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에 종교적 색채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느니 또 극단화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타협이나 협치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대치와 양극화만이 존재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정 독재주의 시스템만이 아니고 요즘 전세계적인 정치적 추세가 그런 모양입니다. 사실 종교적이라는 말 자체도 사용하기가 주저할 수 밖에 없는 힘든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종교속에는 4대 종교뿐 아니라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도 포함된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광역적 의미의 종교를 의미하고 특정 종교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정치인도 극단적으로 진화되고 이들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사고도 극단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니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잡기 위함이요 그런 목표를 향해 우리편은 승리해야 하고 상대편은 영원한 패배속으로 빠뜨려야한다는 것이 정치의 덕목으로 변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존을 위한 선의경쟁이 아닌 일방적 승리만을 위한 투쟁으로 타락하는 과정이라고 보입니다.
공산독재시스템이나 후진국형 독재정치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요즘 전세계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리더가 향하는 방향으로 일제히 나아가고 정치적 리더가 증오하는 대상은 없애버려야 하는 것으로 인식을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정치적 리더가 제대로 의식이 있고 판단력이 있을 경우 이런 상황은 동력을 더욱 얻게 되고 나라의 발전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단적이고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경우 정말 엄청난 재앙과 재난을 몰고 올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현대의 독재정치인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정치가 극단화한다는 현상은 앞에서 언급한데로 독재주의국가나 정치적 후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대 민주주의의 총아라고 하는 미국의 정치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몇달전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낙원을 내려다보시며 관리인이 필요하다면서 하느님은 그런 연유로 트럼프 후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관련 영상도 영적 분위기가 매우 강하게 풍기는 그런 화면이었습니다. 특정 종교를 믿는 후보가 자신의 종교적 가치속에 포장되는 것을 뭐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는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는데 미국을 통치하려는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종교만을 표방하는 것이 합리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후보의 생각은 적중했고 미국의 백인과 기독교신자들은 트럼프 후보에게 열광했습니다. 중동전쟁은 잘 아는바와 같이 종교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중동국가들의 이슬람이 부딪히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갈등은 다른 어떤 충고도 훈수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극단적 사고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마찰이 끊이지않는 것은 극단주의 정치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 나라 그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개방해 놓고 의논하고 토론하기 보다는 자신 그리고 자신이 추종하는 세력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하나의 방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서 상대의 말과 주장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야말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좋아하는 것만 따르겠다는 주의입니다. 이런 흐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데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미국의 아리 크루글란스키교수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인 <불확실한 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서적에서 '종결 욕구'라는 용어를 등장시킵니다. 종결 욕구란 특정 주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고, 혼란이나 모호함과는 대비되는 확실성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말해 불확실성을 참지 못하고 어떤 방식이든 해답과 결론을 신속히 얻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사고방식의 원인이 되는 심리상태인데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잠시도 참지 못하고 어떤 식이라도 결론을 내린뒤 그 결론에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론이라는 것이 제대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검증절차는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따져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재판도 3심제도가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절차와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은 상당히 인내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상당수 사람들은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그냥 특정 견해를 따르고 믿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더이상 애매모호함이나 자질구레한 혼란으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 확답을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부류에게 그에 반하는 지적이나 이론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쓰레기같은 것입니다. 반대적 이론이 대단히 명확하다해도 스스로 만든 무의식적 검증과정속에서 차단시켜버리거나 자신이 믿고 듣고 싶은 내용만 골라내 습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비판여지를 주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특정 종교 그리고 교리가운데 모순된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신자들에게는 그런 지적이 들리지 않습니다. 종교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주기 때문입니다. 특정 종교에 특정 신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절차가 필요가 없습니다. 불확실성시대에 이런 저런 이론에 우왕좌왕하다가는 판단하기도 어렵고 판단자체도 피곤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믿으라고 하면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상과 이론이 나왔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동차만 타면 되지 그 안에 엔진 등 부품을 알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을 정치인들은 이미 파악한 것입니다. 그냥 명확하고 일관되게 주장을 펴면 추종자들 뿐만 아니라 길을 헤매는 숱한 병적 종결 욕구자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정치철학을 설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론을 내세워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종결 욕구가 강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한국인들 가운데 2시간짜리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말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흥미를 느끼지만 종결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빨리 돌려보기를 통해 결말을 금방 알고 싶어합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10분에 영화 한 편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긴 장문의 글도 읽지 못합니다.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을 봅니다.중간에 어떤 과정이 존재하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짤이나던지 1분도 안되는 동영상이 성행하고 소설보다는 시 그리고 한줄짜리 문장이 더욱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종결 욕구가 상대적 많은 이유가 한두개가 아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빨리 빨리 문화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인터넷 세계속에 살고 있으며 압축성장으로 이뤄진 일등 만능주의, 결과 최우선 주의의 후유증이라는 말입니다. 도로에서 앞차가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지 않으면 그냥 빵빵거리는 것도 종결 욕구의 발로입니다. 옆집에서 아파트를 사면 나도 사야하고 옆집에서 해외여행하면 자신도 가지않으면 안되는 것같은 결과 우선주의의 폐단이 바로 종결 욕구의 과다함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특정 정치가들의 주장이나 특정 유튜버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쉽게 받아드리고 믿어 버립니다. 그 주장이 맞고 틀리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특정 당 그리고 특정 당의 인물에 관한 것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방 당의 경우 아예 그들의 말과 그들의 모습조차 보고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는 당 그리고 그 당의 인물들이면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해도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또는 ' 별것 아닌것 가지고 왜 난리짓이지' 라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종교적 성향의 판단과 사고방식과 매우 흡사한 것 아닙니까.
특히 몇년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 19라는 팬데믹이 가져온 병폐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4년가까이 집에서만 존재하다보니 사회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인터넷과 유튜브속에 자신의 판단을 맡긴 나머지 외골수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고 판단 과정의 극한 단순함과 판단력을 만들게 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주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특정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만들어지는 판단이 사라지고 일부 특정 인물의 요상한 사상과 정도를 벗어난 극단적 사상, 그리고 극한 성향의 유튜버들의 주장과 그들의 궤변에 함몰돼 자체 판단력을 상실했다는 논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인 회로를 작동해 판단할 수 있는 사안도 특정인들의 집착스런 생각 그리고 비상식적인 주장에 현혹돼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판단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믿고 싶은 말에 갇혀 가상세계에서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그런 악순환을 거듭하는 부류가 상당합니다. 바로 그런 부류들속에 앞에서 언급한 종결 욕구가 엄청나게 분출되는 것입니다.
종결욕구의 요구속에 그리고 자신이 믿는 요상한 판단에 따라 자신이 어떤 행동을 저질런지도 모를 행위를 하고 자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급급한 부류들이 현대 정치속에 다수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극단적 맹신을 극복하고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극단적인 집단에 의지하고 몰입되지 않고도 충분히 사회적으로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젼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맹목적 극단주의가 정말로 유해하고 쓸모없는 궤변과 독단적이라는 것을 깨우치도록 리더십을 최대한 발휘해 나라의 움직임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정치가들과 사회지도층이 해야할 최우선 과제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2024년 12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