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시인의 사랑
가족과 관련된 시들 몇 개 옮겨 적어봤어요.
왜 집이 자주 황량한 장독이어야 하죠
장독 한 채에 온 식구 쌓아 넣고
해 뜨는 땅으로 아버지는 떠났다
매일 파산만 하고 돌아온 아버지
다시 해를 가지러 떠났고
홀로 감자알 같은 자식을 다스리는 어머니
노을지는 강이 되고
토막난 갈치가 되어 은비늘 날개를 털며
밥상 위에서 서럽게 웃고 계셨다
자식들의 언덕, 그 가파른 혹을 오르내리셨다
풍운의 아버지, 장독이 깨질 것 같아요
쓰러지세요 해 뜨는 땅이란 없나 봅니다
저희들이 해가 돼드릴게요
뜨끈뜨끈한 밥덩이가 될게요
어머니의 정글이 고통의 톱날에 마구 베어집니다
추워요 무서워요
다신 떠나지 마세요
-신현림,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진희영 생일 3월 15일
윤정숙 결혼 기념일 3월 16일
진은영 생일 3월 17일
그러니까 동생이 출생하고 나서
엄마가 결혼하고
나 태어나게 되었지
다트 화살을 힘껏 던지면
시간의 오색판이 빙그르르 돌아간다
시를 쓰고 나서 혁명에 실패하고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혁명에 실패하고 나서 한 남자를 사랑한 후
시를 쓰게 되었는지
추억은
커다란 뚜껑이 달린 푸른색 쓰레기통
열어보지 않으면, 산뜻하다
모든 것이 푹푹 썩어가도
-진은영, 푸른색 Reminiscence
어머니 뱃속에서 나는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놀았다
아픈 그 여자, 숨어서 울 때마다 비가 왔다
그럼 나도 종이로 우산을 접고 따라서 우는 척했다
그 여자 뱃속은 늘 김이 서린 목욕탕의 거울
어느 날은 거기 네모난 삼각형을 하나 그렸다
삼각형인데 각이 네 개나 되지
대각선도 그을 수 있단다
어수룩한 천사들을 붙들고 수다를 떨었던 것이다
기억에, 태어나던 날 도립병원에는 큰불이 났고
불 그림자 일렁거리며, 난
이 이상한 세상을 향해 힘껏 팔을 뻗었던 것이다
白衣(백의)의 바보들은 놀라 주춤 물러섰지만
그 여자, 젖은 나를 꼭 껴안으며
네모난 삼각형을 그려 보이고 기절했다, 오오!
어머니가 삼십 년을 습작하여 발표한 최초의 詩集(시집)
그게 바로 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김중, 네모난 삼각형
아버지
만나러 금촌 가는 길에
쓰러진 나무 하나를 보았다 흙을
파고 세우고 묻어 주었는데 뒤돌아보니
또 쓰러져 있다
저놈은 작부처럼 잠만 자나?
아랫도리 하나로 빌어먹다 보니
자꾸 눞고 싶어지는가 보다
나도 자꾸 눕고 싶어졌다
나는 내 잠 속에 나무 하나
눕히고 금촌으로 갔다
아버지는
벌써 파주로 떠났다 한다
조금만 일찍 와도 만났을 텐데
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고향 따앙이 여어기이서
몇리이나 되나 몇리나 되나 몇리나되나......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이 노래 불렀다
내 고향은 파주가 아니야 경북 상주야
나무는 웃고만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쓰러진 나무처럼
집에 돌아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내가 떨어뜨린 가랑잎이야
-이성복, 꽃피는 아버지 中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얼굴이 간지럽다
아버지는 빨간 핏방울을 입술에 묻히고
바닥에 스민 듯 잠을 자다
개처럼 질질 끌려 이송되었다
반항도 안 하고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 - 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촉촉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려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박연준, 뱀이 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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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문제가 보이면 댓글 달아주세여
첫댓글 대박... 다 처음 보는 시들... 참 좋다
진짜 전부다 내 취향저격ㅠㅠㅠㅠㅠ좋다
헐.. 왜 진은영 진은영 하는지 알겠다..너무좋다여시야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