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고백한 후에도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에 영원히 구원에서 끊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다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고 베드로는 이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와 똑같이 가룟 유다에게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예 예수를 팔아 넘겼습니다.
그에게도 예수께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중에 나와 함께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께서 주신 구원의 기회를 거부하였습니다.
결국은 자살했습니다.
만약에 자살까지 가지 않았다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같은 죽음이라도 베드로는 순교했고 가룟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극명한 차이는 무엇입니까?
대적자 앞에 끌려가 재판을 받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마땅한 말을 그때 그때 성령께서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신실하게 믿었으면 축복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적대자들 앞에서 고초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직하고 신실하고 법을 지키고 세금도 성실히 납부하고 살면
사업이 잘되고 이익이 배가되어 큰 돈을 모아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부도위기에 몰렸고 납품대금은 부실자산이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노동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얼마나 참아왔는데,
결과는 세상의 실패로 나왔습니다.
이토록 성도 앞에 어려움과 환난이 닥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으로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세상 일을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와 같은 성품으로 변화시켜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수억 배 이상 큰 천국의 기쁨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의 진리와 지혜를 더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미리 천국을 맛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천국에서의 찬란함과 황홀함에 충격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남았을 그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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