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살인 1 다음날 아침. 죽변을 출발한 세 대의 승용차가 국도 7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 차가 수신 검문소 남쪽 5키로 지역에 왔을 때 경찰 순찰차가 보이면서 경찰관이 서행하라는 수신호를 한다. 도로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치 찌그러진 뉴 쏘나타 한 대가 방치되어 있다. 한 눈에 사고 현장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가 있다. 사고 현장을 통과한 직후 앞서 가던 시에로가 갑자기 비상등을 켜면서 도로변에 선다. 뒤따르던 아카디아와 싸바 900도 씨에로 뒤에 정차한다. 시에로에서 내린 한준영이 아카디아 옆으로 뛰어 온다. "저기 사고 차 옆에 서 있는 사람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선배님입니다." "그래요?" "무슨 일인지 잠깐 가보고 오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한준영이 사고 현장으로 뛰어 간다. 유민수는 자기 쪽으로 뛰어오는 남자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대학 후배 한준영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반가웠다. 그러다가 강선주가 옆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약간 당황한다. "유 선배. 어떻게 된 겁니까?" 한준영은 차가 유민수 소유라는 것을 알아보고 하는 말이다. "어제 저녁에 차를 도난을 당했어." "훔친 사람이 타고 가던 사람이 사고를 낸 거군요" "그런가 봐. 그런데 자네는 여기 왠 일인가?" "휴가 중입니다. 유 선배도 휴가 중이셨군요" 한준영이 유민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강선주를 힐긋 바라보며 말한다. "아. 미스터 한. 강선주 씨야" 유민수가 한준영에게 강선주를 소개한다. "한준영입니다. 유 선배와는 같은 회사에 근무합니다" "강선주예요" "분실 차 확인하러 나오셨군요?" "경찰이 순찰차를 가져와 확인해 달라더군" "어디 가까운 곳에서 도난 당한 모양이군요" "평해야" 유민수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답한다. "저 정도면 어차피 폐차시킬 수밖에 없겠군요. 종합보험에는 가입하셨지요?" 유민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울진 쪽에서 또 다른 순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와 선다. "사고 뒤처리는 경찰에 넘기고 제 차 타고 가시지요" 한준영의 말에 유민수가 강선주를 힐긋 본다. 강선주가 그럴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유민수를 본다. "우선 짐부터 옮겨 실어야겠군요" 세 사람이 찌그러진 뉴 쏘나타 곁을 간다. 그때 여름 점퍼를 입은 젊은 남자가 세 사람 옆으로다가 오며 묻는다. "어느 분이 유민수 씨지요?" "제가 유민숩니다" "울진 경찰서 수사계장입니다" 젊은 남자가 뒤 주머니에서 경찰 수첩을 꺼내 보이며 말한다. "차 트렁크 내부 좀 확인해 주셔야겠습니다" "예?" "혹시 분실된 건 없는지" "그러지 않아도 짐을 저 차에 옮겨 실으려던 중입니다" 유민수가 트렁크를 연다. "분실물 없는지 잘 살펴 봐 주십시요" 한준영은 수사계장이 분실물을 유난히 강조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없습니까?" 수사계장의 질문에 유민수는 말이 없다. 한준영이 유민수에게 시선을 돌린다. 유민수의 얼굴이 굳어 있다. 한준영의 눈에 비췬 유민수의 태도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분실물이 뭡니까?" 수사계장은 분실물이 있다는 걸 단정하듯 묻는다. "없습니다" 유민수가 답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수사계장이 다그치듯 묻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 무엇이 없어졌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유민수가 한 발 후퇴하는 말투로 답한다. "트렁크 속 분실물이 그렇게 중요한 건 가요?" 한준영이 묻는다. "댁은 어떻게 되는 관계지요?" 수사계장이 불쾌하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묻는다. "같은 직장에 근무합니다. 지나다 현장에 아는 사람이 있어 왔습니다" "그럼 차량 도난이나 사고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군요?"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이 왜 건방지게 끼여드느냐는 투다. 한준영의 수사계장의 태도가 불쾌했지만 항의할 길은 없다. 한준영의 눈에 이쪽으로 걸어오는 지현준의 모습이 들어온다. 한준영이 시간이 길어지자 현장으로 오고 있다. "야. 이게 누구야. 태민이 아니야" 지현준이 수사계장을 향해 소리쳤다. "어. 이거 현준이구나. 임마. 너는 여기 왠 일이야" "휴가야" "임마. 여기 왔으면 먼저 형님 찾아와 인사부터 여쭈어야지" 두 사람은 경찰대학 동기다. "너 이쪽 경찰서에서 수사계장 한다는 소리들은 것 같구나" "야. 본청 특수부에 있으면 다 그렇게 의리 없어지냐?" "너 수사계장이 교통사고 현장에는 왜 나왔냐?." "넌 왜 여기 왔냐?" "아. 이 친구 내 고등학교 동기야. 같이 휴가 여행중이야" 지현준이 한준영을 가리키며 말한다. "한준영입니다" "장태민입니다" 한준영이 수사계장이라는 사복 남자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 한준영이 지현준에게 유민수를 소개한다. "지 경감. 우리 회사 같이 근무하는 대학 선배 유민수 박사야" "유민숩니다" 두 사람이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다. "유 선배. 차 문제는 보험회사에 신고하고 가시지요" 한준영이 유민수를 향해 말한다. "잠깐!" 장태민이 유민수를 제지한다. "네?" "분실물 확인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유민수가 말한다. "하시는 일이 뭡니까?" 지현준은 장태민이 전혀 엉뚱한 질문을 하는데 약간 놀란다. 수사계장 교통사고 현장에 직접 나온 걸 보면 뭔가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지 경감. 나 좀 보자" 장태민이 지현준을 끌고 사고 차에서 떨어진 곳으로 간다. "뭐가 있나?" "고의성인 사고 냄새가 풍겨." "고의성인 사고라니?" "아직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저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을 죽이려고 한" "뭐야?" "저기 건너편에 외딴 집 보이지" 장태민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건너편 도로 가에 2층 외딴집이 보인다. "저 집에 2층에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딸이 방학을 맞아 와 있어. 그 여대생이 사고 당시를 목격하고 신고를 해 왔어. 바람을 쏘이느라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거야. 승용차를 정면으로 받은 건 대형 덤프 트럭이고 그때 트럭 앞에 다른 차가 없어 중앙선을 넘을 이유가 없었다는 거지" "차를 잃어버린 장소가 어디야?" "평해 횟집 주차장이래!. 주차장에 세워 놓고 회를 먹고 나와보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거야" "신고는 했었나?" "어제 밤늦게 파출소를 통해 도난 신고를 했더군." "유연히 저 차를 훔친 게 아닐까?"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다른 게 있었나?" "신고한 여대생 말을 들어보면 사고 직후 피해 차를 뒤 따라 오던 승용차에서 세 사람들이 내려 사고 차 내부와 트렁크를 뒤지는 것 같더라는 거야." "피해 승용차를 뒤따라오던 차?. 다른 차가 사고 차 뒤를 따라 왔다는 거야" "그리고 사고 차 트렁크에서 뭔가 꺼내 승용차에 싣고 갔다는 거야." "도난 당한 게 뭐야?" "본인이 말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다시 물으니 이것저것 많이 싣고 다녀 무엇이 없어졌는지 확인이 안된다는 발뺌을 하고 있어. 분실물을 본인은 알고 있고 그걸 분실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은 눈치야" "사고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어?" "현장에서 숨이 끊어졌어" "범인들이 노린 상대가 유 박사라면 차를 훔친 남녀를 유민수씨 커플로 착각한 건가?" "뒤 따라 온다는 승용차에서 카폰으로 덤프 트럭에 지시를 내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야. 고의적인 사고라면!" "냄새가 나는군" "난처하게 되었어. 협의도 없이 피해자를 경찰서로 데려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도 없고" "만일 고의적인 사고고 범인들이 노린 대상이 유민수 씨라면 제2 제3의 유사 범행의 가능성이 있군" "내가 고민하는 건 그 점이야. 단순 사고로 처리해 버리면 편해진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럴 수 없는 게 경찰 입장 아니겠나?" 지현준이 담배를 빼 문다. "지 경감. 모두 휴가중인 모양인데 자네가 유민수씨 하루만 여기 잡아 두어 줄 수 없겠나?. 주변에 백암온천도 있고 해수욕장도 많아 여기는 휴가지로도 괜찮아" "내가 싫다고 하면 유민수 씨에게 정식으로 협조 요청을 하고 잡아 두겠군"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애" "해보자" 지현준이 유민수가 기다리는 쪽으로 간다. 2 백암온천 프린스 호텔로 온 일행은 지현준의 방에 모여 있다. "내가 이 사건을 직접 담당한 수사 요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유민수 씨는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습니다" 지현준의 말에 유민수가 눈치를 살핀다. "유 선배. 정말 잃어버린 게 없습니까?" 한준영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있어요!" 강선주가 대신 답한다. "역시 있었군요. 왜 없다고 했지요?" 지현준이 유민수를 향해 묻는다. "닥터 유는 내 입장이 난처해질까 걱정해 말을 안했던 거예요. 하지만 별 것 아니예요" 또 한번 유민수 대신 강선주가 답한다. "그게 뭐지요?" 지현준이 이번에는 강선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노트북 컴퓨터예요" "노트북 컴퓨터요?" "논문을 준비중이예요. 여행 중에 틈틈이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왔던 거예요. 분실된 컴퓨터가 내 소유고 남자와 여행하다 지방에서 분실한다는 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내 입장이 난처해 질까 봐 숨긴 거예요" "리사. 울진 경찰서에 전화해 장 경감 이리로 오라고 해 줘" "오케이" "유 박사께서는 이번 여행에 노트북 컴퓨터를 휴대하지 않았습니까?" 유민수가 한준영을 바라본다. "유 선배. 숨김없이 얘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한준영이 말한다. 고진성과 주혜린은 처음부터 말없이 듣고만 있다. 리사가 이따금씩 두 사람 쪽을 곁눈질한다. 수준의 눈에 비췬 고진성과 주혜린의 태도는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고진성과 주혜린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듣고 있다. 중요한 대목이 나올 때마다 서로 눈길을 교환한다. "예. 휴대하고 떠났습니다." "두 분의 컴퓨터가 혹시 같은 건 아닙니까?" "닥터 강이 노트북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회사에서 사원용으로 구입해 주었습니다. 사원이 직접 구입하면 싸니까요" "같은 형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유 박사 컴퓨터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방에 있습니다" "한번 보여 주시겠습니까?" 컴퓨터를 보여 달라는 지현준의 말에 유민수와 강선주의 얼굴에 곤혹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현준이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컴퓨터를 보이면 곤란한 일이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잠시 보여 주시지요" "닥터 강. 방에 가서 내 컴퓨터 좀 가져다주겠소" 유민수의 말에 강선주가 일어나 나간다. "두 대의 컴퓨터 가운데 왜 한 대만 차에 실어 두었지요?" "여행용 가방 같은 다른 짐이 많아 중요한 내 것 한대만 꺼낸 겁니다" "유 박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뭡니까?" "그건 기업의 기밀이라." "그 기밀이 유 박사 안전보다 더 소중한 겁니까?" 지현준의 말에 모두가 놀란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리에 불과합니다만 누군가가 유 박사의 컴퓨터를 노리고 교통사고를 가장해." 지현준이 말을 끊는다. "이것 봐. 지 경감. 단순히 컴퓨터를 훔치자고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인을 한다는 추리는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닌가?" 한준영이 약간 어이없다는 투로 말한다. "그래서 유 박사가 하는 일을 묻는 거야. 기밀을 훔치고 일을 중단시키자는 두 가지 목적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우리 추리가 정확하다면 유 박사에게는 앞으로도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장 경감도 그걸 걱정하는 겁니다" 방문이 열리고 강선주가 들어온다. "그 컴퓨터는 유 박사 것 아니지요?" 지현준이 강선주를 쏘아보며 묻는다. "어제 차에서 내릴 때 유 박사가 착각하고 내 걸 들고 내렸나 봐요. 지금에야 그걸 알았어요" 강선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아닙니다. 두 분은 잃어버린 컴퓨터가 누구 것인지 어젯밤 자동차를 도난 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알고 있었습니다" 유민수도 강선주도 말이 없다.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어요. 사실은 어제 밤 자동차 도난 신고를 하고 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컴퓨터가 바뀐 걸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일이 아닌데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지현준이 이번에는 유민수 박사를 노려본다. "죄송합니다!" "유 박사. 사실대로 얘기해 주시지요" 지현준이 강선주의 말을 무시하고 유민수에게 따지듯 말한다. "사실은..." "말씀하시지요" "어제 호텔에 들어갈 때 한 대만 꺼냈습니다" "유 박사 걸 꺼낸다는 게 착각해 닥터 강 걸 꺼낸 건가요?" "그렇습니다. 내 컴퓨터에 중요한 자료들이 입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한 건 자료가 외부로 유출된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기 싫었던 거지요?" "그렇습니다" "유 박사 컴퓨터에 무엇이 입력되어 있었습니까?"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그램 같은 것입니다"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것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미사일을 이용한 가상 전쟁 게임 프로그램 같은 것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라고 하신 뜻은 실재로는 그게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범인들은 유 박사가 가진 자료를 노렸습니다. 어제 유 박사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20대 남녀였고 상대는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을 유 박사와 강선주 씨로 착각한 겁니다" 강선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한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유 박사에게 계속 위험이 가해질 가능이 있을까?" 한준영이 지현준을 향해 묻는다. "사라진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그램의 비밀을 찾아내려고 유 박사를 노리겠지." "노린다는 건 무엇을 뜻하나?" "유 박사의 약점을 찾아 협박을 하거나 납치 그게 아니면 매수하는 방법이겠지" "매수라고 했습니까?"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두고 한 일반론 일 뿐입니다" "그들은 유 박사가 자료를 입력한 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고진성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연구소 내부에 공범이 있거나 계획적으로 유민수씨 주변에 접근해 알아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지현준이 강선주를 힐금 보며 말한다.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세요?" 강선주가 발끈해 항의한다. "내가 사건을 정식으로 수사하는 입장이라면 닥터 강도 용의선의 인물입니다" "그것도 수사관의 일반론인가요?" "일반적 원칙에 따른 주관이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정황 사항이 그렇게 나타나 있다는 겁니다. 또 하나 경찰관 업무는 남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네가 이번 사건을 맡아 수사해 줄 수 없겠나?" 한준영이 말한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사건은 사고 관할 경찰서 소관이고 경찰은 개인적으로 사건에 관여할 수가 없어" 유민수가 무엇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든다. "지 경감께서는 특수부에 계신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국가 안전과 관련된 중대한 것이라면 지 경감이 개입할 수 있습니까?" 유민수의 말에 모두가 놀란다. "유 박사의 그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그램 내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단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제 방으로 가시지요" 지현준이 일어선다. 유민수도 따라 일어난다. 3 지현준이 예약해 놓은 방에 유민수와 앉아 있다. "컴퓨터에는 유도탄의 유도장치를 실험하는 시뮬레이션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극동전자연구소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지현준이 놀라 반문한다. "공식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초정밀 TV 카메라를 개발하는 과장에서 그걸 유도탄 유도 장치에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만든 것입니다" "그 유도장치는 새로운 방식입니까?" "한국은 산악지대가 많아 지상에 굴곡이 심합니다. 이런 지형에서는 레이더 유도방식으로는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이번에 개발 중인 장치는 유도탄 앞부분에 초정밀 TV 카메라를 장치해 카메라가 지형 직접 확인해 목표물을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전혀 새로운 방식입니까?" "원리 자체는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이 방식으로 유도하는 유도탄이 실전 배치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토마호크 유도탄도 그 일종이지요" "유 박사께서 개발하신 건 보다 앞선 시스템이라는 뜻입니까?" "미사일은 음속으로 목포를 찾아갑니다. 카메라 추적 방식의 핵심은 카메라의 정밀도에 있습니다. 카메라가 지형을 인식하는 속도가 미사일 순항속도 보다 느리면 목표물을 찾지 못합니다" "그렇겠군요" "미사일은 속도가 생명입니다. 추진장치 분야기술은 이제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카메라의 감식 속도가 느려 유도탄 속도를 더 이상 높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 박사께서 시험 중인 전자 카메라가 획기적인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드려도 좋겠습니까?" "자랑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가 그 카메라를 이용한 유도 장치와 직접 관련된 것입니까?" "특수 전문가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분석하면 유도탄에 장착할 초소형 컴퓨터와 카메라의 성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추어의 눈으로 보면 하이테크 전쟁 게임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도 알고 있습니까?" "아직은 이론 단계라 혼자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단계라면 상대가 노리는 게 반드시 유도장치로 단정해 버릴 수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상대가 노리는 게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누군가 노리는 상대가 있다면 대상은 초정밀 전자 카메라 쪽과 유도장치 둘 종 하나로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카메라 자체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겁니다" "닥터 강도 시뮬레이션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닥터 강까지 의심합니까?" "모든 가능성을 두고 묻는 겁니다" "기술적인 내용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무엇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완성 단계는 어느 선까지 가 있습니까?" "어느 쪽을 말하는 겁니까?" "두 쪽 모두를 뜻합니다" "카메라는 지금도 바로 상품화가 가능합니다" "유도탄은 어느 선입니까?" "유도탄 기술 수준 자체가 군사기밀이라 한국 유도탄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와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유 박사께서 개발한 초정밀 카메라와 한국 유도탄을 결합시켜 시험해 본 일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전화 벨이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울진 경찰서 장 경감이 프런트와 있다는 리사의 전화다. "장 경감이 와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 하신 얘기는 장 경감에게도 비밀로 해 주십시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4 "유 박사. 혹시 이 사람들 기억 없습니까?" 장태민이 몇 장의 사진을 유민수에게 내밀며 묻는다. "아니......이건.....?" "아는 사람입니까?" "예." "누굽니까?" "박 기자하고 미스 신입니다" "박 기자하고 미스 신이라니요" "이름은 모릅니다. 그냥 기자라고 했습니다" "기자?" "이 사진 배경은 평해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사고 차에 탔던 여자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던 1회용 카메라에서 나온 필름을 현상한 사진입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차를 훔친 사람들이고 그 두 사람은 이미 죽었다는 뜻입니다." 장태민의 말에 방안 사람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진다. "유 박사와 이 사람들과는 어떤 사이지요?" "술집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술집에서요?" "잠실에 있는 단골 칵테일 하우스 원셧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닥터 강도 아는 사이겠군요?" 장태민이 강선주를 향해 묻는다. "유 박사하고도 자주 거기서 만나고 우리 병원 사람들도 그 집 단골이예요." "두 분 중에 누가 먼저 이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까?" "글쎄요" "무슨 뜻입니까?" "그 집은 스탠드가 아늑하고 분위기도 좋아 모두가 즐겨 앉아요. 한 두 번 우연히 옆자리에 앉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례를 하고 그러다가 말이 오가는 분위기의 집입니다." "자기들이 기자라고 했습니까?" "이름은 잊었습니다만 무슨 주간지 기자라고 했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지현준이다. "두 사람 소지품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나?" "소지품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발견되지 않았어. 두 사람 모두 지갑이 없었고 여자는 핸드백도 없었어" "사고 후에 범인들이 가져 간 거군" "이 키 기억하십니까?" 장태민이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보이며 말한다. 열쇠를 보는 순간 유민수가 강선주를 힐금 바라본다. "사고 직후 사고 조사반이 사고 차에서 회수한 것입니다" "그건 제가 가지고 있던 예비용이예요" 강선주가 말한다. "유 박사 자동차 예비 열쇠를 왜 박 선생이 가지고 있었지요" "같이 있을 때 병원에 응급 환자가 들어왔다는 연락이 오면 급히 다녀오고는 했어요" 강선주가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붉어진 얼굴 표정에서 응급환자 발생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향해 떠나는 장소가 두 사람의 아파트가 아니면 호텔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게 어제 밤에는 왜 그 차에 꽂혀 있었지요" "며칠 전에 분실했어요" 강선주가 답한다. 두 경찰관의 시선이 동시에 강선주의 얼굴에 쏠린다. 쏘아보는 의미를 알아차린 강선주가 울상이 되어 애원하듯 말한다. "정말이예요. 정말 분실했어요" "그게 언제였습니까?" 장태민이 다그친다. "핸드백에 넣고 다녔는데 며칠 전에야 없어진 걸 알았어요" 지현준과 장태민이 계속 강선주를 바라보고 있다. "설마...내가 ...그 사람들에게 키를 주었다는 건 아니겠지요?" "키를 분실한다는 걸 알게 된 전후에 두 사람을 만난 일은 없습니까?" 지현준이 묻는다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요?" "셋이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늦게까지 놀았어요. 그 날밤 아파트로 돌아가 열쇠를 꺼내다 차 키가 없어진 걸 알았어요" "그 사실을 왜 유 박사에게 말하지 않았지요?" "그때가 여행을 떠나기 사흘 전이예요. 그 사이 우리는 만나지 못해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날 노래방에서 핸드백을 두고 자리를 비운 기억은 없었습니까?" "그날 맥주를 많이 마셔 핸드백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장 경감. 시체 지문 떠 신원 확인 의뢰했겠지?" "감식반을 시체가 안치된 병원으로 출동시켰어" "장 경감. 나 좀 보자" 지현준이 일어서며 말한다. 장태민도 따라 일어선다. 5 "장 경감. 이번 시간에서 손을 떼어 주어야겠어" 장태민을 자기 방으로 데려온 지현준은 사무적인 투로 말한다. "무슨 소리야!. 사건에서 손을 때라니?" 장태민 경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현준을 바라본다. "일단은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하고 맡겨 달라는 뜻이야"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유 박사 차에서 없어진 건 휴대용 컴퓨터야" "휴대용 컴퓨터?" "그 컴퓨터에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자료가 입력되어 있어. 내가 서울로 돌아가 보고할 때까지 조용히 있어 달라는 뜻이야" "컴퓨터에 입력된 내용이 뭐야" "그 자체는 비밀이 아니야. 단순한 전쟁 게임이야." "그럼 뭐가 문제야?" "유 박사 자신이야" "유 박사의 안전?" 지현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간다.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전쟁 게임과 유 박사 머리가 합쳐졌을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거야. 그 가치를 알고 계획한 범행이라면 이건 국가 차원의 일이야." "수사 자체를 극비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가?" "결정은 위에서 하겠지. 핵심은 상대가 노린 대상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알아내는 게 급해." "경찰이 민감하게 움직이면 상대가 모르고 있었던 숨겨진 중요성을 우리가 광고하는 꼴이 될 위험이 있다는 거구나" "시골구석에서 머리가 녹 쓴 줄 알았더니 여전히 변하지 않았구나" 지현준이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처리할거냐?" "서울로 올라가 보고부터 하고 지시를 기다려야지" "시간을 달라는 건가" "그래!" "좋아" "고마워. 그러나 교통사고 자체 수사는 중단하지 말어. 단순 교통사고 정도로 취급하고 조사중인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어" "교통계 사고조사반으로 넘겨야지" "현장 목격한 여대생도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미 늦었어." "뭐가 늦었다는 거야?" "그 여대생이 무용담처럼 떠들고 다닌 모양이야" "장 경감. 이건 만일을 위해서 얘긴데 여대생 여기 있는 동안 신변보호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 떠날 때는 서울까지 보호하고 출발 전에 바로 나에게 연락해 주어" "그 정도로 민감한 사안인가?" "상대가 기업 스파이 수준이냐 아니면 국가안보와 관련된 특수한 조직이냐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야. 범행의 목격자를 없애려는 건 범인의 공통된 심리 아니겠나. 어떤 특수한 조직이 개입된 범죄라면 조직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목격자는 반드시 없애려 하겠지?" "유 박사는 서울까지 자네가 보호해야겠군" "상대의 목적이 밝혀질 때까지는 보호조치를 할 수밖에 없잖겠나" "오늘 떠날 건가?" "아니. 휴가 여행은 그대로 계속할 거야. 상대가 유 박사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일을 지도 몰라. 이쪽이 당황하면 컴퓨터 자료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컴퓨터 한 대 잃어버린 것 별 일 아니다 라는 식으로 가장한다는 거군. 좋은 아이디어야." 휴대폰의 호출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장태민이 점퍼 속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 스위치를 눌렀다. "나야!. 뭐?. 사고 차가 발견되었어?. 어디야?. 평해 남쪽. 차적 조회했나? 뭐야? 그것도 이미 도난 신고가 들어온 덤프 트럭이라고. 교통계 사고조사반에 넘겨. 시키는 대로해" 장태민이 휴대폰 스위치를 끄고 지현준에게 시선을 돌린다. "피해 차도 가해 차도 모두가 도난 차라?" 지현준의 말속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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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