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담벼락
손유미
내 방 창문과 담벼락 사이에 고양이가 터를 잡았다
몰랐는데 마주쳐서 알았다 옥상 빗물받이를 물그릇 삼아
있었다 고양이가 있었어 모르는 사이에
고요하고 나란하게 지내고 있었네
눈을 감으면 느껴지지
등을 맞댄
고요의 온기
털의 부드러움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직한
고요 이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에게 이웃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잊고 지냈으므로 누군가 부추긴 것처럼
싸우고 그 싸움에
군림했지 내 안의 조용한 것들에게 시비 걺 제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를 비관함
그로써 낙담함 자초지종 없앰 분별 안 함 신뢰하지 않음 평생의 평화를 버릴 기세로 분노에 집중 그러므로
바쁨 혼자
바쁨 분노는
바쁨 여지없게
지냈네 어느 날 고요의 말미가 창문을 두드릴 때까지
무한 분노에서 머리를 끄집어내라고 그리하여
내가 마주 본 것은,
떠나는 고양이들
더는 아니라는 듯
새끼를 챙겨 이동하는
고요들
그로써 나는
정말 혼자
나는 내가 일으킨 소음을 모두 알기에 잡을 수 없었다 다만
너 없이 내가 어떻게 혼자 더미 속에서 어떻게 혼자를...... 머뭇거렸다
그러자 네가 나를 보고
미묘한 표정으로 떠나네
시간이 흘렀다 내내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때때로 그 표정을 읽고
용기를 얻어
네 고요가 그렇게 약할 리 없다
그러니 일어나 할 일을 하렴
내 고요가 이렇게 약할 리 없다
그러니 일어나 할 일을 하자
어느 날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를
고요를 기다리며