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603)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것이니라”(욥 41:1~11).
우리가 서야 할 자리~~~~~인류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 부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사람들, 하나님과 동등됨을 누리려 했던 사람들, 하나님보다 피조물인 자신이 낮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악어의 강함을 자세히 묘사하시며 그에 비해 지극히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그렇듯 강한 악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심으로써 우리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우리가 있어야 할 바른 자리를 제시해 주신다. 먼저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사람들은 사단에게 사로잡혀,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영광 받기를 원할 때가 있는, 교만의 자리로 유인하는 사단을 기쁘게 하는 자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본분을 망각하고 무지하게 교만의 죄를 범하는 하나님과 동등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통해 이러한 자리를 유혹의 미끼로 던졌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사단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의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일치하는 것처럼 자랑하고, 자신의 영적 지식과 분별력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양, 자고하며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자신도 베풀 수 있는 양 교만한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반면에 능력의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며 살아온 신앙의 선배들도 있다. 안정된 기반이 닦여 있는 고향을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만을 좇아,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떠났던 아브라함, 온 생애를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쳤던 사도바울 등 이러한 사람들의 자리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깨달은 지혜로운 자리이며, 자신의 본분에 맞게 행하는 겸손한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복된 자리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어떤 마음 착한 사장이 우연한 기회에 빈민촌을 방문했다가 그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한 사람을 선정, 매월 10만원씩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경기가 안 좋아지고 사업이 여의치 못해 5만원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며칠 후 사장에게 “사장님 매월 꼬박꼬박 10만원씩 보내주셨기에 이달에도 10만원을 쓸 계획을 다 세워 놓았는데 예고도 없이 5만원만 달랑 보내시면 어떡합니까? 사장님 때문에 내가 빚이라도 져야합니까? 이번에 보내주지 않은 돈 5만원은 사장님이 내게 빚진 것이니 어서 속히 그 돈을 갚아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의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도리어 불평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되돌아봅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서야할 자리는 불평과 불만의 자리가 아닌, 감사와 기쁨의 자리가 될 때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며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게 하옵시고, 은혜와 감사, 예배의 자리에 서 있게 하옵소서.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자리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