諸侯)와 도시들이 황
제 카를 5세 등 로마 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하므로 써 protestant(항의하는 자 = 신교
도)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참조 두산백과: 프로테스탄트교회 [Protestant Church, ─敎會])
결국 카를 5세는 1555년 개신교를 인정하는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맺게 되었는데, 그 결
과 독일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존을 인정하게 되었고, 한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제후
의 종교가 루터교인가, 가톨릭인가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가 결정되는 지역별 종교의 자유
(cuius regio, eius religio)의 원칙이 체결되었다.
(참조: 위키백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카를 5세는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점점 강해지는 오스만 투르크 및 프랑스의 압력, 교황의
적개심에 맞서서 그의 제국을 단결시키려고 애썼지만, 마침내 굴복해 스페인을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결국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카를 5세의 가톨릭에 의한 유
럽 재통합 세계정책은 실패하였다.
로마 제국 ‘갈리아’의 중심이었던 트리어(Trier) 홈피:www.trier.de , Daum백과:트리어 [Trier]
고대 로마시대엔 갈리아(갈리아 [Gaul])의 중심이었고 신성로마제국시대엔 가톨릭의 중심지였
던 트리어(Trier)는 룩셈부르크(Luxemburg)와 맞닿아 있는 독일 서쪽 국경도시이다. 모젤강
의 서안에 위치하며 기원전 15년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어 알프스
이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프랑크족과 아라만족이 파괴한 트리어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세웠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치세 당시 지어진 로마 제국의 다리, 목욕탕, 원형극장 등 많은 유적이 보존
되어 있으며, 로마 城門이었던 검은 문(Porta Nigra)과 트리어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참고로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
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밀라노 칙령 [Edict of Milan]).
위풍당당한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 위키백과: 트리어 대성당
로마 시대 성문(城門)인 검은 문(Porta Nigra) |
위엄이 넘치는 트리어 대성당 |
과거 트리어 대주교는 신성로마황제를 뽑는 선제후(選帝侯) 선출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으며, 오늘날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Hohe Domkirche St. Peter zu Trier)
은 쾰른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과 더불어 독일의 3대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 성
당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이탈리아 토리노와 더불어 예수의 성의(The Holy Tunic) 가 보
관되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리어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당(Liebfrauenkirche)은 1260년 완공된 고딕 양
식의 교회로 좌우 대칭의 균형미가 멋지며,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며 신비감이 든
다. 31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자신의 어머니 헬레나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한다.
신성로마황제를 선출하는 권리를 가진 선제후(選帝侯) 참고: 위키백과: 선제후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독일 왕권을 둘러싸고 내전이 격화되는 것을 염려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라인 강 유역의 네 명의 선제후들, 즉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라인 궁중백의 동의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정하였다. 1257년부터는 앞의 네 명과
작센 공,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까지 합쳐 총 여섯 명이 선제후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289년
에는 보헤미아 국왕까지 더해져 총 일곱 명이 되었다. 선제후에 의한 황제 선거는 1198년
부터 1806년까지 행해졌는데, 1356년 금인칙서(金印勅書)를 통해 성문화(成文化)되었다.
(참고: 금인칙서 [Golden Bull of Emperor Charles IV])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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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계사니 역사니 골치 아픈 연도 외우기 싫어해 관심 밖이었지만..
이제 독일이란 나라를 살펴보니.. 온 사방팔방이 다른 나라에 둘러쌓여있어..정말 골치 아팠겠어요.
그러하니 국민성이 강해질 수밖에..^^
독일언어 발음도 강하게..트..크..츠..흐ㅎㅎ
이히 리베 디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