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成蕙琳, 1937년 1월 24일 ~ 2002년 5월 18일[2])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김정일의 동거녀이자 두 번째 아내이다.
세간에 첫 번째 아내로 알려져 있으나 홍일천이 있기 때문에 이는 잘못이다. 김정일과 만나기 전에는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1955년에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했다. 2002년 5월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죽었다[3]. 북한은 성혜림의 장례식에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1].
성혜림은 러시아로 망명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4] 경상남도 출신.
성혜림은 1937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대대로 갑부였던 성유경(成有慶)과 김원주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서울사대 부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풍문여중으로 진학했다. 아버지 성유경은
1948년 혹은 한국 전쟁 무렵에 가족을 이끌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으나 대한민국에는
그의 5촌 당숙 등 일가족이 경상남도 창녕군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오빠 성일기는 뒤에 성인이 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탈출했다.
1951년 평양 제3여자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온정령, 백일홍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설 <땅>으로 알려진 월북작가 리기영(李箕永, 전 문예총위원장)의
첫째 아들인 전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 리평(李平)과 결혼하였다. 리평과의 사이에서는 딸이 1명(리옥돌) 있다. 그러나 5세 연하인
조선로동당 간부이자 김일성의 장남 김정일의 눈에 들게 되어 리평과 이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혜림은 김일성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김정일은 김일성이 내정한 조선로동당 간부의 딸 김영숙과 결혼했다.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1974년 이후 소련 모스크바에서 요양하며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출처 필요]
성혜림은 1996년 2월 언니 성혜랑과 성혜랑씨의 딸 리남옥등과 함께 신병 치료차 머물렀던
모스크바를 떠나 스위스로 나온 후 잠적했다가 다시 모스크바로 되돌아갔다.
성혜랑은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 성혜랑의 아들 리일남은 대한민국에 망명해서 결혼해 거주하다가 암살되었다.
성혜랑이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하면서 김정남의 위상은 위협받기 시작했다[5]. 성혜림은 2002년 5월 나이 65세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셋째 부인 고용희의 동생 고영숙도 2001년 10월 스위스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6].
성혜림은 1937년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마을에서 성유경과 김원주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성유경은 1906년 생으로 보성고보 16회 졸업생이며 해방 후 남로당 중앙위원을 지내다
1946년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후 재정부장을 지냈다. 어머니 김원주는 1907년 진남포 생으로
서문여고(평양여고)를 졸업하고 1920년대 민족주의 잡지인 '개벽'의 여기자로 활동했으며 해방 후 '
남조선 민주 여성동맹' 문화부장을 지냈다
성유경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두 딸 성혜랑과 성혜림을 데리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이후 성혜림은 북한에서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영화배우로 나섰다.
1960대 만들어진 '백일홍', '온정령' 등이 대표작이다.
성혜림은 소설 '땅'으로 잘 알려진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 이평과 결혼했다.
슬하에 딸 이옥돌을 두고 있었으나 성혜림의 시동생 이종륜의 죽마고우인
김정일 집에 자주 드나들다가 김정일과 불륜관계를 시작했다.
덕분에 성혜림은 공훈배우로 노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갔다.
이평과 이혼을 언제 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5살 연상이다. 김정일은 친어머니 김정숙을 일찍 여의고
편부 슬하에서 자라면서 연상의 여인을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성혜림 역시 이평과의 결혼이 애정이 없는 중매결혼이었지만 김정일은 예술과
취미생활에서 비슷한 면이 있어 만남을 지속했다는 설도 있다.
둘 사이에서 1971년 5월 19일 김정남을 낳았지만
김일성은 둘의 관계가 불륜임을 알고 크게 노했다.
김정일의 설득에 둘은 결혼까지 이르지만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에게도
미움살이 박히면서 순탄치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 성유기와 어머니 김원주, 성혜랑은 이후 김정일의 평양 중성동 관저에 들어가 살았다.
김원주는 1994년 88세로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혜랑은 김정남의 가정교사로 지내다
1996년 모스크바에 있던 중 미국으로 망명한다.
성혜림은 시누이인 김경희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리면서 신경성 질환을 앓으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여기에 김정일은 김영숙과 고용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서
성혜림은 결국 모스크바로 가 은둔생활과 와병에 들어간다.
성혜림이 모스크바로 가 있는 동안 김정일은 김영숙과 결혼을 했다.
그 이후 성혜림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모스크바와 스위스를 전전하며
유리방랑을 지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5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향년 65세.
성혜림은 모스크바의 한 공동묘지에 이름 없는 무덤에 안장됐다.
성혜림 조카인 이한영은 1982년 우리나라로 망명했다.
이한영은 미국에 있던 어머니 성혜랑을 우리나라로 망명시키려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로 돌아갔다.
이한영은 성혜랑과 재회하지 못한 채 1997년 2월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 현관 앞에서 북한 간첩이 쏜 총에 암살당했다
가족 관계[편집]
남편 : 리평(李平, 월북작가 리기영의 아들)
딸 : 리옥돌
사위 : 왕송림
시아버지 : 김일성
시어머니 : 김정숙
남편 : 김정일 (1941년 양력 2월 16일)
아들 : 김정남
며느리 : 신정희
손자: 김한솔[7](1995년 ~ )
손녀 : 김솔희
손자 : 김이순
손녀 : 김금솔
친정아버지 : 성유경(成有慶, 1905년 - 1982년 사망)
친정어머니 : 김원주(1907년 음력 12월 20일 - 1994년 양력 11월 3일 사망)
오빠 : 성일기(1933년 ~ )
언니 : 성혜랑(1935년 음력 12월 20일 ~ )
조카 : 리일남, 대한민국으로 귀순, 피살당함 (1961년 4월 2일 ~ )
조카 : 리남옥 (1966년 1월 ~ )
딸과 사위의 출처는 이한영의 《대동강 로열 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근거로 합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 장윤희(북한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