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모의(謀議)와 포섭공작 반정모의(反正謀議) 계해년(癸亥年=光海 十五年) 정월 초, 모악재 너머 서진관사(西津寬寺)에 는 하루의 정초놀이로 절밥이나 사먹자고 모인 듯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 다. 진관사 구내에는 여남은 채의 집이 있었다. 명색은 여염집이었지마는 기 실은 모두 진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절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먹는 집들 이다. 세 사람은 그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외딴집을 찾아서 들었다. 이 세 사람은 이괄(李适), 장유(張維), 최명길(崔鳴吉)이었다. 이괄은 그때 북병사(北兵使)의 인수를 받고도 병을 청탁하고, 부임하지 않 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차일피일하고 부임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당시 왕 실의 부패가 극도에 달하여, 상처로 말하면 고름이 잔뜩 들어서 침 한대만 주면 고름이 주르르 쏟아질 듯한 형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우한 지사(志士)와 강개비분하는 의사(義士)들과 사귀며 장차 큰일 을 꾸밀 생각을 했다. 그가 이렇게 해서 교분을 맺게 된 것이 전판서 장운 익의 아들 형제 장유와 장신(張紳)과 원두표(元斗杓)를 비롯하여 최명길, 이귀의 아들 이시백, 조익(趙翼) 등의 젊은 또는 장년(壯年)의 사람들이었 다. 이날 이괄은 최명길, 장유와 무슨 비밀히 의논을 할 생각으로 일부러 조용 한 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안주인이 술상을 차려놓고 나가자 세 사람은 우선 술 한잔씩을 따라 마시 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괄이 먼저 이렇게 말을 끄집어 냈다. "무슨 일이건 시기와 모사(謀事)가 들어맞아야만 성사가 되는 법인데 인제 시기는 되었다고 볼 수 있고, 동지도 그만하면 어지간히 손이 맞을 만큼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누구를 위에 추대하느냐 하는 것하고 또 하 나는 성(城) 안에서 내응해 주는 유력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 유력한 내응자란 병권을 잡은 사람이라야 더욱 좋겠네." 최명길이가 이렇게 말을 보탠다. "병권을 가진 사람의 내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외 호응의 효과를 거두 자는 것이지만 반드시 군병을 합류시켜 주지 않더라도 동병(動兵)만 맡아 주면 되는 거야. 중립만 해주면 된다는 거야." 이괄은 자신이 만만한 설명을 하였다. "병권을 가졌다면 누가 제일 유력하겠소?" 장유의 질문이다. "그건 뻔한 일이 아닌가. 오늘 특히 장공을 청한 것두 그것 때문인데 제일 합당한 인물은 장공의 사돈 영감되는 이대장(李大將)이지." 이대장이란 포도대장 이흥립(李興立)을 말하는 것이다. 장유는 더 말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 군사는?" 최명길이 또 묻는 말이다. "우리에겐 장단(長端) 부사 이서(李曙)의 군사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 될까?" "무슨 소리, 지휘만 잘하면 쓰고도 남지. 지금 구굉(具宏)을 몰래 장단으 로 보내 둔 것도 이서를 도와서 군사를 증모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장단부사 이서는 이괄 등과 벌써부터 기맥을 통해 가지고 천여명 군 졸을 기르고 있었다. 이괄은 그보다도 이흥립 이대장을 설득시켜야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대장을 설득시키는 중임(重任)을 장유에게 간청을 했 다. 장유의 아우 장신은 이대장의 사위다. 장유는 "그건 염려들 마시우, 아우를 시켜서 십분 충분히 이대장의 배짱을 살핀 후에 우리의 뜻을 알리고, 자진해서 우리의 편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 립의 태도로서 동병을 맡도록 할 수는 있다고 장담하겠소." "그리만 되어도 우리는 큰 성공이지." 이런 이괄의 말에 장유는 다시 "그보다두 더 긴박한 문제가 추대 인물이 아니요? " "하여튼 종실 가운데서 골라야지." 하는 최명길의 말에 이괄은 술을 한잔 따라 마시고는 "고른단 말이 안 될 말이요. 종실 가운데에 제법 왕위에 올라앉을 만한 위 인이 얼마나 된다구 고르고 가리고 할 여지가 있는가?" 이괄은 심중에 이미 작정해 둔 인물이 있는 듯하였다. "그럼 영감 흉중에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 있소?" 하는 최명길의 질문에 "아무렴 있지." "누구요?" "난 돌아간 정원군의 아드님 능양군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능양..." 하고 최와 장은 서로 눈을 맞추어 잠시 말이 없었다. "능양군이 어째서 우리가 추대할 만한 인물인가를 이야기해 줌세." 하고 이괄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반정거사(反正擧事)는 잘 되면 구국(救國)의 공을 세우는 것이지만 실패 하면 역적으로 삼족이 멸망하는 화를 입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본즉 여 느 종실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란 말일세. 적어도 왕가에 대하 여 심각한 불평불만이 있고 이래도 못 살고 저래도 살 수 없는 어떤 비상 한 사정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진해서 응할 도리가 없는 것일세." 장유와 최명길은 이괄의 사리 밝은 설명에 승복하지 앉을 수 없었다. 듣고 보니 과연 절절이 그럴 법한 경위였다. "두 말할 것 없소. 영감의 말씀에 동감이요." 장유가 먼저 이렇게 의사를 발표하고는 "그런데 능양군의 말씀이 났으니 말이지 요즘 내가 듣기에는 김유와 이귀 (李貴) 같은 분들이 능양군과 가끔 왕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혹시 김유나 이귀 등 노패가 무슨 일을 꾸미지나 않소?" "꾸며도 좋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지, 우리의 운동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 다고 한들 해될 바는 없지. 또 어느 기회에 합류해도 좋지 않은가." 하고 이괄은 만족한 안색을 하였다. 젊은이 일파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제일 중요한 장단부사와 이서의 양병 음모도 순조롭게 잘 돼나갔다. 젊은이 일파가 실질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김유, 이귀, 심기원(沈器遠), 신경진(申景 ) 등의 노패는 노 패대로 어느 때는 이귀의 집 사랑에, 어느 때는 새문밖에 있는 어떤 술집 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밀회를 거듭하였다. 진관사에서 돌아와 각기 헤어진 세 사람은 서로 맡은바 소임을 수행하기에 바빴다. 장유는 이틀 후에 아우 장신을 시켜서 사돈 대감을 설복시키도록 했다. 장신이 그 장인을 찾은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장신은 큰 사랑에 와서 이 흥립에게 읍하고 웃목에 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