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김 淸緣님의 관악산행기

[아침이슬]

   

사당역 만남의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친구들이 나와 있다
풍기에서 일곱명의 친구가 왔다 하니 고향의 끈끈한 정이 대단하다
악수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보니 여친들도 여럿 있다
경애와 박기화 김경자 조옥순 그리고 나 까지 다섯명이 나왔다

전날, 여친들이 너무 안나오면 어쩌나 하던 용순 회장의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모두 21명이 모였고 신현동 회장이 재배하여

풍기에서 공수해온 명품 사과를 나누어 준다
마침 지나가던 줌마 등산객 두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직거래를 하겠다고 연락처를 적으며 사과를 얻어 간다  

 

관악산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호섭 총무에게서 전화가 온다
병원에 누워 있어도 마음은 이곳에 와있나 보다 

 
등산로는 흙이 덮여 있기는 하지만 흙 밑에는 완전 얼음판이다
얼음판을 보니 다리가 후들거리는데다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는다  

 

관악산은 같은 코스로 한 십이삼년 전에 연주대 까지 오른 적이 있다
그 때의 기억으로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가다가 연주대를 오를 때만

밧줄을 잡고 올랐고 힘들었다는 기억은 없다.
하기사 그 때는 사십대 초반이었고 몸무게도 지금 보다 2~3키로는

덜 나갈 때였으니 힘이 들지 않았던가 보다. 

 
걷는 것은 자신 있고 산에도 왠만큼 오른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새록새록 실감이 난다
겨울에 춥다고 집에만 있느라 운동을 안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그런데 다른 여친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모두들 다람쥐 고기를 먹었나 보다
내가 뒤쳐지니까 경진대장과 용순회장이 후미를 맡는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 지는데 갈수록 암릉 투성이다.

역시 岳산이라는 이름이 무색치 않을 정도이다.  

  

몇 개의 암릉을 지나고 헬기장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각자 배낭에서 내어놓은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김밥 떡 순대 컵라면에 된장찌개까지 잔뜩 배를 불리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노곤해진다
연주대 까지 올라가자는 의견과 하산하자는 의견으로

양분되는 듯 하더니 여기까지 왔으니 연주대까지 가기로 한다  

 

 바람은 차갑지만 날씨가 맑은 관계로 푸른 띠를 두른 것 같은

 한강을 비롯해서 서울 시내가 선명하게 내려다 보인다.
서울 근교산에 올랐을 때 시야가 깨끗하게 보이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역시 멀리서 온 귀한 손님들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등산객들로 인해 등산로가 비좁다.
좁은 구간에서는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려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주기도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이 기다려 주는 등 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질서정연하게 착착 이루어지는걸 보면 세상이 참 잘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숭례문에 불을 지르는 것 처럼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만 없다면 말이다 

 

 연주대가 가까와질수록 암릉도 가팔라진다
이제는 혼자 올라가는게 아니라  영원친구가 나를 맡아서 끌어올리는 수준이 되었다.
예전에는 내 몸이 상당히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천근만근이다 

 

어떤 부부 등산객이 아내가 힘들다고 하니까 남편이
"당신은 다음부터 오지마" 하더라고 누군가 전해준다.

부부간에는 너무 가깝다 보니까 아픈 말도 서슴없이 하는데
친구는 지치지도 않고 끝까지 끌어올려 주는걸 보면
남자친구도 많이 있고 볼 일이다 ㅎㅎ 

    

 연주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암자도 보고 하산은 서울대 쪽으로 하였다.
암릉구간은 아닌 대신 거의 빙판길 수준이이다.
모두 아이젠도 안 차고 잘 내려가는데

마른 땅에서도 내려가기를 잘 못하는 나는 아이젠을 신는다.  

 

이번에는 용순회장이 나를 잡고 내려간다
아이젠을 신고도 덜덜 떨린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높은데서 떨어져 죽었거나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죽었나 보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도 내려가는건 잘 못타고
산에서도 내려오는건 완전 꽝이다 

  

그런 나를 끝까지 잡아주니 역시나 좋은 친구다

고향에서 친구들이 왔으니 저녁은 미사리 수산센터에 가서 먹기로 한다.
활어회가 싱싱하고 푸짐하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유명일식집에서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니

한번 가볼만 하지 않겠는가  

  

 대부분 미사리 하면 조정경기장이 있고
유명 연예인들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촌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데
큰 수산센터도 있다니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뭐든지 두루두루 많이 알고 볼 일이다 

 

 바쁜 친구들 몇은 먼저 가고
서울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 서울대입구역까지 간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사당역까지 가기 위해서이다.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면서 경진대장이 촌사람 티 안내려고

 무지 애쓰는 중이라고 하기에
낯선 동네 오면 누구나 다 촌사람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전철을 타러 가는중에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몇계단 내려가는데

그쪽이 아니라고 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내려가는 에스털레이터를 거꾸로 걸어서 올라오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낯선 동네에선 누구나 다 촌사람인게 바로 증명이 된 셈이 아닌가 ㅋㅋ
그런데 결국은 내가 탔다가 다시 올라온 에스컬레이터를 타는게

맞다는걸 알고는 박장대소를 하였다.
다들 촌사람 티를 낸 셈이다.  

  

 사당역 13번 출구로 나가니 송택상 선임회장이

승용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산행에 불참한 벌금내러 왔다기에

대접좀 받으려나 하고 여자친구 넷이서 탔더니
이마에 수표 한 장 씩 붙여서 경매를 할거란다.
사람은 안데려가고

이마에 수표만 떼어 갈거라는 둥 어쩔거라는 둥 하며
접시를 한 열댓장은 깨면서 미사리로 갔다. 

 
송연순 전임회장과 숙례 전임재무까지 합석을 하니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다.
달짝지근하고 도톰한 회 맛에 곁들여
주는대로 소주와 복분자주를 마셨더니 눈 앞이 핑 돈다. 

 

 순진하고 숙맥 같던 30대 중반에 남편의 친구들 송년모임에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폭탄주라는걸 원샷으로 마시고는

한 이삼일을 ㅇ물까지 다 토하면서 드러누운 적이 있는데
그 때 일이 퍼뜩 떠오르면서 그만 마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뭏든 적당한 음주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기분을 업시키기도 하지만

적당히 조절할 줄 아는 것 또한 매너가 아니겠는가. 

 

다시 명일동으로 이동하여 노래방에서 뒤풀이를 하는 중에
음치에 몸치라는것 까지 다 들통나고
하여튼 다른 일 때문에 친구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분위기 안깨려고 살금살금 도망치듯이 나왔어요.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노래제목 처럼 말이예요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산에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회 있을 때 마다

열심히 참석해야 겠습니다. 

    

[아침이슬]

금풍회 淸緣님의 관악산행기 글에다 더 늙기전의 모습 꼼꼼히 공부 할랄꼬 올렸습니다... 당췌 누가누군지 알수가 있어야제 ^*^ ^*^ 이렇게 공부해서도 나중에 만날때 몰라 보더라도 서운해들 하지마세유~~ 내사마 기억력이 가물거려 장담 못합니다~~~ ㅎㅎㅎ

[맑은하늘]

청연님의 글이야 원래 호가 나 있지만 이제는 우리 이슬의 편집솜씨도 대단~~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뿐~~ 넘넘 좋아요~~

[아침이슬]

쉰다섯 가마니의 쌀을 먹은 친구들의 해맑은 미소가 아름다워 올려봤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