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노쇠하여 병마에 시달리는 것을 지나온 삶의 평가 기준을 삼으면 안 된다
모든 이야기 소재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거다. 모든 이론이나 논리 전개에는 양면성이나 다양성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일편을 들어 올린다 한다 할 것과 같으면 어느 1편은 내려가는 시소 현상이 일어나기 쉽지 그 균형을 잡기 매우 어려운 거야.
그래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누구 편을 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거다.
이런 말씀이야. 이를테면 이 세상에서 좋은 일 많이 할 줄 알아 많이 해 가지고 공적이 높으면은 죽을 적에 편안한 영면(永眠)을 한다.
의식을 잃을 적에 말하자면 안락사(安樂死)식으로 큰 고통 없이 이승을 하직하고 영혼(靈魂)히 유체이탈(幽體離脫)해서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이렇게 이제 말하자면 논리 전개 이론 전개를 펼쳐 이것이 옳다.
이렇다면 그렇다 하면 생각해 봐. 그 이 세상에 적선한 것인지 적악한 것인지 그걸 밝혀서 말하자면 판결을 한다 한다 할 것 같으면 판단을 한다 한다 할 것 같음 수많은 고통을 겪다가 죽는 자들은 전부 다 적악한 것이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무슨 논리 전개를 해 나간다는 것이 그게 쉽지 않은 거야.
뭐 말하자면 천당과 지옥을 설정하는 것 같아서 어 그러니까 지옥 추락하게 하는 건 쉬운 거야.
구제하는 건 어렵고 물론 사람이나 모든 만물을 이렇게 말하자면 선도(宣導)하고 인도(引導)해서 좋은 길을 가게 하겠다는 마음 취지는 좋은데 그러다가 보면 그 반대 성향이 있는 자들은 전부 다 지옥 추락시키는 거 밀어넣는 행위가 된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므로 논리 전개의 이론 전개에 이런 걸 해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고 무슨 어떠한 이야기 소재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것도 역시 그 반대성 성향 역지사지(易地思之) 반대 입장을 필히 생각해 봐야 된다.
이런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좋게 해탈한다.
깨끗하게 정결하게 해탈한다. 뭐 화상 같으면 좋게 입적을 한다.
이렇게 되면은 이 세상에 좋은 업적을 많이 쌓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은 그래 그렇다면 심한 고통을 겪은 자들은 전부 다 나쁜 업적을 다 쌓은 것으로 되잖아.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많은데 그러니까 그 상(賞)과 벌(罰) 공(功)과 허물 이런 것이 반드시 그런 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지.
하지만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의 심리를 편안하게 하고 말하자면 안온하게 하며 좋은 방향으로 유도 견인하려면 부득이해서 그렇게 편가르기 식으로 논리 전개 이론 전개를 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성향이기도 하다.
이런 뜻이여.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잘해서 잘 꾸며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우선 이것부터 생각해야 돼.
다른 좋은 사람들을 인도해서 좋은 길 유도하고 가겠다 하는 것 좋은 길 가게 만들겠다 하는 것은 좋은 취지지만 그 반대로 말하자면 본의나 본의 아니게 그렇게 세상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말하자면 허물을 만드는 수가 많거든.
누구든지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죽을 적에 전부 다 고통하고 말하자면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산소통을 코에 꼽고 흐르르 흐르륵 흐르륵 하는 거 산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게 죽을 사람은 의식이 없어서 모른다 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그런 거를 말하자면 그렇게 선악 개념으로 나누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이런 뜻이여. 그러니까 이 세상에 무슨 좋은 업적을 하였다 하더라도 돌아가실 적엔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는 자들이 많고 또 수월하게시리 숨이 끊어져 가지고 해탈하는 분들도 많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니 그런 걸 뭐 또 사주팔자나 명리학(命理學) 이런거로만 또 논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어떻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가면서 평안하게 시리 마무리 점을 지을 것인가 이것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느냐면 날마다 이렇게 나이가 먹으니까 사방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다 그래 들쑤시고 아파서 병원을 문턱 드나들듯 날마다 그렇게 하게 되니 이것이 큰 그걸 잔병치레라고 하는 거 아니야 뭐 고랑 팔십이라고 골골하면서 오래 산다고 그런 말도 있지 않아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매우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고 심적으로 부담을 주고 아주 고롭게 하는 걸 뜻하는데 이것을 면할 길이 없느냐 이런 말씀이야 평안함에 이렇게 있다가 죽을 적에 그저 잠자듯이 이렇게 해탈하는 방향은 없는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 봐야 된다.
이런 말씀이지 젊어서 한창 노력하고 일할 때는 일 하시는 분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럴런지 모르지만 나이 먹어가지고 늙어서 많은 병마에 시달릴 적에는 이런 생각이 머리에 자연적 들게 마련이다.
아 내가 생전에 남한테 못할 짓 많이 해서 이렇게 고통스럽고 말하자면 병마에 시달려서 늦게 이렇게 고생스러운가 이런 생각도 누구든지 하게 된다 이런 말씀이여.
그러니까 그런 마음먹은 자들을 좋게 그렇지 않다.
살다가 보면은 허물이 있고 없고 간에 무슨 공적(功積)이 있고 없고 간에 그렇게 신체적인 신진대사가 여의치 못해 가지고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지, 무슨 세상에 무슨 공적을 갖고 논하고 허물을 갖고 논해서 그렇게 시달리는 건 아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이렇게 좋게 사람의 마음을 좋게 만들고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어느 한 편을 편들어주지 않고 균형을 잡아서 그런 나아가는 그런 말 하는 자세 생각하는 자세 좋게 인도하는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예 이번엔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는 것은 선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공적과 허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이 그렇게 신진대사 몸의 신체 구조상 그렇게 노쇠해 가지고 시달리는 것이지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지 그것이 무슨 지나온 업적에 대해서 무슨 평가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아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한번 말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무슨 저 사람이 병마에 시달린다. 아 그거 앙 갚음 받는 거지.
이렇게 남을 저주하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도 안 되고 그런 말을 입에 오르내릴 오르내려서도 안 된다.
아 그분 참 고생스럽고 고통이 심하구나. 어떻게든지 쾌차하길 빕니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된다. 누구든지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무언가 아 흑백 구분, 시비 흑백 이런 게 나눠져서 1편을 들어서 그 반대편에 성향을 가진 자들을 말하자면 좀 조금 힘이 있다고 못 살게 굴었다고 해서 그것이 허물이 되고 그래가지고 저주를 받아서 앙 갚음 받느라고 그렇다 이런 식으로 말몰이하거나 이론 몰이 하면 안 된다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해탈하면은 다 똑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거다.
이런 뜻이야. 다 똑같이 천당에 가고 좋은 세상으로 간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된다.
이런 말씀이지 그걸 뭐 살아생전에 평가 기준을 삼으면 안 된다.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을 이분이 이렇게 말하자면 병마에 시달리는 것에 대하여서 무슨 생전에 아 지나온 업적의 평가를 삼으면 안 된다.
이런 뜻에서 하에서 강론을 펼쳐봤습니다.
그런데 대략은 이렇게 겉으로는 미사구어를 동원하지만 속으로 속셈은 다 틀리다는거지 대면공화 하대 심격천산=對面共話(대면공화)하되 心隔千山(심격천산)이라 하는 것이 그래하는 말인것 천길 물속은 알기 쉬워도 사람의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 하는 것이 이래하는 말인 것 그래 남의 심중을 읽는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독심술(讀心術)이라 하는 건데 이런 글에서도 대략은 그 사람의 의중을 조금이나마 파악할수 있지 않는가 하여 본다 제넘이 그러니간 이런 따위의 글을 쓰지 이렇게 생각 또는 서로 마음이 좀 통한다 하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하고....
이렇게 북치고 장구치고 하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