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비록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한 아이의 출생이 과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저출산 시대인 요즘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을 주민 전체가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다들 아이 얼굴 구경하러 가고, 마을 입구에는 축하 플래카드까지 내걸립니다. 사실 이게 정상인데, 그동안 우리는 비정상이 정상이 시대를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결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결혼식이 거행되고, 주님 안에 한 커플이 탄생하는 것이 엄청난 일로 여겨집니다.
요즘 우리 모두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결혼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혼인이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고, 두 가문이 만나고, 두 가치관과 두 세상이 만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살아왔는데, 이제는 함께 걸어줄 동반자가 생긴 것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 평생 동지가 생겼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토록 기쁨 충만한 혼인 잔칫날에 어두운 표정으로 인상 쓰고 있다면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잘 차려진 축하연에 단식한다며 숟가락조차 들지 않고 우울하게 앉아있다면 그것보다 더 꼴불견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가장 기본적인 분위기는 축제입니다.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기고 만끽하는 것은 혼인 당사자 입장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딱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우리를 위해,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해 세상 멋진 신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은 그분과 이 세상, 그분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 그분과 우리 죄인의 혼인을 의미하는 대 사건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매일 새롭게 결합되고 한 몸이 됩니다. 매일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과 우리 사이의 혼인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주님과 혼인한 우리는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그 혼인을 갱신한다니, 이 보다 더 큰 은총과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따라서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하루는 매일이 기쁨 충만한 축제여야 마땅합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이 지상 순례 여정이 비록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매일 주님과 혼인하고, 그 혼인을 갱신하는 우리들이니, 얼굴을 활짝 펴고,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축제를 만끽해야 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9,14-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유다인들에게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은 스승의 영향을 받아 자주 단식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별로 단식하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14절) 묻는다. 예수께서는 결혼식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다. 그들의 결혼은 집에 있으면서 일주일 동안 가까운 친지들을 불러 기쁨의 축제를 지냈다. 이때에는 모든 율법의 의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즐길 수 있었다. 그때에는 단식의 의무에서도 해방된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신랑에, 제자들은 신랑의 친한 친구들로 비유하신다. 그러한 잔치에서 슬퍼하며 단식할 수 없다. 그때는 단식할 때가 아니고 즐기는 때이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을 빼앗기고 슬퍼하는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도 신랑을 빼앗기고 난 후 단식을 하게 된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돌아가시고 영광을 입으시고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시고 나서 제자들은 단식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잔치이다. 주님과 함께 있는데 슬픔과 어두움이 있을 수 없다. 주님을 모시고 항상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하며, 내 잘못으로 주님을 모시지 못했을 때는 우리는 기도하고 단식하며 자선을 베풂으로써, 주님을 다시 모셔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율법에 매인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16-17절). 수축이 강한 새 천을 찢어서 헌 옷을 깁는 사람도 없지만, 새 포도주도 발효가 심하므로 수축 작용이 거의 없는 가죽 부대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려면, 지금까지의 고정화된 나 자신의 틀인, 헌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를 버려야 한다. 내 마음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두 복음을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매일 자정이 되면 누군가 당신에게 24만 원씩 꼬박꼬박 입금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매시간 1만 원씩 어떤 주식이든 사야 합니다.
둘째, 같은 종목에 반복해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단, 1시간에 1만 원씩만 투자할 수 있으며, 1시간이 지나면 1만 원은 소진됩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면 24만 원이 모두 소진됩니다.
넷째, 받은 돈은 모아둘 수 없습니다.
다섯째, 자정에 다시 24만 원이 입금되면 매시간 1만 원씩의 투자를 반복합니다.
실제로 꼬박꼬박 24만 원씩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 이야기입니다. 매일 현실 속에서 주어지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잠자는 주식에, 누구는 글 쓰는 주식에, 누구는 기도하는 주식에, 누구는 공부하는 주식에, 또 운동하는 주식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투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래를 위한 나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 과연 투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모습을 취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순간의 재미만을 위해 스마트폰, 유튜브, 게임 등에 집중하고 있다면 좋은 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 대한 험담과 같은 뒷담화는 또 어떨까요? 역시 좋은 투자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면 이 역시 좋은 투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미래를 위해 매일 받는 24시간으로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가 열렸고 신랑이 잔칫상에 함께 있는데, 어떻게 단식하느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모습이 당시 바리사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식만 하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의 모습을 보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가득 담아낼 수 있는 잔칫상의 새 부대가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삶을 과거에 연연하면서 낭비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진정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런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에 있어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빅토르 위고).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 9,14)
시샘으로
사람들은
영혼의 길을 잃게 된다네.
시샘으로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스승인
그리스도를 미워하였고
시샘으로
요한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미워하였네.
시샘으로
사람들은 한 번에
영혼의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매일 묵상 단톡방)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나는 내 백성의 운명을 되돌려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9,11-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1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12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 이 일을 하실 주님의 말씀이다. ─
13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밭 가는 이를 거두는 이가 따르고
포도 밟는 이를 씨 뿌리는 이가 따르리라.
산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
14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리니
그들은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곳에 살면서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고
과수원을 만들어 과일을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니
그들은 내가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으리라.”
─ 주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