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계, 주객은 대립이 아닌 '연기'
범부 중생은
제법에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고 망념으로 조작한 양변에 집착한다.
두 극단을 떠나는 것이 중도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는 연기현상일 뿐 실체가 아니다.
유무중도란 세간의 집과 멸을 여실히 알아,
자아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견해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모두 버림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괴로움을 비롯한 모든 것의 생겨남을 여실하게 본다면
'없다'라는 생각할 수 없고, 세상에서 괴로움을 비롯한
모든 것의 사라짐을 여실하게 본다면 '있다'라는 생각할 수 없다.
유와 무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괴로움을 비롯한
모든 현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중도원리는 모순과 대립을 해결해 준다.
차별을 평등으로, 모순을 조화로, 대립을 협동으로,
무지를 지혜로 승화시킨다. 중도사상은 상호협조와 평화적 공존이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과 조화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무분별지는 연기하는 두 법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제법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이다.
제법은 무자성이다. 오온도 자성이 없고, 십이입처도 없고,
십팔계도 없으며, 십이연기의 유전문 환멸문도 없고,
사성제도 자성이 없다.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열반은 모든 법이 공함을 깨달아 모든 집착이 사라진 상태이다.
'보는 자'는 실체없이
조건에 의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의식현상, 즉 연기한 법이다.
보이는 것이 없으면 보는 나는 존재할 수 없고,
보는 내가 없으면 보이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나와 세계, 주와 객은 대립이 아니라 연기이다.
주체(안이비설신의)도 객체(색성향미촉법)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연기하는 모든 法은 존재가 아니고 인식이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아니며, 상주하거나 단멸하지도 않는다.
연기하여 변화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독자성이 없으므로 空하다고 한다.
원래 존재는 명사적 구조가 아니고 동사이다. 필요에 따라
이름을 붙여 부를 뿐, 원래 이름에 상응하는 고정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 어디 언제 등, 명사로 물어본다면 답변은 의미 없는 희론 일뿐이다.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