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인연 10
660년 신라 서라벌
벌써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비은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밤 찬화에게 당하고 난 뒤 좀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흑........흑...”
비은의 곁을 지키며 눈물을 훔치는 서희가 가까스로 시야에 들어왔다.
“마마....공주 마마...”
그녀가 정신이 들자 서희는 눈물을 훔치며 물을 그녀의 입가에 적셔 주었다.
“어차피..누군가에겐 당할 일이 었다.울지 말거라..”
서희와는 다르게 담담한 비은의 모습에 더욱 눈물이 나는 서희였다.
“짐은 다 꾸렸느냐....”
“네....마마..허나...”
서희는 망설이는 듯 말하기를 꺼려했다.
“왜?”
“찬화 장군이 아침 일찍 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주마마와 혼인을 하시겠다고..”
“뭐?”
서희의 말에 몸을 일으켜 앉으며 서희에게 다시 말해보라 하지만 같은 말이었다.
“허나...안 될 것이야.....난 당나라 황제의 노리개로 갈 것이야...”
분명 그러 할 것이다.찬화는 신라의 장군이고 상대는 당나라의 황제이다.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뒤였다.
어제 밤 이후..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신의 몸까지도...
“날 일으켜 다오..씻고 싶구나...”
“글피다...그때까지 준비하도록 하거라...”
“아버지~!”
“당나라 사신이 그리하자고 한 것이야..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서의 말에 찬화는 그저 답답한 마음만 주먹으로 두드릴 뿐이었다.
찬화의 방을 나온 장서는 비은의 처소로 향했다.
“어서 드시지요..”
서희가 나가자 그제서야 자리에 앉으며 장서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글피 옵니다..”
“그렇군요..알겠습니다. 짐은 다 싸 두었습니다.”
처음으로 가까이 보는 비은 공주의 외모는 자신의 아들이 2년 동안
사모할 만한 고운 얼굴이었다.
지금은 적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신분은 공주이다.
찬화가 넘봐 설 안 될 사람이었다.
“제 못난 아들을 용서하시고 그냥 잊어주소서.”
어젯밤 일을 알고 있는 듯한 장서의 말에 비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지요...”
“제 아들이 혹시 공주님을 다른 곳으로 모시고자 하면..따라 주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 입니까?”
“그리만 알아주소서...”
알 수 없는 장서의 말에 비은은 그저 묵묵히 생각할 뿐이다.
이른 아침부터 당나라의 사신들이 도착하여 비은 공주를 기다리고 있었고
비은은 준비를 마친 듯 처소에서 나와 자신을 기다리는 당나라 사신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장서에게 인사를 건네던 비은은 찬화를 보고는 그저 조용히 고개 인사만 하고
당나라 사신들이 준비한 말에 올랐다.
‘해현. 그대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그저 눈도 귀도 막고 잠 들거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해현만을 그리워하는 비은의 눈에 눈물이 한 줄기 흘러 내렸다.
어느덧 포구에 도착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당나라의 배에 올라탔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식량과 군자물들을 싣는 사람들의 손이 바쁘게 돌아간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배 안쪽으로 안내하는 사신을 따라 들어가려는데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요?”
“당나라까지 안전하게 모시라는 저희 왕의 분부십니다.”
그 말과 함께 배에 올라타는 찬화와 몇몇의 신라 군인들 이었다.
“우리야 고맙지..그럼 어서 배를 띄우거라..”
웃으며 배를 띄우라 말하는 사신은 그저 좋아할 자신의 황제 생각만 하는 듯 했다.
서라벌을 떠나 항해를 시작한지 언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어둑어둑 져 밤이 되었다.
서희와 함께 배 안쪽에서 잠을 이루는 비은의 모습을 본 찬화는 곁에 있던 병사에게 무어라 지시하더니 뱃 머리로 향했다.
“드시지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신들의 틈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찬화는
자신의 잔이 비우면 바로 사신들에게 건네 술을 청했다.
그렇게 몇 잔이 오고가자 사신들을 취해 졸기 시작했으나 그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만 갔다.
“이..이게...”
자신들의 목을 잡고는 괴로워하던 그들은..
“도..독을 넣은 것이냐?”
“끌고 나가거라..”
어느새 당나라 군사들은 신라군들에게 진압 당해 묶여져 있었고 신라 군들은 배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 같소.내 그대들에겐 단 하나의 것만 요구하지.던져라~!”
찬화의 말과 함께 사신들이 밤바다에 던져 졌고 그들은 점점 깊은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다.
“내 명령에 따르겠느냐...너희도 바닷속으로 들어가겠느냐...”
찬화의 한마디에 모든 것은 정리되었고 배는 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바다의 고요함이 사라지고 어느덧 파도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해가 솟아올라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
비은공주가 뱃머리로 나와 찬화에게 물었다.
“그리고 당나라 사신들은 왜 안 보이느냐?”
찬화는 뱃 머리의위 깃발을 가리켰고 그곳엔 당나라의 깃발이 아닌
백제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저...건...,”
“지금 이 배는 왜로 향하는 중이오..곧 당도 할 터이니...안으로 들어가 계시지요”
“어떻게 이 배가 왜로 향한다는 것이냐...혹..시..”
비은은 지난번 장서의 말을 떠 올렸다.
‘그 말이 이것이란 말인가....‘
“이 사실을 알면 당나라 황제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신라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느냐..“
“그건 공주가 걱정할 일이 아니요...”
찬화의 말대로다. 자신의 백제를 멸한 두 나라를 자신이 걱정할 이윤 없다,
그저 비연이 있는 왜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이 다행인 것이다.
.
..
...
....
.....
......
.......
........
.........
또 그 꿈이다.
하지만 이번엔 내용이 달랐다. 마치 이어지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꿈이 전개가 된다는
사실에 예빈은 신기할 뿐이다.
이제는 익숙한 듯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이 집에 있는 동안 제대로 된 옷이라곤 퇴원하는 날 밖에 입어 보지 못한 것 닽다.
신은 자신이 도망 갈까봐 그런건지 변변한 옷 한번 주지 않았다.
그저 속옷과 잠옷으로 입는 슬립이 전부였다.
“일어 나셨어요...”
퇴원한 날부터 자신의 옆에서 떨어 질 줄 모르는 여자가 하나 생겼다.
유키라는 이름의 자신보다 3,4살이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시녀라기보다 공부를 많이 한 비서에 가까웠다.
항상 깨끗한 정장 차림과 곱게 한 화장을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 옷 좀 주면 안되요? 최소한 제대로 된 옷 하나는 입자구요.”
몇 일 째 말해보지만 이번 역시 들어 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예상 밖에 그녀가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자 여러명의 시녀들이
들어와 무언가를 침대에 펼치기 시작했다.
“저도 이건 아니다 싶어. 신님께 말씀드려 옷을 몇 벌 주문했습니다.
마음에 드시는 옷으로 입으세요."
침대위에 놓여진 옷들을 보던 예빈은..
“이것 밖에 없어요? 원피스나 드레스 같은거 말고 츄리닝이나 청바지 같은 건 없어요?”
“바지는 안된다고 하셔서 치마로만 준비했습니다.”
결국 편한 옷 입고 도망갈 생각 말란 소리였다.
“알았어요 이게 어디야....”
하얀 원피스 하나를 집어 들고 입던 예빈은 뭔가 생각 난 듯..
“나 책 한권만 구해다 줄 수 있어요?”
“책이라면 안쪽 서재를 이용하시는 것이 어떤지요.”
유키의 안내를 받아 간곳은 자신의 방과 정반대편에 위치한 서재였다.
아니 서재라기 보단 작은 도서관이었다.
없는 책이 없을 것만 같았다.
“흠....한국역사?삼국사기?”
책을 고르던 중 전부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보고는..
“한글로 된건 없어요?”
“글쎄요...있을 것 같은데..”
유키는 익숙하게 서재 안쪽의 사다리를 집고는 위 쪽에서 책 한권을 뽑아 들었다.
“이 책이면 되시겠어요?”
그녀가 건넨 책은 한국여사집이었다.
“이거 말고 더 있으면 좀 꺼내 줄래요?”
3시간째..서재에서 꺼내온 10권이 넘는 책들을 메모까지 하면서 읽는 예빈이었다.
자신의 꿈속에 나왔던 비은과 찬화등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책을 뒤졌다.
“여깄다!!”
삼국시대에서 겨우 꿈속의 사비성을 찾았고 백제의 멸망이라는
제목과 함께 글을 읽어 내려갔다.
비은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꿈속의 상황이 백제 멸망시기였던 것은 확인하자 예빈은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모니터를 통해 예빈의 모습을 본 신은 유키에게 물었다.
“서재에서 한국 역사 관련 책은 모두 꺼내 읽고 계십니다.
뭔가 찾는 듯하셨습니다.“
“한국 역사라......”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은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왜 기록이 없냐고..아악!”
책을 다 봤는지 예빈은 짜증스레 책을 던지며 답답해 했다.
“책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막 던지지?”
책을 주어들며 말하는 신의 모습이 갑자기 누군가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아...왜 이래....”
자신의 고개를 여러 번 흔들던 예빈은 갑자기 ‘찬화‘를 떠 올렸다.
“김찬화...맞아..김찬화...신라...”
다시 책을 뒤지는 그녀는 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김찬화..아니지...무열왕....”
중고등학교 때 배운 국사를 떠올려가며 찾던 예빈은 만족스럽지 못한 내용에
신을 지나쳐 서재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놔 두기로 결심한 그는 차라리
자살하는 것보다 났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예빈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서재에 쳐 박혀 책들만 보기 시작했다.
“뭐야..없는 책이 없다드니....”
결국 서재에 있던 한국역사 책은 모두 다 읽었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벽장 맨 위에 놓여진 먼지 쌓인 파란 표지의 책 하나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사다리를 올라 책을 꺼내자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손으로 먼지를 닦아 내자 한문으로 쓰여진 제목이 눈에 띄었다.
“百濟王族歷史...백제왕족 역사?”
뜻밖의 책에 그녀는 서둘러 사다리를 내려와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책 표지를
손으로 대충 닦고는 책을 펼쳤다.
“백제..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들..온조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그녀는 바쁘게 책 뒷 부분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의자왕의 이름이 나오면서..그려가 찾던 비은의 이름도 볼 수 있다.
“비은 공주....의자왕의..셋째 딸로...”
그동안 읽었던 책과는 달리 자세히 기록된 내용엔 자신의 꿈에서 본 해현과 찬화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왜에 시집온 비연 공주를 만나기 위해....찬화장군의 도움을 받아....”
아무래도 이건 역사책에 없는 내용이 너무 자세히 기록 되어 있어
마치 소설책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임에 분명한 것은 마지막장에 적힌 이름으로 알수 있었다.
“왜로 건너와 왜 황실에 시집을......”
자신의 꿈속에서는 보지 못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김찬화의 이름이 나오면서 ‘りょたろ..료타로‘라는 이름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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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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