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언젠가 내 치료와 관련된 글을 작성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다 오늘 써 봐.
두서가 없을 수 있지만 최선을 다 해 작성해볼게.
우선, 결벽증은 강박증의 일종으로 청결에 대한 강박을 가진 병이야.
하지만 편의상 결벽과 강박을 분리해서 글을 쓰도록 할게. 내가 아래서 서술하는 강박은 결벽 외의 강박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줘.
난 어릴 때부터 깔끔한 편이었고, 그래서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친구들한테 결벽증이란 말을 종종 들었어.
예를 들어 교실 바닥에 내 물건이 떨어지면 진저리치며 후후 불고, 화장실 문은 발로 열고 닫고, 돌리는 손잡이로 된 화장실 문은 친구들이 열고 들어갈 때 같이 쏙 들어가고, 청소할 때 걸레는 딱 두 손가락으로만 잡아서 빠는 등.. 이 정도가 생각 나.
근데 이정도 깔끔 떠는 애들은 주위에 한 명씩 있잖아?
난 그런 애였어.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어.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자잘한 강박증이 있었어.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데, 초등학생 때는 잠을 잘 때 베개가 침대의 좌우 방향에서 딱 중앙에, 침대 머리끝과 베개의 간격은 딱 한 주먹, 내 머리는 베개의 정 중앙에서 높이도 특정 위치에. 이 강박이 되게 심했어.
중학생 때는 뭐든지 꼭 왼쪽부터. 친구랑 걸을 때도 왼쪽에, 세명이 걸을 땐 가운데에. 그래야 중심이 맞는 느낌이 들었거든.
많은 것들을 오른쪽부터 하니까 왼쪽부터 발을 밟아줘야 했고, 그래서 왼쪽 발을 먼저 내밀어 걸으면 또 뭔가 중심이 안맞는 거 같아서 양발로 쿵쿵 뛰어서 중심을 맞춰주기도 하고 좀 피곤했지;;
고등학생 때는 이런 강박이 거의 없어졌는데 친구랑 둘이 갈 때 왼쪽에서 걸어야 하는 강박은 있었어.
20살이 되어서는 이런 결벽과 강박이 없어졌어. 나도 모르게. 그 시기에도 사실 몰랐어.
몇 년이 지나고서 결벽증이 다시 심해졌을 때 깨달았어. 그러고 보니까 그 땐 안그랬네? 하면서.
20살 때는 아무 생각없이 대학교 다니고 별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아.
학교 다녀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눕고 (대신 이불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어), 화장 안지우고 잠드는 일도 많았고, 강박행동도 딱히 없었던 거 같아.
그러다가 작년에, 내가 아주 크게 스트레스 받고 힘든 시기가 왔었는데 그때쯤부터 결벽증이 심해졌다는 걸 느꼈어.
지금까지랑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점점 더 심해지고 그걸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겉잡을 수 없이 올해까지도 계속해서 단계가 높아지고 범위가 넓어졌어.
마침 올해 초 코로나가 터졌잖아? 역대급으로 결벽에 대한 강박 행동들이 심해지기 시작한거야.
원래 사용하던 알콜스왑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용하는 횟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게 됐고 뿌리는 소독제까지 사서 많이도 뿌려댔어.
나도 그만 뿌리고 싶고, 그만 닦고 싶은데 울면서 소독해대는 내가 너무 안쓰럽고 화가 나고 힘든 거야.
그래서 올해 중순부터 정신과 가기를 고민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친구한테 병원 추천을 받아서 7월부터 치료를 받게 되었어.
⬇ 병원 가기 전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작성한 메모 (욕 주의...)
⬇ 진료 초반에 내 증상들에 대해 썼던 댓글
⬇ 병원 처음간 날 (다음 방문 때 작성해오라고 여러가지 검사지 받아옴)
⬇ 진료 초반에 작성했던 진료 후기 및 상태 기록
🏥 7/10 (금) 💳13,800
치료받아야할 수준의 강박증 맞음
세로토닌 높이는 약을 처방해줌
입맛 없어질 수 있음
다음으로 넘어가야함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는 강박적느림
강박증은 후천적으로 학습되었을 가능성이 큼
✅ 7/12 (일)
집에서 항상 슬리퍼 신고 다니는데 슬리퍼 신을때 그 입구에 발이 닿으면 또 알콜스왑으로 발을 닦아줬는데 안닦아봄
그러면서 스스로 괜찮아 괜찮아 달래줌
✅ 7/15 (수)
배가 계속 아픈데 약 부작용으로 보임
🏥 7/17 (금) 💳 18,000
동일한 약을 증량하여 처방
세로토닌 높이는 렉사프로를 5mg에서 7mg으로 늘림 (일반적인 강박증 치료에 쓰이는 양은 20mg, 점점 증량해나갈 것)
계속 졸리다고 했더니 초조, 불안 등을 낮추기 때문에 이완되어 졸릴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함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세로토닌 때문에 변비나 설사가 올 수 있다며 이 또한 약에 적응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함
검사결과 내적불안과 외적불안 모두 높음
우울함은 16으로 조금 높긴하지만 20이하면 괜찮다고 판단
아직 강박 행동을 참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며 그걸 해내기 위해 불안감을 낮추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
오염되었다고 느끼는 손을 씻기까지 버티는 시간을 늘여서 참아볼 것
✅ 7/18 (토)
선풍기에 다리가 닿았지만 알콜솜으로 닦지 않았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잠을 많이 잠
볼일보고 난 뒤 몸이 오염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나에게 소독제를 뿌림
✅ 7/19 (일)
저녁약 안먹고 잠듦
더이상 복통은 느껴지지 않음
✅ 7/20 (월)
증상 호전은 없으며 잦은 손세척으로 손바닥이 심하게 벗겨짐
✅ 7/21 (화)
손세척을 줄이기 위해 비닐장갑을 끼고 물건을 만짐
✅ 7/29 (수)
변비 증세가 느껴짐
복용하는 약이 장에 영향을 줘서 초반 한두달은 변비로 고생 좀 했어
이 이후로는 귀찮아서 세세히 정리는 안했고 종종 메모장에 글을 작성했어
✅ 8/22 (토)
잠을 자다깨다한지 2주정도 되었음
어제는 5시간자고 완전 잠이 깨고 오늘은 3~4시간 자고 완전 깸
✅ 8/23 (일)
한두시간 후, 또 한시간 후, 또 한시간 후 깸
이때쯤부터 수면장애가 생겨서 수면을 도와주는 약도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어
✅8월 말
멀티탭 스위치 원래 휴지로 눌러줘야 했는데 맨손으로 누르기 가능 (손가락 굽혀서 꿀밤때리는 모양으로)
후라이팬 휴지로 감싸서 잡거나 잡고 손씻어야 했는데 맨손으로 만지고 손 안씻기 가능
과자 봉지, 아이스크림 봉지 만지고 손 안씻기 가능
⬇ 9/17 작성한 메모
⬇ 10/4 작성한 메모
⬇ 11/16 작성한 메모
수면에 도움주는 약을 처방받고 먹었을 때 초반에는 효과가 좋았는데 좀 지나니까 다시 수면을 제대로 못해서 얼마전부터 새로운 약을 추가해 먹고 있고 효과는 너무 만족해.
자세히 읽어보면 사소한 것들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걸 알거야 내가 다 적지 않았지만 생긴지 오래 안된 습관들이 비교적 빨리 고쳐지더라. 오랜 습관들은 아직 고치지 못했어.
⬇ 지금 내가 복용하는 약
💳 병원비 결제 내역 (내가 다니는 병원은 병원내에서 약도 제조해줘) 💳
🙆추가로 내가 하고싶은 말들
☝본인이 결벽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강박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것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루 빨리 병원에 갈 것.
▶ 다른 정신병과 달리 강박증 환자들은 이게 그렇게 문제되진 않는 거 같은데? 그래도 병원갈정도는 아닌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병원에 찾아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7년이래.
그 7년이란 기간동안 각자의 강박증은 점점 더 고착화되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강박증은 단기간에 고쳐지지 않는 병이야.
나도 약 반년간 치료 받으면서 사소한 것들이 너무 많이 좋아졌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심한 결벽강박을 가지고 있어.
☝ 병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정신과에 대해 부정적이시라면 케바케..)
▶ 난 아빠의 비위생적인 행동들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아왔지만 지적을 해도 항상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고쳐지지 않는 아빠의 행동에 몹시 분노해왔어. 그런데 내가 병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아빠한테 말하고, 부탁하니까 이제 앉아서 볼일보고 뚜껑 덮고 물내리고, 예전보다 내 눈치 보면서 손도 더 씻어.
내 성에 차지는 않지만 더 당당하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말하고 부탁하고 요구할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엄마아빠가 조금 조심하려는 게 느껴져서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좀 줄어
☝ 본인을 힘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도 가야한다.
▶ 약이 괜히 약이 아니야. 나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약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
☝ 세상에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이 더 드물다. 망설이지 말자. 그리고 무지로 인한 혐오발언 하지 말자.
▶ 결벽증, 강박증 등 정신병에 대해 함부로 마구 남발하지 말자. '정신병자'는 혐오표현이야. 절대 쓰지 말자.
현대인은 모두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이니 다들 서로 더 힘들지 않도록 말 한마디도 배려해서 하자!
내가 병원가기 전에 쭉빵에 결벽증 서치를 참 많이 했었는데 나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꽤 많이 봤어.
그런 친구들한테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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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밖에서 손 못씻으면 엄청 스트레스 받음.. 근데 공중화장실은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나는 진짜 터질듯이 마려운거 아니면 무조건 참는데 그래서그런지 신장안좋아진것같아,,화장실 비누도 진짜 찝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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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강박 증상이 좀 있는거같아서 물어볼게!
일단 심할땐 자기전 세수하고 양치만 하는데 3시간이 걸려ㅠ계속계속 씻어내 평소에는 뭐가 닿으면 항상 손 씻어서 핸드크림 발라도 피부가 갈라지더라 얼굴에 손 대는게 싫어서 간지러우면 머리카락잡고 그걸로 긁어..그리고 누가 자기꺼 쓰는게 싫대 립스틱이나 (남의꺼 손으로 묻혀서 바름) 자전거도 못타게해 새 물건을 선물 받으면 기존에 쓰던거 다 쓸때까지 안 써 그리고 어떤일을할때 a방식을 해야 나도 걔도 편한데 불편한 b방식을 고수한다던지...밖에서 큰일 못봐 지금은 좀 나아진거같긴한데 큰일보면 꼭 몸을 씻어야한다더라구
안 그러다가 요즘 또 손 씻는거 심해져서 걱정돼..본인은 아직까지 불편한거 없다던데 그러면 아직 치료받을정도는 아닌거겠지?ㅠ 걱정돼서 댓글 남겨 글 써준거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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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써줘서 고마워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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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강박사고도 잘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