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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원문보기 글쓴이: 초록물고기(40)
' 김해 봉하마을, 봉화산 초여름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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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
▲ 노무현 대통령 묘역 |
김해 봉하마을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인생의 말년을 보내 |
♠ 봉하마을 둘러보기 (노무현 대통령 생가와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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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현대사(現代史)의 주요 성지(聖地)로 격하게 추앙을 받는 봉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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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생가 서쪽 출입구 |
▲ 창고로 쓰이는 아래채 |
노무현 생가(生家)는 노무현이 1946년 9월 1일에 태어나 8살까지 살던 집이다.
그의 형이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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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의 옛 사진이 걸린 본채 안방 |
▲ 그럴싸하게 재현된 본채 부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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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바램대로
완전한 쉼터로 열리지는 않았으나 툇마루 정도는 잠시 앉을 수 있다. 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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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동쪽 끝이자
사자바위가 잘 바라보이는 곳에 노무현 묘역이 닦여져 있다. 그는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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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화대에 가득 올려진 국화들 |
▲ 노무현이 묻힌 너럭바위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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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 앞에는 그의
어록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가 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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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디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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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밑에 자리한 거울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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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의 노무현 유적
중, 가장 안타까운 현장이 부엉이바위가 아닐까 싶다. 사자바위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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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묘역과 잔디동산
사이에는 봉화산으로 인도하는 길이 살짝 손을 내밀고 있다. 봉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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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못 동쪽 산자락에는
장군차밭이 넓게 푸른 빛을 드러내고 있다. 장군차는 인도대륙 남방 |
♠ 봉화산(烽火山) 마애불과 봉화산 정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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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차밭을 지나 정토원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바위가 유난히 우거진 곳이 나온다. 큰 바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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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바위 남쪽
바위 군락 속에 숨겨진 봉화산 마애불은 옆으로 넘어진 바위에 진하게 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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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마애불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것 같다. 허나 이는 내가 카메라로 장난을
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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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마애불에서
정토원으로 조금 올라가면 부엉이바위 윗쪽이다.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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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마애불에서
부엉이바위 윗쪽을 거쳐 7~8분 정도 오르면 봉화산 정토원(淨土苑)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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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법신들로 가득한 수광전 |
▲ 대나무가 무성한 정토원 경내 |
◀ 정토원 요사와 공양간(1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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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 앞 쉼터에는
나그네들을 위해 감자튀김과 토마토, 물과 믹스커피 등이 넉넉하게 차려 |
♠ 봉화산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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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에서 제공한 간식거리로 지친 몸을 제대로 달랜 다음, 봉화산 남쪽 봉우리인
사자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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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에서 바라본 자암봉수대 |
▲ 자암봉수대의 윗부분 |
동그랗게 다져진 봉수대 윗쪽 한복판에 네모나게 패인 부분이 있어 마치
상평통보(常平通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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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돌계단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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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정상에는 정토원의 상징으로 꼽히는 호미든 관세음보살상이 깃들여져 있다. 키가
24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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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바라본 호미든 관세음보살상 |
▲ 봉화산 정상 전망대 |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닌 관세음보살 누님은 4단으로 된 석단(石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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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정상에서 물러나
정토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지상 출현 부처님'이라는 이름의 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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